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꿈속에서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 침대에 누워 있었다. 눈을 뜨면서 고교 개학식이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숙제가 안 되어 있었고 교복을 어디 처박아 두었는지도 기억이 안 났다. 즐겁게 방학을 보내다 보면 개학이 곧 다가올 거라 생각지 못하는데 개학은 불현듯 다가왔다.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가방을 챙기고 교복을 찾아 입고 등교를 할 때 기분이 영 안 좋았다. 허둥대다 보니 시간도 간당간당해서 지각을 할지 몰랐다.

지구의 마지막이 그런 식으로 온다면, 즉 눈을 떴더니 마지막이라면…. 나는 꿈속에서처럼 아무 준비를 못하고 있다가 허둥대지 않을까? 지구의 마지막이 온다고 듣기는 했지만, 설마 오늘이겠어 할 때 그 마지막 날이 도착할 테니 말이다. 예수님은 지구의 마지막이 그렇게 느닷없이 온다고 말했다. 그래서 준비된 사람만이 그날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다고 하셨다.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있을 때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글을 읽고 두려움에 떠는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그 멸망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처음 보는 내게 말을 걸었다. 처음엔 지구가 2012년에 멸망한다는 영화의 제목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멸망설이 실제로 떠도는 모양이었다. 나는 기독교인인데 성경에선 마지막 때와 시간을 아무도 알 수 없다 하더라고 전해 주었다. 그러나 그녀의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녀처럼 불안해하는 것도 좋지 않겠지만 마지막 날에 대해 너무 느긋한 나의 모습이 올바른 것 같지도 않았다. 예수님이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실 때의 맥락은 느닷없이 올 '그 날'을 깨어서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 설령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마음 놓고 있어서 될 일은 아니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열 처녀들은 신랑을 맞으러 갔지만 그가 늦게 오자 졸고 말았다. 신랑은 사람들이 예측할 때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래 기다릴 것을 대비해 등에 넣는 기름을 준비한 다섯 명은 신랑이 왔을 때 나갈 수 있었고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기쁨을 누린다. 남은 다섯 처녀들은 뒤늦게 기름을 사러 나가지만 결국 혼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만다.

그렇다고 마지막 날 심판의 대상이 될까 봐 벌벌 떨고만 있으면 안 될 것이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을 굳은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달란트를 묻어 두기만 하였다(마 25:24~25). 하지만 하나님은 탕자의 아버지와 같이 인자한 성품을 지니셨다. 우리는 그분의 은혜 안에서 자유롭고 용감하게 살아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달란트를 계발하며 그것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그 영광스런 승리의 날에 동참할 것을 기대하기,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이다.

신랑이 오실 것을 기다리며 여분의 기름을 지녔던 열 처녀의 마음은 어떠한 것일까? 아마 방학 숙제를 퍼펙트하게 완료한 학생이 개학식을 기다리는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학생에게 개학하는 날은 벌을 받으러 가는 날이 아니라 칭찬과 상을 받으러 가는 날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늘날 신실한 성도들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이유도 이와 같다. 이들은 주님 편에서 싸우고 있기에 주님이 대군을 이끌고 오시는 그날 승리에 동참할 것을 기대한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