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이렇게 폐가(弊家)가 되고 마는 것일까?"

지난 주말에 우리 집에서 해버포드 애비뉴를 따라 필라델피아 다운타운 쪽으로 가면서 던지게 된 질문이었다.

안전하게 알려준 길로만 다니는 아내와는 달리, 나는 새로운 길을 찾아 모험해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새로운 길을 가면서 주변의 모습들을 구경하는 것은 내가 갖는 조그만 즐거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주변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에 잠기곤 한다.

지난 주말에 임마누엘교회에서 있었던 열린 말씀 컨퍼런스를 갈 때에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로 가 보려 했다. 그러다가 해버포드 애비뉴 선상에 있는 어떤 집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온전하였더라면 그런대로 가치가 있을 법한 규모의 집이 완전히 폐가가 되어 있는 것이 마치 영화 속에서 종종 등장하는 유령의 집을 보는 것 같았다. 유리창은 심하게 파손되었고 구멍이 난 지붕이 내려앉아 있었다. 교회를 향해 가면서 아내에게 물었다. "왜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이렇게 폐가가 되고 마는 것일까?"

사람이 살면 사람 냄새 때문에 벌레들이나 짐승들이 접근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인데 사람이 없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집이 망가지는 것일까? 어설프지만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대답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람이 산다고 해서 벌레가 접근하지 못하는 것도 아닐 테고 설사 그런 벌레들이 더 쉽게 더 많이 접근한다 한들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이 살지 않으니 불량배나 홈리스들이 들어가 망가뜨리는 것은 아닐까? 또 하나의 그럴듯한 가능성이었지만, 역시 지붕이 내려앉은 이유를 설명할 길은 없었다.

지난 주일예배를 드린 후, 점심을 나누면서 우리 교회에 강사로 오신 목사님에게 그 집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학부 때 건축공학을 전공하신 목사님이지만 전문가적인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한 대답은 지난 밤 잠자리에 누워 삶을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 답이 되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쉽게 폐가가 되는 것은 조그마한 망가진 부분들을 고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산다면, 지붕에 낙엽이 쌓여 물이 고이고 그것이 집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것을 보면, 즉시 그 낙엽을 치워 주어서 더 큰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에 조그마한 문제를 처리하지 않게 되고, 그것은 결국 물이 넘쳐 집안으로 들어오게 만들고, 물이 들어온 부분은 나무가 썩게 될 것이고, 결국 제2, 제3의 손상들이 이어지게 되는 겁니다. 유리창이 깨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산다면, 깨어진 창문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오기 때문에 무엇으로든 막아 둘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없다면, 막지 않을 것이고 결국 그 깨어진 구멍 속으로 제2 제3의 망가짐이 이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흉물스런 폐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殿)이라고 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내주하셔서 우리가 잘못할 때마다 우리를 교정하시려 할 때, 그 음성에 따라 우리를 고쳐 나가야 할 것이다. 마치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지 않는 것처럼,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지 않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산다면 우리는 영적인 폐가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16~23)."

오늘날의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종종 마치 성령께서 한국교회 가운데 살고 계시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치 폐가처럼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는 듯한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현저한 육체의 일이 한국교회 전체에 구멍을 내고 지붕이 내려앉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면 으스스하기도 하다. 규모와 화려함으로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한국교회가 실상으로는 폐가의 모습이 아닌가? 언제 이 폐가 같은 모습을 아름다운 성령의 전으로 고칠 수 있을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웅장함에 매료되어 예수님에게 성전 건물을 가리켰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이것이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 24:2)." 예수님은 당시의 성전에서 장사하던 무리의 상을 뒤엎으시고 말씀하셨다.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마 21:13)." 그리고 자신의 몸으로 새로운 성전을 일으키셨다.

우리의 삶에서도 죄악이 우리의 영적인 모습에 구멍을 냈다면, 성령의 수리하심을 입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냥 방치해 두면 더욱 영적인 폐가의 모습으로 변해 가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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