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바벨탑을 쌓다가 망한 것을 보면 단적으로 드러난다. 자신을 낮추어야 살 수 있건만 높아지려고만 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요, 죄의 본능이다.

한국교회도 이같은 욕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바벨탑을 쌓고 있다. 남보다 높아지려는 본능을 제어하지 못해 다른교회 보다 높고 큰 교회를 짓고 교인들은 큰 것을 따르는 것이다.

도대체 낮아진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도 모르는 것같다. 하나님이란 분이 거대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같다.

하나님이 욕심장이인가? 과연 예배를 즐기시는가?

결코 아니다. [이사야1장11-17] 인간의 예배는 질력이 나신 분이고 인간들이 하는 예배는 가증히 여기신다. 즉 하나님께 보이려고 하는 예배는 [12절]하나님을 망령되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웅장한 예배가 아니라 인애와 공의 즉 사랑의 직접적 실천이다. 교회에다 수많은 헌금을 내는 것보다 가난한 자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을 옳게 여기신다는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병들고 배고파 죽어가는 사람을 못 본체 하면서 교회에만 열심히 충성하겠다는 것이 과연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냐 말이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거늘.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며 믿음이 있다고 자랑하니 참으로 가식이 넘치는 자들이 아닌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하는 사랑의 실천이 예수님에게 하는 것인데 한국교회는 이 뚜렷한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체 하는 것인지 진정 모르는 것인지... 사랑의 실천은 나 몰라라 하고 교회 건축에만 열을 올린다.

교회가 대형화하면 운영하는데 드는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수많은 교인들이 교회운영에 매이게 된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보다 교회당을 지키는 교회론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비교의식은 절제를 모르기에 만족을 못하고 더욱 커다란 교회를 지으려고 구상하고 실천한다. 즉 평생을 교회당 안에서 살다가 교회짓기로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전도는 행동이지 교회당에 매인 적이 없었다. 진리는 자유를 주기에 고정화가 아닌 자유속에서 활동한다. 즉 예수님의 전도방식이 현재의 나에게도 이어진다는 말이다.

바리새인들이 했던 것처럼 거대한 교회당, 거창한 예배, 웅장한 찬송이 아닌 은밀한 예배를 하게끔 이끄신다는 것이다. 산도 아니고 예배당도 아닌 [요한4;20-22] 주의 영이 직접하는 예배가 [고후3;17]이루어진다. 즉 자유로운 예배가 된다. 남에게 보이기위해 하는 기도, 찬송, 설교가 아닌 지극히 작은 자에게만 보여지는 예배가 된다는 말이다.

남을 조금이라도 의식하게 되는 예배는 산 예배가 아닌 죽은 예배로 변한다. 하나님은 권위주위자가 아닌 사랑 그 자체이다. 사랑은 그 어떤 높아짐도 원치 않는다.

바울이 고정되어서 전도 했는가? 제자들이 그러했는가? 교회는 적은 수가 모여서 해야 한다. 그래야 참 제자화가 이루어지고 가라지가 침투하지 못한다. 즉 십자가의 낮아짐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간다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내 것 내 것이 어디 있고 내 교회 네 교회가 어디 있단 말인가? 우리집이 교회고 너의 집이 교회인데...

대형교회는 인간의 욕심의 산물이요. 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증표다. 예수님은 허례허식으로 가득찬 대형교회를 결코 좋아하시지 않으리라. 세상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은 정반대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며 추구하는 대형교회에는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 대신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 종교적 욕심만이 가득하다. 하나님은 어떠한 욕심도 싫어 하신다. 종교적 욕심도 인간의 자기 만족적 욕심의 변형된 형태일 뿐이다. 종교의 가면을 쓴 것뿐이다.

낮은 자의 모습은 참으로 겸손한 것 자체이기에 결코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나 거대하고 웅장한 곳에 가기를 원치 않는다. 즉, 예수님이 가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주님의 은혜를 모르게 되고 계속 높아지려는 욕심만이 생기는 것이다.

예수님이 자기에게 임하지 않으니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더 높게 더 높이 올라가 보는 것이다. 하나님이 있는 곳까지... 그것이 바벨탑인데... 결국은 무너지는데...

영혼을 구원하는 데에는 돈이 아깝지 않으나 가난한 자 돕는 데는 아까운, 욕심 많은 교인들과 이에 부응하여 자신의 권위를 채우려는 목사가 만들어 낸 것이 대형교회라는 우상이다.

영원히 살고픈 자들의 욕심에서 생겨난 우상이라는 것이다. 결코 주님의 일이 아님을 자각하는 당신이 되길 빈다. 들을 귀 있는 자만이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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