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생활은 자기를 부정 헌신함으로 세상의 생명을 살리는 자기 부정의 생활,
곧 십자가의 생활이다. ⓒ뉴스앤조이 김승범

신앙은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말씀이 성경 안에 갇혀 있거나 교회 안에서 머물러 있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말씀이 온전한 말씀이 되려면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야 하고, 하늘의 뜻이 진정한 뜻이 되려면 우리의 생활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신앙이란 우리의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우리의 생활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우리가 하루하루 이웃과 더불어 살아 있는 생활 속에 있으며,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일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생활과 분리된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 하나의 이데올로기요, 하나의 주장에 불과하다. 오늘날 교회도 많고 목사도 많고 성도도 많은데, 세상이 심각한 질병에 걸린 것은 우리의 신앙이 교회에 머무르거나, 성경 속에 갇혀 있을 뿐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삶과 신앙이 분리되어 신앙적 유희의 도구로 변질된 결과이다.

예수는 한순간도 아버지 하나님과 분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당신이 살아가시는 세상과 분리되지 않으셨다. 그분은 철저하게 세상 속의 예수, 삶 속의 예수, 생활자로서의 예수이셨다.

죽음의 세계에서 생명의 세계로

이 세상에 예수께서 오신 것은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요 5:24) 인도하기 위해 오셨다. '도둑은 다만 양을 훔쳐다가 죽여서 없애려고 오지만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기'(요 10:10) 위해서 오셨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오신 예수는 언제나 하늘 아버지를 자기 안에 모시고 사셨으며, 자기가 하는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주님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시든 모든 일이 하늘 아버지께서 하시는 신령하고 거룩한 일이 되셨다.

내 안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생활한 예수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었으며 제자들의 발을 몸소 씻어주시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은 세리나 죄인과 같은 이웃 생명 안에서도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우리에게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자기 안에 하나님을 모시고 거룩하고 신령한 삶을 사신 예수처럼 예수를 믿는 성도는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며, 내가 하는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하시는 신령하고 거룩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죽임의 세계를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처럼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내 일상의 생활이, 내가 밥 먹고 논밭 갈고, 공장에서 노동하고, 공부하고 청소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모든 일이 내 일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며, 그것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예수의 사랑은 구체적인 생명 활동으로 드러났다. 예수는 죽어가는 이들과 아픔을 함께 나눔으로써 그들을 살리셨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자기를 희생·부정함으로써 하나님과 하나되어 우리를 구원하셨다. '아버지께서 내가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러나 결국 나는 다시 그 목숨을 얻게 될 것이다.'(요 10:17) 이것이 생명의 논리요, 예수의 생활 방식이다.

예수의 생활은 우리가 흔히 살아가는 일상 생활과는 다르다. 자기 배가 부르면 좋고, 내 통장에 쌓여가면 좋고, 또 나 자신의 안락을 위한 생활과는 다르다. 예수의 생활은 자기를 부정 헌신함으로 세상의 생명을 살리는 자기 부정의 생활, 곧 십자가의 생활이다. 이 십자가의 생활이 곧 자기를 살리고 모두를 살리는 살림의 생활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생활이라는 것은 자기 생명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이는 생활이며, 오늘날 교회 생활이라는 것은 자기 교회를 더욱 성장시키고 살찌우는 데만 관심을 갖고 이웃에 대하여, 지역에 대하여, 평화나 정의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오늘 우리의 생활 방식이라는 것은 자기만 잘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의 헌신과 희생만을 강요하고 타인이 죽어야 내가 산다는 자생타사(自生他死)의 세계요, 참으로 끔찍한 죽임의 세계이다.

그러나 죽음의 세계를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생활 방식은 타생명(他生命)을 위해 자생명(自生命)을 희생 부정함으로써 타생명을 살리는 타생자사(他生自死)의 생활이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요 12:24-25) 이것이 예수의 생활 방식이요, 구원의 방식이다.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말씀이 이루어지고, 하늘의 뜻이 이루어져 죽임의 세계를 이겨내고 생명의 세계로 인도하려면 그 안에 예수의 생활 방식 곧 십자가의 생활이 이루어져야 한다. 십자가는 교회 안에만 있지 않고, 십자가는 성경에만 있지 않고, 십자가는 부흥회나 교도소에만 있지 않고, 십자가는 보혈의 피라고 부르는 찬송가에만 있지 않고,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 있다. 우리는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십자가를 지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세상을 구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고 죽임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사셨던 예수의 생활을 좇아 세상을 살리는 구원의 삶을 사는 자가 진정한 신앙인이 아닐까.

채희동 / 온양 벧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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