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어> /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펴냄 / 134면 / 7,000원
바다 앞에 살았으므로 무작정 바다를 좋아했다. 그 깊은 고요와 적막함. 바다는 그 넓이와 깊이만큼 강렬하게 다가왔다. 강의 은은함을 좋아하게 된 건 어른이 된 이후였다. 짧은 삶이지만 사는 것이 맘 같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곳에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이 있었다. 은빛 강의 수면은 바람에 따라 천 갈래 만 갈래로 반짝였다.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는 강물처럼 은은한 이야기였다. 시인 안도현은 맑은 감수성으로 연어의 성장 과정과 사랑, 자연의 장엄함을 그려 내고 있다. 그는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이,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주인공 은빛 연어는 남다른 고기였다. 보통의 고기들은 배는 희고 등은 검푸른 색을 띠지만 그의 등은 은빛을 띄었다. 적들의 공격에 가장 먼저 노출되는 그는 동무들에게 따돌림을 받으면서도 둘러싸여 보호받아야 했고, 그래서 더욱 자유롭게 세상을 보고 싶어 하는 성격을 가지게 된다.

은빛 연어는 혼자서 물가로 고개를 내밀다가 불곰의 습격에 노출된다. 그때 늘 은빛 연어를 지켜보던 눈 맑은 연어가 등지느러미에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그를 구해 준다. 많이 아플 것 같다고 걱정하는 은빛 연어에게 눈 맑은 연어가 말한다. "네가 아프지 않으면 나도 아프지 않은 거야." 그녀는 그렇게 은빛 연어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다. 자기 자신보다 다른 무언가를 소중히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 은빛 연어. (사진 제공 정영란)
하지만 은빛 연어에겐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 연어가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강의 상류로 가는 이유가 알을 낳기 위해서이고, 그것이 연어 삶의 목적이라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 그런 은빛 연어에게 강은 가르쳐 준다. 자신이 바다로 가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고. 자신은 그저 존재하고, 존재한다는 것은 자신이 아닌 다른 것들의 배경이 되어 주는 것이라고.

그리고 은빛 연어는 그 옛날 자신의 아버지처럼 먼 훗날을 위해 지금 당장 쉬운 길로 가지 않는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알들이 강해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윽고 상류의 시냇물에 이른 은빛 연어는 시냇물이나 강, 바다가 다른 것이 아님을 깨닫고, 강물과 땅, 자연과 인간, 연어와 인간도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자신에게 집중하며 살았던 그가 자신도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은빛 연어는 '이것이다!'라고 할 만한 거창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는 다만 희망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의 곁엔 그의 가슴 속에 맺혀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고 싶어 하는 눈 맑은 연어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간직한 알들이 있다. 알들을 남기고 연어들은 숨을 거둔다. 어찌 보면 보잘것없는 삶이지만 읽으며 가슴이 아리는 것은 왜인지.

<해리 포터> 시리즈를 지은 조앤 K. 롤링은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내가 확실히 아는 한 가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확실히 아는 한 가지는 사랑이 모든 것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죽음까지도." 그녀가 이 사실을 깨달은 건 9·11사태를 보면서였다고 한다. 죽음 앞에서 많은 이들이 지인에게 전화하며 한 말이 '사랑한다'였다. 롤링은 자신도 그 상황에서 그렇게 말했을 거라고 했다.

오프라 윈프리는 롤링에게 "신을 믿는군요"라고 말했고 롤링은 그런 것 같다고, 그렇다고 답했다. 멋진 작품을 창작하여 최초로 억만장자 작가가 된 롤링도 죽음 앞에 서야 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 죽음을 넘어서는 무엇이 존재한다는 건 희망을 준다. 롤링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하였고 나도 사랑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는 걸 믿을 수 있을 듯했다.

사랑 때문에 목숨을 버린 대표적 인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그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를 사랑하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진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아름다운 것은 그가 실제로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이들을 흠모하며 기도할 뿐이다. 언젠가 나도 그 사랑의 대열에 합류하여 강을 거스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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