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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27일, 뜨거웠던 고등학생들의 민주화 열정을 돌아보다
'신군부 세력 퇴진과 계엄 철폐', 30년 만에 재현된 전주 신흥고 학생들의 외침
  • 변하삼 (beon7th@newsnjoy.or.kr)
  • 승인 2010.06.04 11:54

   
 
 

▲ 기독교계 전주 신흥교등학교에서 지난 5월 29일, 5·27 민주화 운동 기념식이 열렸다. ⓒ뉴스앤조이 변하삼

 
 

5·18 민주화 운동 기념행사가 보훈처의 적절치 못한 행사 진행으로 반발을 불러오면서 논란을 낳으며 여러 우여곡절 끝에 막을 내렸다.  5·18 기념행사는 지나갔지만 지난 5월 29일, 전주의 한 기독교계 고등학교에서는 또 다른 민주화 운동 기념식이 열렸다. 1980년 5월 당시 고등학생들에 의해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전주신흥고등학교(교장 박재하)의 5·27 민주화 운동은 널리 알려진 사건은 아니다. 하지만 5·18 이후 당시 고등학생들이 전두환 퇴진과 계엄 철폐를 요구하며 들고 일어났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상당하다. 당시 시위에 나선 학생들은 신변을 걱정한 교사들의 저지로 비록 전주 시내 진출이 좌절돼 학내에서 시위를 이어 갈 수밖에 없었지만 민주화의 열망을 학생들이 신변의 위협을 무릎쓰고 표출했던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5·27 민주화 운동은 지난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같은 달 27일 신흥고등학교 학내에서 일어났다. 민주화 운동의 주축은 바로 신흥고 학생들이었다. 당시 고등학생들은 1980년 5월 초, 전 국민의 민주화 열망이 뜨거울 무렵 3학년 학생들의 주도로 시위 준비에 나섰다. 하지만 광주에서 벌어진 5·18 소식을 전해 듣고 이후 27일을 거사일로 잡고 전주 시내 각 고등학교 학생회와 학교 밖 민주화 인사들과 연락을 취하며 구체적으로 시위를 준비했다.

   
 
 

▲ 1980년 5·27 민주화 운동에 나섰다가 징계를 받았던 당시 신흥고 선배들이 학교를 찾았다.ⓒ뉴스앤조이 변하삼

 
 

학생들은 하숙집, 웅변 학원 그리고 신상교회에 모여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결의를 다져 나갔다. 신상교회에 모인 핵심 학생들은 '전두환 물러나라, 계엄 철폐하라'는 현수막을 만들고 3학년 허천일 학생은 왜 학생 신분으로 자신들이 학교를 뛰쳐나와 미니주의 재단에 설 수밖에 없는가의 대의명분을 밝힌 '애국 신흥인에게 고함'이라는 글을 전단지에 담았다. 거사 당일 새벽, 학생들은 당시 전주 지역에서 국제 엠네스티 활동으로 명망이 높았던 백윤석 목사에게 안수 기도를 받았다.

하지만 27일 학교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학교 주변에는 무장한 계엄군이 진을 쳤고 하늘에는 군용 헬기가 굉음을 울리며 선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공포감을 이겨 내고 1교시가 시작되자 방송실을 장악하고 운동장으로 뛰쳐나왔다. 학생들은 스크럼을 짜고 '독재 정권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학교 밖으로 진출을 시도했다. 당시 시위에 참여해 퇴학 처분을 받았던 이우봉 씨는 "그날 학교는 무장 군인과 헬리콥터의 굉음으로 공포에 휩싸였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민주화 열망은 식지 않았다고 이 씨는 덧붙였다.

하지만 학생들은 저지한 것은 신흥고 교사들이었다. 학생들이 학교 밖으로 나갈 경우 무장 군인과 충돌해 피해가 커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교사들은 학생들을 끝까지 보호하려고 필사적이었다. 결국 학생들의 전북도청 앞 진출은 무산됐다. 대신 학생들은 학교 운동장과 강당 등지에서 시위와 시국 발언과 통성 기도를 이어 가며 신군부 세력에 저항했다.

   
 
 

▲ 유공자 대표로 격려사에 나선 이우봉 씨. 이 씨는 당시 퇴학 처분을 받았다.ⓒ뉴스앤조이 변하삼

 
 

이후 학교 측과 계엄 당국의 협의가 진행돼 학생들은 무사히 귀가하면서 시위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시위는 이날로 끝나지 않았다. 귀가한 핵심 학생들은 광주 항쟁을 할리는 전단을 시내 학교에 뿌리며 저항을 이어 갔다. 그러나 한 달여의 저항 활동 끝에 결국 일부 학생들이 계엄 당국에 붙잡혔다. 이들은 광주 상무대 교도소에 수감되어 각종 고문과 구타 등 모진 고통을 당하며 1년의 옥고를 치렀다. 또 학내 시위를 주도했던 총 27명의 학생들이 정학(17명), 무기 정학(7명), 퇴학(2명)을 각각 당했다.

지난 5월 27일은 신흥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지 30년을 맞는 날이었다. 이제는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어 학교를 방문한 선배들은 기념식 내내 감격에 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학교는 이날 정학과 퇴학을 받은 당시 학생들에게 징계 무효를 선언했다. 신흥고 박재하 교장은 "110년 역사의 기독교 학교인 신흥고는 일제와 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정의를 외쳤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서 "민주화 운동에 나섰던 선배들과 함께 신흥인들은 큰 자부심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학생들도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며 만세 삼창을 외쳤다.

   
 
 

▲ "목사님 저희들 왔습니다" 당시 교목이었던 유병곤 목사와 유공자들이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재회했다.ⓒ뉴스앤조이 변하삼

 
 

이날 기념식에는 6명의 당시 징계 학생들이 참석했고 당시 교목이었던 유병곤 목사, 그리고 교사들이 참석해 회한을 나눴다. 격려사를 맡은 유공자 대표 이우봉 씨는 "학교가 많이 변해 세삼 세월의 흘러감을 느끼게 됐다"면서도 "그때 그모습을 간직한 강당에서 30년 만에 후배들을 만나게 돼 감회가 세롭다"고 말했다. 또 이 씨는 학생들에게 "선배들의 민주화의 열정을 후배들이 이어 가 주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유공자들은 이날 학교 측에 5·27 민주화 기념탑과 매년 5월 27일을 기념일로 지정해 줄 것을 제안했다. 기념탑 건립 재정은 유공자들이 제공하겠다고도 밝혔다. 학교 측은 유공자들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협의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

   
 
 

▲ 기념식 이후 박재하 교장과 유공자들, 그리고 신흥고 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며 전주 시내를 걷고있다. ⓒ뉴스앤조이 변하삼

 
 

기념식 이후에 신흥고 학생 주도로 걷기 대회가 열렸다. 순수 학생들에 의해 기획된 걷기 대회는 전 학년 학생들이 전주 천변로를 걷고 선배들의 민주화 운동을 기리는 차원에서 진행됐다. 이날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들과 유공자를 선두로 학생들의 길고 긴 행렬은 전주 시내를 뒤덮었다.

학내 민주화 운동으로 정학을 당했던 김의신 씨는 학생들의 행렬을 바라보고 "후배들의 행렬이 그때 민주화 열정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차다"고 말하면서 "징계를 당하지 않아 드러나지 않았지만 당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많은 학우들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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