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길들여, 나는 울게 될 거야." 혹시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해서 그 부분을 다시 읽어 보았다. 관계를 맺는다는 건 아픔 속으로 들어감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여우는 길들이는 것이 행복이라는 걸 강조한다. 만약 항상 네 시에 만나게 된다면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라고 말이다. 그래놓고선 어린 왕자가 떠날 때가 되니까 여우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장미와 헤어지고 아픔을 느낀다. 장미의 못된 말이 아니라 그녀가 내뿜는 향기로 그 사랑을 눈치챘어야 했다는 후회를 한다. 한편 글쓴이는 어린 왕자와 헤어지며 상실의 고통을 겪는다. 그는 양에게 부리망을 그려 주지 못하고 보낸 것에 대해 염려한다. 양이 왕자의 장미를 먹어버리지나 않았을까 근심할 때마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도 눈물로 변한다.

영화 <아저씨>에서 주인공 차태식(원빈)은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은 불행한 사람이다. 그는 마음을 닫은 채 전당포에 박혀 산다. 그런 그에게 자꾸 말을 걸며 다가오는 꼬마가 얼마나 불편했을까? 그가 길목에서 곤란한 상황을 당한 꼬마를 모른 체하고 가 버렸을 때 나는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또 다시 마음을 연다는 것은 그에게 상처받기를 자초하는 행위였을 따름이다.

그러던 중 꼬마가 납치를 당해서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 꼬마마저 잃어버리는 건 태식에게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어찌 보면 옆집 아저씨에 불과한 그는 꼬마를 구하기 위해(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천당까지 반납하면서 분투한다. 나쁜 놈들이긴 하지만 참으로 많은 이들을 죽인다. 그러나 그의 가슴 속에는 복수심이나 증오보다 꼬마를 구하고 말겠다는 사랑의 집념이 더 크게 타오르고 있는 듯 보였다.

사실 태식에게 꼬마는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헤어짐은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닫게 만든다. 마음을 닫고 웅크리고 있던 사람도 용기를 내어 사랑의 걸음을 내딛게 된다. 장미 역시 못되게 굴면서 숨기긴 했지만 어린 왕자를 사랑한다. 그녀가 어린 왕자가 여행을 떠나는 날에야 "그래, 너를 사랑해."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어릴 적에 읽을 땐 눈치채지 못했던 감동이 있는 장면이었다.

어떤 일이든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있다. 누군가에게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우주적으로 위대한 일이지만 상실의 아픔에 노출되는 일이기도 하다. 마음을 열면 상처 받기도 하고 고통을 겪기도 한다. 헤어짐 속에서 눈물을 흘려야 하고 때론 잃어버린 사람을 되찾기 위해 고생해야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관계를 맺으며 아픈 사랑 이야기에 감동을 받는다.

내가 <어린왕자>와 <아저씨>를 보며 감동을 받았던 것도 등장인물의 가슴 속에 가득한 사랑 때문이었다. 여우는 어린 왕자와 헤어지는 것을 슬퍼하였지만 관계를 맺은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어쩌면 삶이란 거대한 성취의 여로보다는 소소한 사랑의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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