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지금 여기에

"B조가 어디메요?" "저 앞자리로 똑바로 가 보시라요."

각 조가 홈스테이할 파트너를 찾느라 예배실 안은 분주하기만 하다. 필자도 설레는 마음으로 탈북 여성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점차 빈자리는 거의 채워졌는데 우리 조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눈에 띄기 쉽게 조별 카드를 높이 들고 흔들었다. 잠시 후, 저 뒤편에서 필자를 향해 걸어오는 두 여인이 보였다.

어제 밤부터 탈북 여성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그들과 함께 우리 가정에서 하룻밤 숙식을 한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 탈북자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항상 내재해 있는 상황인지라 언제든지 함께하고 싶은 준비는 되어 있었다. 때마침 교회에서 1박 2일 '탈북자홈스테이' 자원봉사 광고를 보고 곧바로 신청했다. 오늘 드디어 그들을 만나는 순간이다. 그들이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두 팔로 번쩍 안아 주었다. "반가와요! 반가와요! 고생 많았죠." "아님네다. 감사합니다."

▲ 시냇가 푸른나무교회에서 탈북여성 환영 프로그램을 가졌다. (사진 제공 국인남)
우리는 생김새가 비슷하고 언어가 통하니 금방 친해져서 손을 잡고 반갑다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얼핏 보니 필자의 자녀들보다 더 어린 연령대였다. 프로그램 진행자는 기타를 치며 계속 찬양을 인도하지만, 우리는 마냥 서로가 묻고 싶은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잠시 후 서로 존칭은 사라지고 그들은 필자의 딸이 되고, 나는 엄마가 되었다. 주최 측(시냇가 푸른나무교회)에서 준비한 풍성한 점심 대접을 받고 난 후, 몇몇 조가 함께 봉고차를 타고 서울대학 캠퍼스로 갔다.

마침 차량 봉사자로 오신 분이 이 학교 출신이었다. 이러한 인재들이 곳곳에서 섬기고 있기에 힘이 난다. "북한의 김일성대학과 같은 대학이며, 탈북자에 대한 특혜도 있으니 열심히 공부하면 들어올 수 있어요"라고 소개하며 이들에게 꿈과 소망을 심어 주었다.

필자는 두 번째 코스를 '동작동 국립묘지'를 함께 가자 청했다. 그것은 이들에게 지난 역사의 비극 현장을 반드시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20대 젊은 피들이 왜 그 당시 전사해야 했는지를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 역사를 바로 알고 판단하는 것도 그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

현충원 정문을 들어서자 놀라는 소리가 한 목소리로 나왔다. "우와, 이렇게 많은 비석들이…." 하얀 눈 속에 즐비하게 누워 있는 비석들은 오늘 따라 더 추워 보였다. 잠시 그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여기 이 많은 사람들이 왜 죽어야 했을까요. 그리고 누구의 총부리에 전사했을까요. 물론 북조선 젊은이들도 사상자가 많았죠. 그러나 지금에 와서 우리가 이 비석을 바라볼 때 더 가슴 아프죠. 여기 잠들어 있는 우리 형제들은 강대국들의 이념 놀이에 희생당했던 젊은이들입니다. 다시는 남한과 북한에서 이런 비극적인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야겠죠." 모두가 침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6.25전쟁을 북침으로 알고 있었고, 이미 머릿속 깊이 잘못된 역사로 세뇌되어 있었다.

비탈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서 전직 대통령 묘 중, 박정희 대통령 묘지를 향해 갔다. 남한 대통령 중 그들이 알고 있는 분은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두 분 묘지 앞에서 묵념 시간을 가졌다. 필자도 잠시 두 분 대통령 심정으로 돌아가 보았다.

박 대통령이 벌떡 일어나서 거듭 당부하는 것 같았다. "그때 통일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지금도 일성(김일성)이랑 하늘에서 남북회담을 하고 있소. 그러니 제발 그만 싸우고 평화통일 이루세요. 평화통일은 강대국 등에 업혀서는 안 될 것이오. 남과 북이 서로 만나 먼저 소통하고 관용할 때, 민족은 부국강병( 富國-强兵)을 이룰 것이오. 제발 속지들 마시오. 자주 국가는 통일밖에 없소."

바로 옆 묘지에 잠들어 계신 김대중 대통령이 환하게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아따, 이 처자들이 누구라냐, 북조선 처자들이 예까지 와 부렀네. 시방 통일이 됐다냐?, 조금만 더 살 것을 징하게 억울하네, 야튼 반갑네, 겁나게 반갑당께."

천국은 사선을 넘는 자의 것

한 바퀴 현충원을 돌아보고 일단 각조별로 헤어졌다. 우리 조는 현충원 앞에서 강북을 향해서 버스를 탔다. 드디어 대한민국 일상의 삶을 돌아보는 현장 체험에 나섰다. 버스 카드를 단말기에 가까이 대자, 단말기에서 소리가 났다. 이들의 눈에는 마냥 신기하게만 보이나 보다. "오마니, 돈도 안 주고 그냥 타는 차도 있나요." 광화문을 향해 달리는 버스 안에서 버스를 타고 내리는 법을 설명해 주었다. 환승하는 것과 지하철 연결 내역을 들으며 그저 놀랍다는 표정이다.

광화문 앞에서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을 바라보며 신고식을 했다. 볼을 때리는 매서운 찬바람을 맞으며 인사동과 남대문시장을 견학했다. 여러 가지 먹을 것, 볼 것들로 가득 넘쳐 있는 거리에서 추위를 녹이며 뜨거운 꿀 호떡으로 입안을 녹였다. "꿀떡이 참말로 맛 좋을시다. 오마니, 근데 웬 코 큰 사람들이 이리도 많습네까?" 인사동 거리에는 외국 사람들이 열을 지어 다니고 있었다. 이들의 눈에는 그것마저도 이상하고 신기할 뿐이다.

버스를 타고 다시 강남을 향해 출발했다. 서울역을 거쳐 한강 다리를 건너며 한강 다리 역사를 말해 주었다. 6.25의 참상을 이들이 알 수 없기에 지난 역사를 정확하게 알려 주어야 했다. 그러나 이들의 표정은 언제 이러한 참상이 일어났느냐는 듯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60년 전 전쟁이 이해가 가지 않은 것 같았다.

강남으로 건너와서 몇몇 백화점을 구경하고 지하상가를 지나다가 계단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보았다. "남조선에 거지가 많다 했는데 처음 보는 것 같네요." "이곳에도 너희보다 더 어렵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러니 죽을 각오로 사선을 넘어 왔으니 악착같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말해 주었다.

▲탈북 여성들을 환영하는 홈스테이 가정들이다. 이들의 안전을 위해 뒷모습만 촬영해야 했다. (사진 제공 국인남)

얼마 지나면 이들은 각자 보금자리 주택으로 돌아가 자본주의 경쟁 사회 링 위에서 숨 가쁘게 뛰어야 할 사람들이다. 수시로 어퍼컷과 훅에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거듭하며 오뚝이처럼 살아야 할 탈북민이다. 이들에게 막연한 보랏빛 망상만 보여 주는 것보다, 냉혹한 현실에 대처해 나갈 수 있는 대안과 각오도 필요했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물건 사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화장품 숍에 들어가더니 신기한 물건들을 직접 얼굴에 그려 보며 행복해했다.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할 뿐이다. 밤이 되어 식당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각자가 가장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하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남한 땅에 오기까지 죽을 고비를 거친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이야기했다. 남한으로 탈북하다 들키면 11촌이 총살당해야 하는 살인 정책에서 자폭할 칼을 품고 이곳까지 왔다 한다. 만약, 잡히면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먼저 죽을 각오로 남쪽을 향해 온 것이다.

A 양은 중국에서 다시 잡혀 들어간 부모형제 이야기를 하다가 눈시울을 적셨다. B 양은 젖먹이 아이가 함께 중국으로 건너오다가 다시 잡혀 들어간 아이를 생각하며 아파했다. 이들의 소망은 오직, 악착같이 살아서 부모와 형제를 다시 만날 날만을 기대했다. 음식을 먹기 전에 이들의 소원이 하루속히 이루어지기를 간절하게 기도해 주었다.

매콤한 해물 짬뽕과 생선 초밥을 삼키며 거듭 "맛좋수다, 이것 비싼 거죠?"란 말을 되풀이했다. 마지막 몇 개 남은 생선 초밥을 서로 양보하며 먹지 않았다. 그러자 B 양이 "야, 이것 김정일이만 먹던 생선 초밥이야요. 날래 먹으라우." 초밥을 바라보며 북에 남은 가족을 생각하는 것 같아 마음이 시렸다.

늦은 저녁 시간에 우리 가정에 도착했다. 밤 야경을 바라보며 "천국에 와 있는 것 같다"며 좋아했다. 여기저기 살펴보면서 행복해하는 그들을 보니 필자 또한 조금이라도 빚을 갚는 것 같아 마음이 편했다. 두 사람도 서로를 모르기에 밤새워 자신들의 이야기로 온밤을 새웠다 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의 안내로 동사무소와 은행, 그리고 경찰서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경찰서에서 갑자기 겁을 내며 무서워했다. 북한은 경찰서를 '보안서'라 하는데 이미 이들에게 '보안서'는 무서운 공포로 남아 있었다.

천국은 관용하는 자의 것

하나님은 남한을 먼저 선택하셔서 복에 복을 더해 주셨다. 지금껏 우리는 거저 그 축복을 받은 것뿐이라 생각한다. "내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북쪽 사람들이 떠올랐다. 수많은 세월 북한은 남한을 향해 온갖 만행을 저질렀지만, 그것은 이념에서 오는 갈등이다. 북한 군부와 김정일 권력층 세력보다, 인민은 동포애로 안을 수 있다. 사회주의 주체 세력자들에게는, 굶주린 인민은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총알받이 아닌가.

어느 국가든지 한 국가의 권력과 체제를 위해서 국민이 수단과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될 때, 그 나라가 바로 선진사회라 생각한다. 그래서 주객이 바뀌면 도덕성과 공정성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더불어 살아가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이주 노동자들과 탈북민, 그리고 수많은 빈곤한 나라 사람들이 꿈을 안고 대한민국으로 밀려오고 있다. 이것은 참으로 좋은 소식이다. 지난 역사에서 단일민족(單一民族)이나 민족주의(民族主義)에 묶여 높은 담을 쌓는 나라는 패망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미국이 세계 부국을 이루기까지 그들은 가장 먼저 이민 정책과 이주 노동자를 받아들였다. 아메리카는 다민족이 서로 관용을 베풀며 소통하면서 세계 최강, 최고의 부를 누렸다. 그러나 점차 인종 차별과 함께 자국민 보호 정책으로 불관용 정책을 펼치면서 미국의 국력은 약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이민자 문제, 환경 문제, 중동 정책 등에서 폐쇄적인 불관용 정책으로 미국은 최대 강국의 힘을 잃기 시작했다.

관용(寬容)을 상실하는 나라는 쇠퇴하며 초강대국이나 선진사회가 될 수 없다. 지난날 폐쇄적인 고립과 이기로 담을 높인 나라들은 모두 패망했다. 고대 아카메네스왕국, 로마, 중국의 황금기 당, 네덜란드, 영국, 스페인, 오스만제국, 몽골 등 한 시대를 제패한 초강대국들도 패쇄적인 관용으로 인해 붕괴의 길로 접어들었다.

에이미 추아(예일대학 법대 교수)는 제국의 미래에서 세계화의 모순과 성공한 제국의 공통점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그들은 누구보다 더 다원주의적이고 관용적이었다. 과거 독일과 일본의 실패 사례처럼 강력한 패권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열쇠는 강요와 위협이 아니라, 타인을 모으고 끌어안는 종교적, 인종적 관용에 있다. 역설적으로 제국은 관용을 베풀면서 세계 패권을 획득하지만, 동시에 관용을 상실하면서 붕괴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고 표현했다.

천국은 빈손으로 가는 곳

그렇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 우월감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숫자와 퍼센트만 보고 경제성장에 취해 착각하며 살 수 있다. 경제성장으로 보따리가 더 커지는 곳은, 큰집과 대기업이 대부분이다. 경제성장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있다. 지구촌은 이미 의식주가 더불어 공생공존(共生共存)하며 함께 살고 있다.

▲ 지금 대한민국에 먹을 것, 얻을 것이 있기에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지만 함께 살아야 할 이웃들이다. 인구는 바로 국력이며, 소중한 인력 자원도 된다. (사진 제공 국인남)

지금 대한민국으로 수많은 이민자와 이주 노동자들, 그리고 탈북민까지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이들 모두는 함께 살아야 할 소중한 이웃들이다. 짐승도 물과 먹잇감이 있는 곳이면 수백 킬로를 찾아 이동한다. 지금 대한민국에 먹을 것, 얻을 것이 있기에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지만 함께 살아야 할 이웃들이다. 인구는 바로 국력이며, 소중한 인력 자원도 된다.

또한 개신교가 우리 스스로 종교 우월주의에 빠진 곳이 얼마나 많은가. 타종교를 무시하고 배척하는 행위 자체가 바로 불신이다. 이타적인 삶과 받아들일 줄 아는 삶만이 진정한 복음이다. 앞으로 수많은 이주노동자와 탈북민들이 점차 밀려올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서로 관용(寬容)하며 받아들이는 방법을 시급히 배워야 한다.

필자가 그녀들과 함께 삶의 현장을 다니면서 느낀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그들의 말투와 차림새를 보고 무시한다. 그리고 서투른 행동과 어설픈 표정을 비웃고 천대한다. 지난날 우리 부모님 세대도 잘사는 나라에 가서 뼈를 깎는 고생을 했다. 오직 부모와 형제를 위한 희생이었다. 그 희생의 땀과 눈물로 지금 대한민국은 배꼽 나온 옷으로 치장하며 다이어트하며 살고 있다.

또한 전쟁의 폐허에 굶주린 우리에게 수많은 나라에서 이름 없는 천사들이 긍휼의 손을 펼쳐 주었다. 과거에 받았던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단지 빚을 갚아야 할 빚진 이일뿐이다.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이 숨어 있고, 그들도 흙으로 빚어진 질그릇이다. 흙과 흙이 섞여질 때, 질그릇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지금 각자의 그릇을 비웠다면, 장차 새로운 것들로 채우실 하나님의 섭리가 기대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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