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김승범

'송희로 인하여 난 참 많은 것을 얻었다. 예쁜 딸을 얻었고 좋은 사람들을 얻었다. 송희로 인하여 난 더 깊이 있는 인생을 살고 있다. 남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 나의 죄인 됨을 더 많이 고백하게 되었다. 송희로 인하여 난 사랑하는 순간이 행복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힘든 일인지 피부 깊숙이 느꼈고, 그러기에 남편과 의민이와 송희를 사랑하기로 했다. 송희로 인하여 난 참 행복하다. 한때는 송희로 인해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 불행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조차도 귀중하고 매일매일 조금씩 사랑스러워지는 송희에게 감사하다. 송희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 송희는 나와 하나님의 사이를 한 발자국 더 다가서게 만들었으니까.'

엄마 고혜정씨(29)가 송희를 키우며 쓰는 육아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여느 육아일기와 다른 것은 송희가 입양아라는 점이다. 그래서 일기에는 송희를 사랑하려는 엄마의 끊임없는 구애가 엿보인다.

오늘은 남편(백명기 목사·36)과 함께 목회자체육대회를 앞두고 연습이 있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그런데 송희, 요 딸내미가 내 속을 마구 헤집는다. 처음 보는 목사님께 무조건 꼬꾸라져서 뒹굴고 웃고 까불고 난리가 아니다.

"사모님, 어쩜 아이가 낯도 안 가리네요."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엄마인 나를 보면 슬슬 눈치를 살피고, 손짓을 해도 오지 않고 위험한 것이 있어 만지지 못하게 하면 큰 소리로 울어 재낀다. 정말이지 몇 대 쥐어박고 싶었다. 집에 와서 한숨 자고 일어난 송희. 아직도 심난한 엄마. 집에 돌아왔으면 알아서 엄마에게 붙어도 시원찮을 판에 자고 나서 나를 보자 또 엉엉 울면서 제 아빠에게만 붙는다. 평소에도 송희는 나보다 아빠를 더 좋아해서 나에게는 잘 안 붙지만, 아빠에게는 뒹굴고 부딪치고 잘도 논다. 평소 내가 송희에게 따뜻하게 못했으니 그렇겠지만 아직까지 송희는 모녀 사이의 끈끈한 정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내 마음 밑바닥에서는 송희가 나에게 여느 딸들이 엄마 대하듯 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자고 일어난 송희가 나를 슬슬 피하자 화가 나서 들고 있던 신문지로 때렸다.

▲ⓒ뉴스앤조이 김승범
"야! 내가 널 잡아먹기라도 하냐? 그렇게 엄마가 싫으면 너 좋아하는 아빠하고만 살든지! 엄마 보기 싫으면 네가 어쩔 거야?"

그렇게 소리까지 치면서, 천천히 서두르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한 번씩 이럴 때면 송희와 나 사이가 자꾸 힘들어진다. 어쩌면 엄마와 딸이 되어 가는 처절한 전쟁인지도 모르겠다. 왜 나를 엄마로 인정하지 않느냐고 어린 딸에게 소리치고 화내고 있는 대책 없는 엄마! 송희야, 정말 미안하다. 나도 좋은 엄마이고 싶은데, 엄마는 요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구나! 내일은 조금만 더 너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엄마가 될게, 송희야!

이제 다섯 살인 아들 의민이만 키웠으면 상하지 않아도 될 마음이다. 물론 송희는 특별한 입양이었다. 대개 갓난아기를 입양하지만 송희는 이미 18개월이나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였다. 보육원 생활을 하면서 송희는 그 생활에 적응하는 방식을 배워 버린 상태였다. 눈치를 볼 줄 알고, 누구에게나 안겨서 웃을 줄 아는 아이, 자기를 엄마처럼 사랑해주는 누군가를 갖지 못한 아이로…. 그런 송희에게 엄마라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고혜정씨의 마음은 때로는 욕심이 되었고, 아픔이 된 것이다. 그렇게 폭발해버린 마음을 다시 제자리로 옮기기 위해 많이 눈물 흘리고, 무릎 꿇고, 나름의 원칙까지 만드는 과정들이 필요했다. 그러다가도 일은 또 터지고 만다.

아빠는 오전 내내 주일 준비로 바빴다. 송희가 서재를 살며시 열고 들어가려는데 의민이가 보고만 있겠는가. 늘 서재만큼은 아이들에게 출입금지 구역이라고 일러두었는데. 안돼, 큰 소리로 문을 쾅 닫고 말았는데 송희 손가락이 문에 끼어버렸다. 송희는 죽어라 울어 재끼고 여러 번 그러지 말라고 경고했던 남편은 벌컥 화가 난 것이다. 남편은 의민이를 서재로 데리고 들어가 문을 닫고 매를 들었다. 의민이는 엉엉 울고, 남편은 의민이를 또 큰 소리로 야단친다. 상황이 이렇게 홱 뒤집어졌는데, 송희는 어느새 내 옆에서 뒹굴며 논다. 누구 때문에 생긴 일인데, 그 순간 송희가 꼴도 보기 싫어진다. 물론 의민이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결국 참다못해 송희를 끌고 남편 있는 서재에다 떠밀다시피 해서 밀어 넣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잠시 후 다시 집에 들어서니 송희와 의민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란히 앉아서 비디오를 보고 있다. '어이구, 이 웬수들.' 나만 바보가 되었고, 나쁜 엄마가 된 꼴이었다. 난 어떻게 된 게, 잘 나가다 이렇게 한 번씩 감정을 다스리지 못할까.

이제 엄마는 송희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송희 엄마로서의 사랑 방식을 터득한 셈이다. 세상의 수많은 사랑들이 모두 제각각의 색깔을 지니듯 송희 엄마로서 송희를 사랑하는 색깔 역시 다를 수밖에 없음을 발견한 게다. 엄마 아빠가 좋아서 입양한 일이니 다른 사람들의 입방아에 마음 흔들릴 까닭도 없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송희로 인해 찾아오는 즐거움이 보인다. 송희는 건강하다. 의민이가 자주 감기치레를 하는 것에 비하면 송희는 효도하는 셈이다. 엄마는 그런 송희를 낳아준 송희의 '첫 엄마'에게 감사하게 된다. 송희는 성격이 쾌활하고 밝아서 내성적인 의민이와 많이 다르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분위기를 압도하는 송희다. 그런 송희를 키우는 맛 또한 의민이를 키우는 맛과 다르니 새삼스럽다.

"우리는 송희 문제로 늘 대화합니다. 이런 대화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가족이 무엇인지 배우게 됐어요. 파양(입양을 취소하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전에는 아이에게 두 번씩이나 불행을 주는 일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말했지만 그들의 마음이 오죽 상했으면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 한편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가족은 그 이상이지요.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안고 가는 것입니다. 송희가 우리 가족이 된 후 비로소 삶을 보는 눈이 깊어졌습니다. 아이가 결코 '내 아이'가 아니라는 신앙도 분명해졌습니다. 송희는 이런 희망을 안고 우리 가족이 된 것입니다."

송희에게는 입양아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 공개입양, 그것은 입양아의 권리를 존중하는 일이다. 자신을 낳아준 엄마 아빠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기 위해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입양아를 보는 일그러진 시각을 바로잡는 일이다. 백명기 목사와 고혜정 사모가 송희의 부모로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큰 일이다. 백 목사는 송희를 입양하고 나서 장신대 신학대학원에 다시 입학해 입양에 대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다른 입양 가정을 돕고 입양에 대한 바른 의식을 세상에 이야기하려는 노력인 셈이다.

입양아에 대한 일그러진 시각 바로잡을 터

▲ⓒ뉴스앤조이 김승범

한인입양홍보회(www.mpak.co.kr) 모임은 그들의 꿈을 함께 꽃피우는 입양 부모들의 공동체다. 백 목사 부부도 입양 후 생긴 많은 고민들을 이 모임에서 해결할 수 있었고, 이제는 입양 선배로 또 다른 입양 가정의 도우미가 된다. 놀라운 사실은 입양 가정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은 가정들에 비해 삶의 깊이가 다르다는 점이다. 입양이 곧 복이라는 것은 이 모임에서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문제는 백 목사 부부가 요즘 새로운 '바람'이 난 것이다.

공개 입양은 중독되는 것일까? 의민이 다섯 살, 송희 네 살. 그리고 아직도 송희와 힘든 상황이 될 때도 많은데, 은총이와 예란이네가 아이 하나를 더 입양한다고 하니 괜히 마음이 울렁거린다. 마음 깡깡이 먹고 있어야지, 하는데도 부러운 마음이 든다. 얼마나 예쁠까 싶기도 하다. 내 나이 스물아홉 살, 남편은 서른여섯 살이니 아직 우리에게는 기회가 많겠지. 마음 가라앉히고 시간 지나고 안정되면 그때 다시 입양을 생각해야지. 송희를 위해서 예쁜 여동생이어야겠지? 우리 아이들이 좀더 크고 내 마음도 좀더 크면 그때는 또 한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 어제는 텔레비전에서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아이들이 비쳤다. 그것을 보며 내 마음속에는 '어쩌면 저렇게 예쁠까, 저 아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내가 키워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정말 한 아이라도 가정에서 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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