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은 사회에서 소외된 비주류, 삼류 깡패와 88만 원 세대의 유쾌한 삶을 그리고 있다. 깡패인 주인공 동철은 싸움 실력은 형편없고 대신 입(그의 표현에 따르면 '아가리')은 전설 '장군의 아들, 김두한'급으로 입과 주먹이 부조화를 이루는 어설픈 깡패다. 조직의 두목을 대신해 감옥에 갔다 오면 조직 내에서 키워 주겠다는 약속을 믿었지만 결국 배신당하고 대통령이 주는 콩밥만 실컷 먹는다. 또 다른 주인공 세진은 지방대 출신이면서 눈치도 없이(?) 수십 군데 이력서를 넣어 보지만 당연, 번번이 떨어지는 백수다. 간신히 취직한 회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부도가 나고 말았다. 비정규직과 실업 문제로 고통을 겪는 88만 원 세대의 현실을 보여 주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들의 현실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공간은 햇빛 적당히(?) 드는 반지하 방. 물론 이들의 운명적 만남도 여기 반 지하방에서 시작된다.

세상은 이제 사용자(회장님)와 노동자(회장님이 아닌 사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다. 비정규직 제도는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상승 압박과 기업의 원가 절감의 탈출구로 탄생된 제도로, 90년대 이후 근로자의 임금 상승 압박에 대해 기업들은 싼값에 노동력을 얻기 위해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이게 되었다. 왜냐하면 비정규직 근로자는 해고도 쉽고, 월급도 정규직 근로자보다 적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안정된 일자리가 점차 줄었고, 이는 젊은이들이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해 방황하는 사회 문제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비슷한 노동 강도나 내용의 일을 하는데도 정규직은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를, 비정규직은 차별받는다는 점에서 소위 88만 원 세대라는 것을 창조했다.

난 전도사다. 교회 안의 대표적 비정규직. 벌써 15년째다. 한 곳의 평균 근무(?) 연수는 2년, 급여는 월 평균 88만 원(?)이다. 자녀가 몇 명이든 그건 그들의 알 바가 아니다. 그렇기에 자녀 수당도 없고 고용 계약서 자체가 아예 없다. 경력에 따른 호봉(?)도 없고 얼마나 경력이 있든 시작하는 그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정해진 업무는 있지만 딱히 그것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특근 수당이 뭔지도 모른다. 최저 임금 하한선도 없고 주는 대로 받고 춘투(春鬪)는 꿈도 못 꾼다. 매월 받는 돈의 액수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믿음 없는 불경스러운 짓이기 때문이다. 물론 받는 돈의 10%는 의무적으로 신의 나라에 바치는 세금으로 공제하고 각종 명목의 다른 세금들도 눈치껏 내야 한다. 그 남은 돈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본적 인권이 침해되지 않는 정도의 생활을 유지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모자라는 건 신이 채워 주시길 기대한다. 나도, 친절한 그들도 또한, 심지어 그들은 기도도 해 준다. 하늘에서 쌀이 뚝 떨어지길, 고기가 똑 떨어지길.

일전에 근무했던 어느 곳에서 있었던 일이다. 근무한 지 꽤 되어서 내 월급을 80만 원에서 90만 원으로 10만 원 인상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꽤 많은 사람이 반대하였다. 그것은 내가 하는 일보다 월급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어설픈 천민 자본주의. 사실 좀 억울했다. 나도 할 얘기가 있었다. 벌써 경력도 10년 이상 된 데다 두 사람이 하던 일을 혼자 해 내고 있었고 자녀도 많았는데도 80만 원에서 90만 원으로 올리는 것이 너무 과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며 해마다 벌이는 춘투 때마다 월급 인상을 기대하는 사람들이었다. 눈물 나는 형제애였다.

많은 수의, 아니 거의 대부분의 전도사들이, 특히 가정을 가진 이들 전도사들은 소위 훈련의 명목으로 88만 원 세대의 현실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경비 절감의 묘략이 있을 따름이다. 로렌 커닝햄의 <벼랑 끝에 서는 용기>를 굳이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이미 이들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위태로워 보인다. 이들은 이미 기초 생활 수급자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도시 빈민인 것이다. 이쯤 되면 이런 이야기를 들먹이는 나는 너무나 세속적인, 타락한, 자본주의에 물든 물신주의자로, 혹은 좌빨(?)로 규정된다. 그렇다면 기본 급여 외에 온갖 명목의 보조적 급여들을 받고 있는 정규직들(?)은 어떤가? 그들도 물신주의자들인가?

"첨엔 다 그런 거야. 우리도 전도사 땐 그랬어, 아니 더 힘들었지. 억울하면 너도 정규직 해. 전도사가 돈 맛을 들이면 안 돼. 훈련해야지. 신께서 어떻게 채워 주시나 보자구." 그들은 그렇게 그들의 십자가에 나를 달고 '저'의 신이 어떻게 '저'를 구원하는지 내기를 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 이 모든 게 다 신의 나라를 위한 거야. 조금만 참자. 신께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거야." 나는 스스로 위로했다.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동철이 세진과 라면을 먹으면서 프랑스에서 청년 실업자들이 벌이는 난동과 비교하며 "우리나라 애들은 착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취직 안 되는게 지 탓인 줄 알아" 라는 뼈 있는 말로 비판하는 장면이 나온다. 묘하게도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 말도 안 되게 스스로 위로하고 있는 내 모습과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대안은 있다. 적어도 교단 단위로라도 통일된 근무 규정을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비영리 단체를 들여다보아도 근무 규정은 있다. 근무의 형태는 어떤지, 경력과 호봉과 각종 수당 등 급여는 어떻게 책정하는지, 휴가에 관한 규정 등등. 이제껏 이 모든 것을 개교회의 형편과 재량에 맡기다 보니 한국교회 120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근무 규정 하나 없다. 교회가 아무리 작더라도 합의된 근무 규정을 따라 사역자들의 최소한의 생계비 선을 보장하고 재원 마련은 총회가 기금을 조성하면 될 일이다. 물론 상한선도 정해야 한다. 교회가 크면 많이 받고 작으면 손가락 빨아야 하고. 수단으로서의, 도구로서의 돈 때문에 사역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제도적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어느 일이건 반대는 있고 시행착오는 겪게 마련이다. "예배 시간에는 찬송가만 불러야 한다"는 탈성경적이며 시대 착오적인 발상은 총회 차원에서 할 만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의 미래를 담보할 신학생들과 이제 막 사역자의 길에 들어선 이들 초급 사역자들의 신학 교육과 최저 생계의 보장은 총회가 교회들과 합력하여 감당해야 할 일인 것이다. 노골적으로 돈을 언급하기에 심기가 불편한가? 최소 생계비를 보장하는 근무 규정 만들자 하니 심히 정치적으로 보이는가? 그러면 이미 당신은 주류이다. 소주, 맥주, 그리고 양주.

이 땅의 모든 비정규직 전도사들에게 고한다. 조금만 참자 동지들아. 자본주의와 맞물려 있는 이 구조는 너무도 견고해서 자본주의가 망하기 전까지는 결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을 것이야. 그러나 신의 나라가, 곧 자본주의가 망하고 공평하게 모든 걸 함께하는 초대 교회 시대가 다시 도래할 테니, 그때까지 건투를 빈다.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아멘.

아참 그리고 니들, 나중에 정규직 되면 절대 그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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