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에는 노인 분들이 많이 계셔서 그런지 30년 후의 내 모습을 매일 바라보면서 사는 듯 합니다.

어버이주일을 보내면서 소현이 아빠가 보내준 삼겹살을 아이들까지 온 교회 식구들이 먹었습니다.

생일날이나 잔치집처럼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소현이 엄마는 식사가 끝나도록 "잘 먹을께유…" "고맙네유…" 앞 뒤에서 인사를 건네고 시집을 잘 갔다는 얘기까지 맘껏 띄어주며 우린 볼이 미어지도록 먹었습니다.

수요일 저녁 기도회에 들어온 소현이네에게 "차라리 주일날이 어버이날이었으면 좋겠어요. 성도님들 가슴에 꽃도 달아 드리고 점심에 근사한 고기 파티도 열고 오늘 같은 날 너무 조용히 지나는 것 같아 서운하네요" 무심코 꺼낸 얘기를 새겨들었던 모양입니다.

토요일 오후 장보러 가기 전 미리 삼겹살을 스무 근이나 사왔습니다. "생고기라 그냥 가져 왔어유. 살짝 얼렸다가 목사님이 또 쓸으셔야 되것네유…" 교회 어른들을 생각하는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고마운지… 덕분에 따뜻한 어버이주일을 보냈습니다.

어버이날이 지나고 나니 은근히 '이번 어버이날 자식들이 얼마를 주고 갔다느니 통장으로 얼마를 부쳤다느니' 세뱃돈을 세는 아이들처럼 노인들끼리는 가슴에 달고 있는 꽃만큼이나 자랑도 되고 서운함도 쌓이고 옆에서 지켜보기가 민망했습니다.

노인들에겐 기다림만큼 큰 즐거움도 없나 봅니다. "밖에서 일하다가 전화 소리가 나믄 반가워서 신발도 못 벗고 뛰어 들어와 전화를 받는걸유" "다 그래유. 막 뛰어와서 받었는데두 어떤 땐 끊기잖어유. 그럼 하루 종일 궁금해서 죽겠어유."

몇 일 전에는 이봉실 집사님과 동생인 성실 집사님이 둥굴레를 캐러 산에 갔다 와서 나두 이렇게 아픈데 우리 동생은 어떻겠나 싶어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답니다. 그때 마침 성실 집사님도 발을 씻고 계셨는데 전화가 끊길새라 비누칠도 못 헹구고 급히 들어오다가 쭐떡 방바닥에서 미끄러져 한참 동안이나 숨이 콱 막히더랍니다.

잠시 후 다시 울린 벨 소리에 "방금 전에 전화하니 안 받더라. 화장실 댕겨왔냐? 산에 갔다 와서 많이 힘든가 궁금해서 전화했다. 너 괜찮냐?" "괜찮긴 뭐가 괜찮어 언니 때문에 전화 받으러 뛰오다 넘어져서 죽을 뻔했는데…"

언니에게 괜한 구박을 퍼부었지만, 그래도 싱거운 전화라도 걸어주는 건 서로의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떤 날은 "야 걸레를 암만 찾어두 읍다. 니 왔다 간 담에 웁써졌는데 혹시 안 가져갔냐?" "언니두 참 싱겁긴, 그것 때문에 전화했어?"

최성일 권사님도 자녀들이 점심시간에 회사에서 전화를 자주 하신 답니다. 그래서 점심시간엔 외출을 통 안 하시고 혹시 걸려온 전화를 기다린답니다. 권사님뿐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어른들의 모습이 그럴 겁니다.

그래도 다른 동네 노인들에 비하면 우리 교회 식구들은 행복한 분들입니다. 새벽기도 때 보이지 않아도 저녁에 늦게까지 불이 켜 있어도 이런저런 안부를 묻는 전화를 주고받으니 말입니다.

행여 자주 오지 않는 자식들의 전화를 기다리다 삐지기 보다 우리끼리 만들어 가는 정겨움에 익숙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민형자 사모 / 대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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