"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일 4:21)."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 15:12)."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무시한 대가는 혹독했다. 친구 A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교회에 올 수 없다고 말했다. 뜻밖에도 내가 눈물을 흘리자 그 친구가 왜 우냐고 물었다. 나는 나도 모른다고 얼버무렸지만 친구는 재차 물었다. 나는 대답 없이 찬양 시간 내내 울었었다. A는 최근 몇 달간 그러했듯 예배 마칠 때쯤 기도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한 명의 친구 B가 나에게 말했다. "따라가자." 따라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걱정하면서 일어섰다. 우리는 그 친구가 이단에 빠져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예배실 문 밖에 서서 B와 B의 언니가 A를 설득하는 동안 마음이 복잡했다. A는 이야기 중에 그동안 섭섭했다는 말을 앞뒤 문맥과 상관없이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 가지 말라는 말을 뒤로 하고 황급히 떠났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이힐을 신은 A의 두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밤 세 통의 문자를 보냈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 나는 슬픈 음악을 들으며 밤에 잠을 자지 못했고 다음날은 하루 종일 잠을 잤다.

이틀 후에 친구 C와 함께 예수전도단 주최의 화요모임에 갔다. 그날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내 사랑은 사람을 향한 사랑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가짜라는 내용이었다. 기도회 시간에 목사님은 관계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 이들은 일어서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나는 C를 일으키며 A를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말했다. 우리는 두 손을 붙잡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 후에는 말씀을 보았다. B의 언니가 나눠 준 마태복음 18장 말씀이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심이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19~20절)."

집에 가는 길에 A에게 전화하니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A가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그때 왜 울었냐고 또 물어보았다. 나는 표현하기 쑥스러웠지만 그 친구가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말해 주었다. 너를 사랑해서 그랬다고. 그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너한테 그런 말 처음 들은 것 같다. 그동안 왜 말 안 했어? 진작 말하지." 진작 말했다면 이 친구가 이단에 빠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으로 사랑을 내보이지 못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 문자에 왜 답을 안 했냐는 질문에 그녀는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서 그랬다고 말했다.

A의 마음이 다음 주가 되면 완전히 굳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겁이 났다. C는 이번 주가 지나기 전에 A에게 찾아가 권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금요일 밤에 A의 집에 찾아가기로 했다. 우리는 그녀가 이단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진리로 권면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마 18:15~16)."

그러나 금요일 밤, 막상 닥쳐 보니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았다. 권면은커녕 A가 이단에 빠졌음을 인정하게 만들기 위해 실랑이하느라 밤을 보내야 했다. 진리로 권면하기엔 이미 늦어 있었다. A는 새벽녘에 핸드폰 문자 메시지가 들킨 후에야 맞다고 진실을 밝혔다. 우리는 서로 진리가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상태였다. 그 친구를 위해 기도하며 관계를 이어 나가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그러나 이후 그녀가 연락을 끊어서 관계를 이어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24시 맥도날드 창밖으로 비가 쏟아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하나님의 아픔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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