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지도하면서 가장 많이 저항을 받은 것이 개요 작성하기였고, 가장 안 되는 것은 문단 쓰기였고, 가장 나를 놀라게 한 것이 소제목 달기였다. 원고지 10매의 글이나 제목은 좋은데 그보다 조금 더 긴 A4 3장 이상의 글들의 소제목은 당황스러웠다. 뒤죽박죽이었다. 창조 이전의 혼돈을 보는 듯했다. 본인들 나름 최선을 다해 붙여 놓은 것일 테고, 글쓰기 초보인 상태인지라 칭찬과 격려가 한창 필요한 때이어서 딱히 지적하기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학생들에게 기대를 접지 않은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글쓰기를 시작하고 얼마 후, 긴 글을 내지 않고 A4 1장 정도의 짧은 글을 내면서 문제가 원천적으로 사라졌다. 다른 하나는 1장 분량의 글을 잘 썼기에 느긋할 수 있었다. A4 3장이나 심지어 10장이 넘는 글도 기실 1장을 쓰는 방식과 그리 다르지 않다. 1장의 제목이 그대로 소제목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소제목 잡기의 어려움은 일반 저자들도 당면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느 출판사 편집자 전언에 따르면, 완성된 단행본 분량의 글을 쓴 저자들이라도 그들이 붙인 소제목이 영 이상하단다. 몇 줄 쓰고 소제목을 달기도 하고, 어떤 때는 몇 페이지를 쓰고도 소제목이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들쭉날쭉하다.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소제목은 부지기수다. 그리고 초창기 내 책도 지금의 내 눈금으로 보면,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러니 글쓰기를 갓 시작한 수련생들을 보고 놀랄 일이 아니다.

탄탄한 개요 작성이 해결책

소제목을 잘 잡기 위해서는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아는 것이 우선이다. 자기가 쓴 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고, 당연히 독자들에게 그런 글은 첩첩산중이요, 오리무중이다. 해결책은 사전에 개요(outline)를 탄탄하게 구성하는 것이다. 개요의 알맹이가 실상은 소제목이다. 그리고 '한 문단 = 한 생각' 원칙에 철저하게 문단 쓰기를 평상시에 연습해야 한다.

수련생들의 소제목을 보고 놀란 것은 각각이 이상하거나 엉성해서가 아니다. 제목과 소제목들이 제각각 따로 놀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체 제목을 주어로 삼고, 소제목을 동사가 되게 해서 문장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내 설교문에서 몇 가지 예시를 뽑아 보았다. 제목은 '항상 기뻐하려면'(빌 4:1~9)이다. 소제목은 다음과 같다. '⑴ 선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⑵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⑶ 남의 유익을 위해 관용해야 합니다.' 문장으로 만들어 보자. '항상 기뻐하려면 선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려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려면 남의 유익을 위해 관용해야 합니다.'

예시를 하나 더 보자. 제목은 '무엇으로 기뻐하는가?'(빌립보서 3:1~9)이다. '⑴ 내 조건 때문에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⑵ 내가 한 일로 기뻐해서는 안 됩니다. ⑶ 예수님 때문에 기뻐해야 합니다.' 이 경우는 각 소제목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에 달리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구차할 정도다.

이번에는 소제목을 주어로 삼을 수 있는 경우이다. 제목은 '풍성한 기쁨의 삶'(빌 4:10~23)이다. '⑴ 자족해야 합니다. ⑵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⑶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자족해야 하고, 이웃에게는 베풀고, 주의 은혜가 넘쳐야 기쁨이 풍성해진다는 것이 골자이다. 문장으로 만들면 '⑴ 자족이 풍성한 기쁨의 삶이다, ⑵ 나눔이 풍성한 기쁨의 삶이다, ⑶ 은혜가 풍성한 기쁨의 삶이다'가 된다. 이렇듯 큰제목과 소제목을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으면 글의 주장이 명료하고, 분명하게 전달된다.

위의 예(例)들은 소제목이 갖추어야 할 요건을 얼추 보여 준다. 첫째, 소제목은 명료해야 한다. 괜히 멋 부리지 않는 게 좋다. 말하고 주장하는 바를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소제목도 문장 형식으로 쓴다. 그러다 보면 폼 나는 제목도 달 수 있다. 둘째, 유기적이어야 한다. 상호 연관되고,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큰제목과도 소제목을 문장으로 만들어 보면 안다. 아귀가 맞지 않으면 큰제목과 소제목이 유기적이지 않다는 뜻으로 보면 된다.

다른 예시를 통해 설명하도록 하자. 제목은 '여호와의 집에서'(시 23:6)이다. 소제목은 네 개다. '⑴ 나는 집을 잃었습니다. ⑵ 나는 집을 찾습니다. ⑶ 나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⑷ 나는 집이 되어 살겠습니다'. 이 소제목의 특징은 점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집을 잃은 사람이 귀향하는 여정을 순서대로 소제목으로 설정했다. 이 결론에 다다르는 과정이 점진적이다. 마침내 그가 찾던 집이 여호와인 동시에 다름 아닌 그가 집을 잃은 자의 집이 되어 주라는 것이 결론이다.

점진적·논리적·차별적이어야

하나 더 볼까 한다. 야곱에 관한 책을 퇴고하고 있다. 1장은 '출생의 비밀'인데, 소제목은 이렇다. '⑴ 하나님의 선택, ⑵ 부모의기도, ⑶ 야곱의 결정'이다. 전체 제목과 소제목이 한 문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유기적이다. 야곱의 출생의 비밀은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고, 부모의 기도가 있었고, 그가 끝내 이스라엘이 되어 족장의 반열에 들어선 것은 그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 부모 → 야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점진적 구조이기도 하다.

그리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논리적 순서를 따르는 한 방법은 시간 순서에 따른 구성이다. '기쁨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빌 3:10~21)는 다음과 같이 소제목을 구성해 보았다. '⑴ 뒤의 것은 잊어야 합니다. 과거 ⑵ 위의 것을 좇아야 합니다. 미래 ⑶ 앞의 것을 잡아야 합니다. 현재'. 물론, 과거 → 미래 → 현재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연대기적이지 않다. 허나, 모름지기 글이나 설교문은 결단을 지향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가 마지막에 놓일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소제목들이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풍성한 기쁨은 자족, 나눔, 은혜에서 그 각각은 서로 다르다. 어쩌면 별개다. '예수의 모범이 주는 기쁨'(빌 2:5~18)이라는 설교문에서 소제목은 '⑴ 겸손, ⑵ 복종, ⑶ 희생'이다. 이 셋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모습을 노래한 초대교회 찬송의 요체이다. 그러나 독립적이다. 그러면서도 겸손해야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이웃을 위해 희생한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점진적이고 유기적이다.

설교인 경우, 성경 본문을 그대로 소제목으로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야곱이 하란에서 라헬을 만나 사랑하고, 열심히 일한 이야기를 '사랑과 노동'이라고 제목을 잡았다. 소제목은 사랑하는 야곱의 모습을 '⑴ 칠년을 수일같이'로, 뼈 빠지도록 일하는 대목은 '⑵ 눈 붙일 겨를도 없이'로 하였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가 사랑하여 많은 자녀를 얻고, 노동하여 많은 재물을 모은 것은 그의 수고와 함께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이었다. 그래서 '⑶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지 않았더라면'이라고 했다. 성경의 구절을 그대로 사용하더라도 유기적으로, 논리적으로 구성하도록 애써야 한다.

마지막으로 소제목은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면 좋다. '하란에서 보낸 스무 해'라는 글의 소제목은 다음과 같다. '⑴ 인과응보, ⑵ 자기 연단, ⑶ 주의 축복'이다. 모두 넉 자이다. '얍복강에서'는 '⑴ 계획: 지혜인가? 술수인가? ⑵ 기도: 강청인가? 강요인가? ⑶ 능력: 전능한가? 무능한가?' 여기서도 규칙성이 드러난다. 철자의 수도 같고, 구조도 똑같다. 모두 질문 형식이다. 얍복강 나루터에서 하나님과의 씨름이 지닌 이중적 성격이 지닌 속살을 소제목만 보아도 대번에 알 수 있다.

소제목을 달 만한 글은 적어도 원고지 20매 이상이라야 한다. 10매 가량은 제목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 적으면 다섯 문단, 많으면 8문단 정도 되는 글에 전체 제목에, 소제목 두어 개 붙이면 혼잡해 보이고, 불필요하다. 내가 쓴 <가룟 유다 딜레마>나 <예배, 인생 최고의 가치>, <만찬, 나를 먹어라>는 각 챕터가 20매에서 30매 어간이다. 제목을 명료하게 잡는 편이라 굳이 소제목을 붙이지 않았고, 대신 토론과 나눔을 위한 질문을 첨부해서 이해를 돕고자 했다. 평균 10매에서 20매의 글에 제목 하나 있다고 보면 된다. 이는 내 나름의 경험이고 노하우이다. 너무 얽매이지 않기 바란다.

그러나 소제목을 잘 잡는 방법은 준수하면 좋겠다. 명료해야 하고, 논리적이고, 유기적으로 짜야 하고, 서로 차별되어야 하고, 일정한 규칙과 패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제목을 잘 잡는 능력은 멋진 문장이나 구조, 형식에 있지 않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잘 알고 있다면, 소제목 잡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개요를 작성할 것, '한 문단 = 한 생각'에 따라 문장을 쓸 것, 큰제목과 작은 제목을 한 명제로 만들어 볼 것, 이 세 가지를 잊지 말라.

김기현/ 부산수정로침례교회 목사 · <글쓰는 그리스도인> 저자 (www.logosscho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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