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년 서울의 OO학교, 봄기운이 가득한 교실에서 국사 수업이 한창이다.

"2010년 한국, 이 당시 주목할 만한 사항은 토지 제도입니다. 1950년 토지 개혁이, 60~70년대 발전의 토양이 되었지만, 이후 불로 소득 환수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토지 불평등은 다시 심해졌고 2010년에 정점에 이르렀는데, 1960년대부터 2007년까지 소비자 물가가 43배 오른 것에 비해 서울 땅값은 1176배 올랐으니, 아주 기이한 현상이죠? 땅값이 올라 주택 구입이 어려워지자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출산율은 떨어지고,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 있어도 창업을 시도하기가 어렵고, 장사가 잘되도 과도한 임대료 부담에 많은 자영업자들이 흑자 도산을 하고, 경기 불황으로 청년 실업률은 계속 상승하고, 불로 소득을 노린 난개발로 환경이 파괴되고, 결국 불로 소득 파티에 너도나도 뛰어든 건설사들은 수요 예측을 못해 미분양 주택이 폭주하고 한국 산업 쇠퇴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지요. 그에 반해 개인의 노력과 아무 상관없이 땅을 많이 가지고 있는 소수의 사람은 그 자체로 엄청난 불로 소득과, 생활의 안정과 여유를 누렸던 사회, 불과 300년 전에 토지 가치를 사유화하는 이런 미개한 제도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게 믿겨지지 않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해자일 텐데, 왜 그런 제도에 저항하지 않았을까요?"

"더 놀라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제도 자체에 대해 불편함을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다큐 <아마존의 눈물>에서 본 우리의 현실

2010년 우리 현실은 미래의 후손들에게 기이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대작을 보고서, 방송 취지와는 달리 언뜻 스친 엉뚱한 상상이다. 얼마 전 문명과 접촉하지 않은 순수 원시 부족을 소개하는 다큐가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방송을 탔다.

그중에 우연히 조에족이 등장하는 1편을 봤는데, 무척이나 흥미로운 부족이다. 나무를 비벼 불씨를 만들고 주로 사냥을 통해 식사를 해결하고, 속옷도 걸치지 않은 채 다니지만 머리 장식은 하고 다니는 부족, 그 무엇보다 기이한 모습은 턱에 끼는 손바닥 크기의 나무 조각이었다. 날카로운 뼈 조각으로 턱살을 찢어 철봉 굵기의 나무 조각을 항상 끼고 다니는데, 조에족은 그 장식을 '뽀뚜루'라 부른다. 뽀뚜루라는 나무로 만들어서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다.

턱에 항상 꽂고 다니는 뽀뚜루 덕에 조에족의 대부분은 치열이 나쁘고, 입안에 상처가 많다. 음식을 섭취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언제부터 불편한 뽀뚜루를 했는지, 아무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조상들이 살아온 모습대로 살아갈 뿐이다. 뽀뚜루는 조에족에게서 매우 소중한 것이어서, 죽을 때도 주인과 함께 묻어 준다고 한다.

조에족을 통해, '인간 사회에서 발상의 전환이라는 것이 그토록 힘든 일이구나'라는 걸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슨 이윤지 모르게 내 조상들이 그렇게 해 왔을지라도, 우리 생활에 큰 불편함을 초래한다면, 우리는 다른 삶을 살아 보자고 얘기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울까? 턱에 나무를 꽂고 다니는 행동을 우리 후손들에게는 물려주지 말자는 간단한 발상의 전환이 그들에게는 엄청난 개혁으로, 때로는 부족의 존립을 위협하는 공포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조에족과 같이, 이전에 습관처럼 이어져 왔기에 비록 그것이 한국인의 속살을 파고들어 우리의 삶과 생활을 불편하게 할지라도, 희년과 토지 공개념 정신이 담긴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일까? 개인의 노력이 아닌 공동의 노력으로 형성된 불로 소득을 환수하고 모두를 위해 사용하면 된다는 이 간단명료한 답이 엄청난 개혁으로 느껴지고, 때로는 우리나라 존립을 위협하는 공포로 느껴지는 것일까?

그런데 조에족과 달리 우리는 다른 나라와 긴밀히 교제하는 문명사회다. 비록 미흡하긴 해도 토지 공개념의 예는 다른 나라에 얼마든지 있고, 실현 가능하다. 세계에서 최고의 인터넷 환경을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그런 사실들에 무관심하다는 것이 기이하고 아쉬울 따름이다. 어쩌면 꼭 필요한 만큼만 자연에서 구해서 쓰고,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조에족의 삶보다 더 미개한 우리 사회다.

미래의 후손들이 우리의 사는 모습을 상상하며 느낄 불편함, 우리 시대의 마지막 미개한 문명의 흔적을 뽑으라면 바로 토지 사유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공적인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토지 가치를 개인이 사유화하는 것이다. 조에족이 옷 없이 다니는 것보다 뽀뚜루 없이 다니는 것을 더욱 수치스러워하는 것처럼, 평생 집 없이 사는 것보다 승자가 자손 대대 독식하는 정글 같은 자본주의가 없는 것을 더욱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한국 사회다.

당장 이번 지방 선거부터, 우리 안의 뽀뚜루를 뽑아 버리자

발상의 전환을 당장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 되묻는 사태가 있으리라고 보고 간단히 답변하려고 한다. 당장 이번 지방 선거에서부터 우리 삶을 불편하게 하는 뽀뚜루 같은 정책을 뽑아 버리자. 오랜 불편한 습관과 정책을 벗어 버리는 데 선거만큼 좋은 참여는 없다.

전 국민이 공감해서 이루어질 발상의 전환은 언제쯤 가능할까? 솔직히 글을 처음 쓸 때 300년 후라는 믿음 없는 가정을 했듯이, 당장 이번 지방 선거에서는 불가능할 거라는 강력한 편견이 내 안에 가득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다는 편견, 후진적인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편견, 먼저 내 안에 깊숙이 박힌 뽀뚜루 같은 편견을 먼저 뽑아 버려야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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