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 양지캠퍼스. ⓒ뉴스앤조이 주재일

월간 <복음과상황> 2001년 10월 호에 '총신이 죽어야 조국교회가 삽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실린 적이 있다. 영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양희송 편집위원은 이 글에서 "한국교회의 '물량주의'와 '권력의지'를 근절하기 위해 총신은 죽어야 한다. 한국의 복음주의를 위해 총신은 죽어야 한다. 조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총신은 죽어야 한다"면서 총신의 '죽음'을 촉구(!)한 바 있다.

총신은 지금 100년 역사를 자랑하면서 보수신학을 드높이 외치고 있다. 하지만, 가엽게도 그 외침은 허공을 울리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교회 내부에서 반성경적이고 반신앙적이며 반인간적인 수많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어도 총신은 굳게 다문 입을 좀체 열려 하지 않는다. 시대와 민족의 아픔과 갈등을 품고 고민하기는커녕 이전투구(泥田鬪狗)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오죽하면 '온갖 귀신이 총집합한 곳이 바로 총신(總神)'이라는 자조적인 비아냥이 그 안에서 흘러나오겠는가.

지금 총신이 보여주고 있는 해괴망측한 모습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자랑하는 보수주의신학의 번지수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보수신학을 수호한다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동료를 물어뜯고 제자를 짓밟고 정치꾼들에게 학교를 통째로 갖다바친다. 보수신학은 요술방망이다. 평소에는 이렇다 할 만한 논문 하나 변변한 게 나오지 않다가, 누가 조금 생소한 얘기만 꺼내면 도무지 보이지 않던 보수신학이라는 요술방망이가 어디선가 나타나 마구 휘둘러댄다. 평소에는 잘 안 써지는 글이 동료를 죽이는 글을 쓸 때는 빠르고 치밀하다. 사람을 살리는 신학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신학인 셈이다.

총신 안팎에서 벌이는 신학을 앞장세운 정치싸움의 역사는 길기도 하다. 최근 들어 그 양상이 극심해지고 있다. 정성구·심창섭·심상법 교수는 모두 학교 안팎에서 벌어지는 정치싸움의 희생양이다. 앞으로 이런 희생양 후보는 줄을 서있다. 김지찬·정일웅·정훈택 교수 등이 모두 재임용 대상이 된다. 그때가 오기만을 벼르며 절치부심하는 이들이 어디 한 둘인가.

그나마 깨끗하고 순결한 양심을 갖고 정의를 외쳐야 할 학생들 역시 학점·졸업·목회지 진출이라는 절대명제 앞에서 파리 목숨이다. 학교 문제를 바로 세워보겠다고 나섰다가 교수들에게 찍혀 졸업 못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러니 스승의 '떼죽음'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

아니, 그들에게 '스승'이 있을까. 어쩌면 그들은 3년간 스승 아닌 강사들에게 신학지식만 어설프게 전수 받았을지 모른다. 재수생을 위한 입시학원 마냥 한 강의실에 수 백 명이 앉아서도 신학적 지식 못지 않게 중요한 영성·인격 훈련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면 그건 예수의 동정녀 탄생 버금가는 신비(神秘)다.

이런 분위기에서 3년 공부를 마친 뒤 목사가 되겠다는 이들이 1년에 1천 명을 넘어섰다. 그중 절반 안 되는 숫자가 교육부에서 허락 받지 않은 비인가 과정 출신들이다. 그 중에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이 되는데 학력이 무슨 상관이냐'고 강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베드로가 정규신학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어도 한 번 설교에 3천 명이 회개하지 않았느냐'고 강짜를 부린다.

그러면서도 정식 석사과정이랑 똑같은 조건에서 공부하기를 원한다. 학구열이야 말릴 까닭이 없다. 또 학기마다 거금을 등록금으로 내고 있으니 요구할 자격은 마땅하다. 비록 그 돈이 이사들의 불법행위에 사용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총장 직인이 찍힌 졸업증서를 받아야겠단다. 결국은 받아낸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앞에서는 '학력이 뭐가 중요하냐'고 하면서 뒤에서는 '졸업증서'를 받으려고 한다. 아무리 교육계가 썩었다고 해도 대한민국 어느 대학에서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불법이 자행되는지 눈을 씻고 찾아볼 일이다.

'총신이 죽어야 조국교회가 산다'는 얘기는 단순한 패러디가 아니다. 명색이 장자교단의 단 하나뿐인 목회자 양성기관이요, 규모에서 있어서 세계에서 둘째 하라면 서러워할 만한 덩치를 자랑하는 총신. 그 안에서 판치는 불법과 암투를 보노라면, 머지않아 장례식에서 곡(哭) 소리를 들을 지도 모른다. 대마불사(大馬不死)는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신화일 뿐이다. 거대한 타이타닉호가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바다 속으로 침몰할 지 누가 예상했는가.

올해 예장합동 제87회 총회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 중 하나가 바로 총신대 문제다. 총신대 얘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을지 모른다. 최근 현안으로 떠오른 몇 가지 문제를 유심히 들여다보자. 그러면 그 안에서 총신의 운명을 예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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