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는 봄을 노래하는 수많은 시와 찬미가 있다. 산천초목이 푸름에 겨워 시가 되고 그림이 되니 사람도 자연과 함께 시가 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5월 이맘때쯤이면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움이 치솟는다. 그것은 지난 역사가 남기고 간 피의 흔적이 아직 채 아물지 않아서인가 보다.

기자는 5월 18일 감리교신학대학에서 열린 5‧18 30주년 추모 기도회를 다녀왔다. 지난 30년 전 기자 자신이 직접 겪은 그날의 현장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싶어서다. 그때 민주화를 외치다가 참혹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젊은 그들의 외침이 지금도 나의 가슴에 참담함으로 남아 있다. 그 당시 함께 동참하지 못한 안타까움과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 성공회신학대학 김민웅 교수가 "5·18광주! 그때 거기와 지금 여기"를 외치고 있다.
예배실에는 젊은 신학도들과 고난 받은 이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침묵의 기도가 타 종소리와 함께 장내에 깊게 울려 퍼지자 모두가 숙연해졌다. 그 소리는 마치 30년 전 민주화의 재물이 된 그들의 통곡 소리로 들려왔다. 5월의 노래와 함께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기록이 생생하게 영상을 통해 그날의 참상이 펼쳐졌다.

언듯, 한 장군의 모습이 내 눈에 크게 부각되었다.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민주화로 과장한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물론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안위를 위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위장한 채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꿋꿋하게 잘 살고 있는 그분을 나는 전직 대통령이라 부르고 싶지 않다. 그것은 그가 지난 역사를 피로 물들인 죄 값이 옅어져 보여서다. 차라리 역사에 장군으로 남는다면 한 사람의 오판이 조금은 더 작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나는 그를 '오판 장군'이라 부르고 싶다.

그 당시 남편은 대한민국 영공을 지키는 공군 전투 조종사였다. 긴급 작전 명령을 받고 일주일간 최전방으로 출장을 떠났다. 그래서 나는 5월 17일 만삭의 몸으로 광주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갔다가 참담한 역사의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그때 배안에 있던 딸아이도 벌써 자라 그 아이도 배불뚝이가 되었으니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그러나 역사의 참혹한 만행은 흘러가지 않고 내 가슴에 여전히 고여 있으니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어느 한 나라의 민주 항쟁 뒤에는 반드시 독재와 함께 학살이 뒤따른다. 5월 18일 강사인 김민웅 교수는(성공회신학대학교수) "민주화는 무너지고 처참하게 짓밟힐 때 더욱 빛을 발한다" 했다. 공자 왈,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 했는데 그것은 나이가 30이 되면 스스로 일어선다는 뜻이다. 아마도 올해가 '5‧18 민주화 운동' 30주년을 맞아 역사의 아픔과 고통이 다시 우리를 불러 모은 것 같다. 지금 여기에 남은 자들은 지난 역사가 왜곡된 채, 폭도 아닌 폭도가 된 사람, 빨갱이 아닌 좌파가 된 민주 투사들을 역사 앞에 당당하게 세워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들의 민주 열정과 피의 대가로 우리는 지금 이렇게 당당하게 서 있다. 독재의 위선 앞에서 꽃잎처럼 떨어져 간 그들을 짓밟고서도 역사는 유유하고 도도하게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참혹한 피의 역사를 아직도 치유하지 않은 채 역사의 뒤편으로 묻으려는 발상은 또다시 돌이킬 수 없는 민주화의 후퇴임을 명심해야 한다.

▲ 얼마 전 호화 호텔에서 성대하게 팔순 잔치를 치른 전두환 전 대통령.
문득 '철이 들면 죽는다'라는 옛말이 떠오르며, 철이 너무 빨리 들어서 꿋굿하게 살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전직 대통령이 생각났다. 그분은 독재로 국민을 죽이지도 않았고, 민주를 가장한 탈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뇌물 수수 죄라는 죄목이 그를 낭떠러지로 떠밀어 버렸다. 이 나라 지도자라면 어느 누구라도 풍성하게 밥상 밑에서 잡수시는 뇌물 아니었던가?

계절의 여왕이었던 5월이 어느 사이 잔인한 5월로 우리 앞에 자리 잡고 있으니 누가 계절의 여왕을 이리도 짓밟았단 말인가? 나는 오판 장군께 한 가지 부탁하고 싶다. '제발 철들지 마세요, 철이 들면 빨리 죽어요'라는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그런데 부질없는 생각이었음을 얼마 전에 확실하게 알았다.

오판 장군의 팔순 잔치를 우연히 TV를 통해서 보게 되었다. 보는 순간 "아,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았구나, 정말 꿋꿋하게 잘살고 있구나!!' 하는 답답한 마음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것은 장군께서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뒤흔들 때, 노후 대책을 단단히 준비했었나 보다. 그런데 노후 대책으로는 너무 큰 액수를 준비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맙게도 돈의 액수까지 모든 언론들이 일제히 밝혀 주어서 알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은 결백하며 남은 돈의 액수는 통장에 29만 원밖에 남지 않았다 했다. 어떻게 27만원밖에 없는 서민이 호화 호텔에서 무슨 면목으로 팔순 잔치를 하는 것인지, 그 장면을 보면서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았음을 여실하게 볼 수 있었다. 참으로 꿋꿋하게 장수하실 것 같다.

오판 장군을 개인적으로 가까이 만나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분을 좋아한다. 그분이 행차하는 곳마다 그 당시 측근들이 여전히 울타리가 되어 주니 말이다. 가끔 골프를 치러 나가도 골프장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그분을 좋아한다. 한마디로 의리 있고 따뜻하단다. 기자가 알고 있는 의리는 '내가 죽고 약자를 살리는 것'이 참된 의리라 알고 있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 민중을 짓밟는 것은 오만한 지배자다.

오만한 지배자들이 한동안 나누어 먹기식 정권 이양을 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는 민주와 정의를 추구하는 민초들이 살아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다. 또한 통장에 달랑 29만 원밖에 없어도 골프도 치고, 많은 사람들과 파티도 하고, 여러 사람들을 돌보아 줄 수도 있는 나라이기에 정말 살기 좋은 나라다. 그래서 나도 우리나라가 참 좋다. 세상 다 돌아다녀 보아도 우리나라처럼 좋은 나라가 없다. 이렇게 잘못된 지난 역사도 새롭게 쓸 수가 있어서 말이다.

또한 나도 아직 철이 들지 않았다. 이렇게 철이 들지 않았기에 지천명의 나이에 이런 곳을 찾아다니며 글을 쓰고 있다. 나도 아마 죽는 그 순간까지 철이 들지 않을 것 같다. 

그 당시 내가 겪었던 광주 민중 항쟁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처음에는 "북한 빨갱이들이 유언비어를 퍼트려 양민을 학살하고 있다"라는 말과 "젊은 학생들을 수색해서 죽인다"라는 말, 그리고 다음 날이 새면 "오늘은 군인 가족을 찾아 죽인다"라는 온갖 유언비어가 광주에 갇힌 자들을 위협했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 기만당하며 정권의 야욕에 속고 있었다.

친정 부모님은 군인 가족인 딸이 다칠세라 기어이 광주를 빠져나가게 했다. 모든 통신과 교통은 완전 마비 상태였기에 만삭의 몸으로 3살짜리 아이를 안고 친정아버지 자전거에 의지하여 상무대까지 갔다. 상무대까지 가는 길에 수차례 검문을 받고 그곳에서 택시를 타고 송정리까지 갔다. 가는 도중 몇몇 젊은이들이 동승했다. 몇 번의 검문을 통해서 그들은 결국 끌려 내려갔다.

나는 만삭의 몸이기에 짐만 검색당하고 송정리를 거쳐 장성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해서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가 어디서 오느냐고 물었다. "광주에서 오는 중이오"라고 대답하자 대뜸 "그 폭도 새끼들이 난동을 부려서 지금 나라가 쑥대밭이 되었다. 경기까지 침체되어 손님이 없다, 그것들 전부 빨갱이들이다." 그렇다. 그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든 언론과 방송은 이구동성으로 '광주 민중 항쟁'을 폭도들의 난동, 좌‧북 세력들의 폭동으로 몰아붙였으니까.

▲ 꽃잎처럼 떨어져 간 민주 열사들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분향하다.
5월이 피를 흘리며 광주를 흥건하게 적시던 날, 새벽 미명에 하늘에서는 수많은 헬리콥터가 도청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지프차 소리와 함께 어린 한 여학생의 긴박한 울부짖음에 잠을 깼다.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모두 나와 주십시오. 우리는 지금 죽습니다. 계엄군이 우리를 죽이려 합니다.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모두 밖으로 나와 주십시오!!"

애절하게 금남로를 누비며 연이어 외쳐 대는 어린 여학생의 울부짖음이 지금도 나를 짓누르고 있다. 우리 모두는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방송에서는 이렇게 명령했다.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폭도들이 도망가고 있습니다. 지금 누구든지 밖으로 나오면 폭도로 오인되어 발포합니다." 우리는 문을 잠그고 쥐 죽은 듯이 총소리가 멈추기를 기다리며 아침을 맞이했다. 그리고 긴 침묵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5‧18이 서른 살이 되었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아직 어둡다. 점점 더 해가 가려지며 어두워지려 한다. 또다시 촛불이 역사의 현장을 지키기 위해 한마음으로 불을 밝힌다면 이제는 막을 길이 없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소년의 거짓말이 세상을 혼돈케 하고 있으니 말이다.

국인남 / 당당뉴스 기자 및 행정실장 ‧ <크리스찬이여, 핸들을 꺾어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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