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겁에 질려서는 혼자 걱정만 많았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라는 말씀은 성경책을 뚫고 나와 내 손에 강력한 무기로 쥐어지지 못했다. 통근 버스를 멈춰 세우고 예수님을 태우는 법도 알지 못했다. 찬양의 기쁨이 주일 예배실 밖으로 흘러나오지도 않았다. '주님의 임재 안에서'라는 게 무슨 뜻인지, 일터에서 예배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은 아는 것 이상이 되지 않았다.

▲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
가을은 결코 공평하게 오지 않았다. 공장에는 가을이 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가을바람을 맞으며 삶을 느끼는 대신 높이 쌓인 술잔 박스들, 기계가 내는 소음들, 별로 할 말이 없는 이웃들 사이에서 빨리 손을 움직일 궁리를 해야 했다. 점심때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공장에는 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술잔을 옮기기 위해 친구가 없는 곳에 다니고 싶지 않았다. 옆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먼저 먹고 일어나자 머쓱해진 나는 친한 언니에게 문자를 한 통 날렸다. 여기서 사람 더 구하면 함께 일할 수 있느냐고.

문자 한 통을 보냈을 뿐이지만 이틀 후에 선물처럼 언니가 공장에 왔다. 밥 먹을 동무가 생기고 나자 점심시간이 기다려졌다. 하루는 같은 라인에서 둘이서 함께 일을 하였다. 일을 하다가 왼쪽을 돌아보면 언니가 일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항상 시내의 식당이나 카페에서 만났고 뭔가를 먹고 이야기하는 것만 했었는데 지금은 달랐다. 예수님과 함께 일하는 것처럼 힘이 났다. 그리고 2010년 전, 예수님이 인간의 죄짐을 짊어지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느껴졌다.

하지만 예수님이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셨듯이 언니는 갑작스런 사정으로 일한 지 삼일 만에 공장을 나가야 하셨다. 소식은 일요일에 날아왔다. 그 날 소그룹 성경 공부의 제목은 '성령님'이었다. 예수님은 떠나시기 전 제자들에게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또 다른 보혜사(돕는 자) 성령님을 보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이 성령님은 내 안에 영원히 거하시는 분이셨다. 일하기로 한 기간은 2주가 남아 있었다. 나는 내 마음 속 어딘가에 계실 성령님과 동행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공장에 오신 언니는 3일 동안 생각보다 많은 걸 가르쳐 주고 가셨었다. 출근할 때나 일하다가 불안할 때 기도하면 된다는 걸 가르쳐 주셨다. 함께 일하는 이웃들에게는 친절히 인사를 하고 점심을 먹을 때 말을 건네어도 좋다는 걸 행동으로 알려 주셨다. 이제 언니는 통근 버스에 타지 않으셨지만 그녀의 가르침이 내 안에 살아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문자에 말씀을 적어 교회 소그룹 멤버들과 언니에게 보내었다. 그 말씀은 오히려 내게 힘을 주며 내 손의 검이 되었다. 한번은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라는 말씀을 성경에서 찾아 보내다가 다음 정류장에 내리고 말았다. 통근 버스를 타는 정류장까지 도로 뛰어가는데 통근 버스가 휭 하니 지나갔다. 바깥쪽이 아니라 도로 안쪽이어서 인도에 있는 나를 못 본 것이다. 놓치면 지각이기에 눈앞이 캄캄했다. 그때 마침 신호가 바뀌면서 통근 버스가 섰다. 나는 도로를 가로지르며 뛰어가 문을 두드렸다. 아주머니들이 어떻게 딱 맞춰 타냐고 웃음을 터뜨리셨다. 하나님은 주무시지 않고 나를 지켜 주셨다.

일이 익숙해지자 일을 하며 혼자 찬양 콘서트도 했다. 기계 소음 때문에 내 목소리는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생각나는 노래를 거의 다 부르고 그러다 질리면 지어 부르기까지 했다. 그동안 찬양을 부를 때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것에 대해 약간 반감이 있었다. 하지만 공장에서는 보혈, 축복, 자유와 같은 다소 추상적인 단어에도 기쁨을 누렸다. 더 좋은 가사가 필요하다면 내가 지으면 될 일이었다.

몇 명 안 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반장님의 말투나 힘든 일을 못 견디고 나갔다. 그러면 또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이 들어왔다. 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말을 걸어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아주머니들 옆에 끼여 먹기도 하였다. 그 와중에도 성령님은 나를 왕따와 같이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항상 함께하셨다.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가던 시간은 어느새 도착점에 다다랐다. 2주일이 지나 마지막 날이 온 것이다.

모든 일에는 매듭이 필요했다. 작지만 하나의 매듭이 지어졌음을, 이 매듭을 통해 내가 배워야 했던 것을 배웠음을 감사했다. 이제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의 임재 안에서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퇴근길에 통근 버스에서 내 옆자리에 앉는 아주머니께 사과 한 알을 전해드렸다. 별 것 아니었지만 아주머니는 기뻐하시며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사과 한 알과 함께 그리스도의 향이 전해지기를, 그분의 빠알간 마음이 전해지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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