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30분에 집을 나서 정류장에 올라가면 7시 45분쯤 아이들을 태우고 가는 학원차가 옵니다. 차 시간에 맞추어 올라가려면 엄마나 아빠 중 누군가가 데리고 올라가야 합니다. 시간 개념이 없는 아이들끼리 올라가도록 했다가는 차 못탑니다. 뱃살 빼라는 이유로 대부분은 아빠인 제가 데리고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게 뱃살 빠지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작은 딸 밝은이는 꾀가 생겨서 마당에 내려서자마자 "아빠, 다리 아퍼요!" 업어달라는 말입니다. "저기 비석 있는데까지만 걸어가면 거기서부터 업어줄께" "넷!" 다리 아프다던 녀석이 말처럼 뛰어 올라갑니다.

거의 매일 밝은이를 업고 올라갑니다. 잘 먹는 밝은이의 무게는 장난이 아닙니다. 업으면 등에 머리를 대고 "쿠~~" (아빠 잠잘때 코에서 나는 소리를 흉내냅니다, 짜식! 그러지 말래두)

"아빠가 업어주면 좋아?" "넷" 등에 달라붙은 아이의 부드러운 느낌이 좋습니다. '안식'이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자신의 무게엔 아랑곳하지 않고 등에 업혀서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하나님 품에서의 안식'이 어떠해야 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빠는 맨날 밝은이만 업어주고.." 초등학교 1학년인 큰딸 좋은이가 삐쳤습니다. "네가 밝은이처럼 어렸을때 아빠가 너를 얼마나 많이 업어줬는데, 생각 안나? 아빠가 캥거루처럼 너를 잠바 속에 넣고 다녔던 거" "히잉~~~"  밝은이를 내려놓고 좋은이를 업어줍니다.

밝은이의 무게나 좋은이의 무게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면 아빠 등에 붙을까가 관심이고 아빠는 아이들의 무게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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