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12월 18일 광화문 감리회본부 앞에서 열린 '이동환 목사 출교 선고 규탄 기자회견'에서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느헤미야)가 한 발언입니다. 당사자의 허락을 받아 전문을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12월 18일 '이동환 목사 출교 선고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김근주 교수.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12월 18일 '이동환 목사 출교 선고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김근주 교수.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경기연회 재판위원회는 지난 8일 재판에서 성소수자 축복식 등 동성애를 옹호한 것이 감리회 규칙 교리와 장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여 출교라는 최고 수준 징계를 내렸다. 1520년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에 맞서서 "주여 다시 일어나소서"라는 출교 교서를 발표하고, 루터의 논제에 수십 가지 오류가 있다고 반박하며 그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파문하겠다는 칙령을 내렸다. 결국 1521년 1월 교황청은 루터를 파문했고 이단으로 정죄했으며 출교 처분을 내렸다. 세계 개신교는 교황청이 루터에게 내린 겪은 파문과 출교에서 비롯되었다.

출교당한 이들로부터 시작했던 개신교가 이제 어느새 주류가 되어 누군가를 재판하여 출교하기에 이르렀다. 그것도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빼앗거나 자기 새끼에게 교회를 물려주거나 독재 권력에 영합한 것이 아닌, 성소수자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성경을 읽으며 신앙의 본질을 추구한 루터를 중세 교황청은 파문·출교하는 것으로 대응했고, 21세기 감리교 재판국은 성경과 현실을 고민하며 신앙에 따른 사랑의 본질을 추구한 이동환 목사를 출교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번 조치는 감리교 내부와 한국 개신교 전체에 횡행하는 자기 새끼에게 교회 물려주기 작태에 아무런 징계 없이 사실상 옹호하며 자신 역시 자식에게 교회 물려줄 기회만 노리는 감리교를 비롯한 오늘의 개신교가, 부패하기 이를 데 없는 중세 교황청의 후예임을 명확하게 행동으로 드러내었다.

이것이 어찌 감리교만의 추태랴. 장로교에 속한 합동, 통합, 고신 할 것 없이 성소수자를 핍박하고 몰아내지 못해 안달이다.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면서도 말로는 '사랑해서'라고 하는 것이 오늘의 개신교의 행태이다. 신학교 입학 시험이나 졸업 사정, 목사 안수, 교직원 임용 등등, 기회만 있으면 지원자의 사상을 검증한다. 마치 동성애를 죄라고 규정하는 것이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이라도 되는 냥, 장로교든 감리교든 미친 듯이 마녀사냥을 일삼는다. 여기에는 교단의 되지도 않는 행패 앞에서 찍소리도 하지 않으며 머리 숙인 신학교 교수들의 책임도 크다.

감리교는 동성애 문제에 대해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논의와 검토를 거쳤는가? 장로교 합동 측은, 통합 측은 교단 차원에서 이에 대해 위원회를 구성해서 제대로 연구하고 확인하고 공청회를 통해 논의를 모으는 절차를 한 번이라도 수행한 적이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 세계 교회 전체 안에서 여전히 논쟁이 있다. 미국의 연합감리교회 역시 이 문제로 인해 진통을 겪고 있다. 긴 시간 계속해서 논의하며 걸어가고 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로 인해 교단이 갈라지는 상황도 발생하겠지만, 적어도 상대방을 출교하지는 않는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교회가 이 문제로 인해 길고 긴 논의의 시간을 거쳤고 이런저런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며 더구나 성소수자 모임에서 축도했다는 이유로 출교시키는 사례는 없다. 자기 새끼에게 교회 물려주는 것을 개의치 않는 한국 감리교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은 변화한다. 성경 본문의 일차 독자와 청중은 수천 년 전의 고대인이기에, 구약과 신약에는 지금부터 매우 오래된 고대 세계의 사고방식, 문화, 세계관이 전제되어 있다. 그렇기에 성경은 반드시 해석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새로운 해석이 등장하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시대, 새로운 상황, 새로운 사람들의 출현이다. 여성 안수 문제 역시 그러하다. 백년 전만 해도 이견의 여지가 없던 주장이지만, 세월의 변화와 함께 이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놀랍게도 최초의 여성 목회자는 바로 1955년 감리교의 전밀라 목사님이었다고 여겨진다. 아직까지도 성경에 근거한답시고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협소하기 이를 데 없는 문자주의자들이 존재하지만, 감리교는 그리도 일찍 새로운 길을 열고 나아갔다. 비극은, 그렇게 진취적이던 감리교가 이제는 동성애 옹호를 내세워 목사를 출교하는 첫 사례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자각한 여성의 존재가 여성 안수를, 흑인 그리스도인의 존재가 노예 문제를, 그리고 이제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동성애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재고하게 한다. 이에 대해 한 가지 결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 교단이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성경 본문과 해석에 대한 충분한 고려도 없이 이토록 섣부르게 출교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감리교가 생각하지 않는 집단임을 보여 주는 증거일 따름이다. 그것은 감리교가 지극히 어리석고 폐쇄적이며 혐오에 가득 찬 패거리임을 보여 주는 증거일 따름이다.

이동환 목사님에게 씌워진 '동성애 옹호'라는 말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세상에 태어나서 삶의 어느 순간에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 이들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 혹은 중학생이 되어 자신의 다름을 발견하고 때로 괴로워하고 때로 이를 부정하기도 하다가 결국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정죄하거나 문제 있다 규정하지 않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이들이 있다. 이들을 당신들이 무엇인대 감히 '죄인'이라고 규정하는가? 이들이 일 년에 한 번 자신을 축하하고 서로 축하하며 즐거워하는 축제에서 이들을 축복한 것이 도대체 무슨 원리로 출교에 해당하는 죄라는 것인가?

감리교는 이제 이동환 목사님을 루터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분으로 만들었다. 이동환 목사님은 특별하고도 대단한 개혁자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을 받을 사람임을 선포하고 그렇게 살아간 사람이다. 이제 사랑이 개혁이 된 시대가 되었다. 이동환 목사님은 이제 서로 사랑함이야말로 기독교 변화의 근본임을 명실상부하게 선포한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동환 목사님이 걸어가시는 사랑의 길 곁에 선 나는 감리교를 강력하게 규탄한다. 감리교의 어리석음과 몰상식함, 세상과 사람을 도무지 읽지 못하는 아둔함을 고발하고 강력하게 규탄한다. 오늘의 사태는 감리교의 편협하고 왜곡된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교회 역사에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김근주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일산은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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