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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개혁실천연대가 4월 4일 '성범죄 목사 징계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지난해 저희가 보도한 '거룩한 범죄자들' 기획 시리즈를 토대로, 성범죄 유죄판결이 확정됐음에도 소속 교단으로부터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은 목회자 82명에 대해, 이들을 어떻게 치리할 것인지 각 교단(노회·연회·지방회)에 묻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는데요. 유감스럽게도 교단들의 대처는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 기자회견을 취재할 예정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저는 그날 또 한 명의 새로운 '거룩한 범죄자'를 취재하기 위해 법원에 가야 했습니다. 범죄 사실만 놓고 본다면 그간 취재했던 성범죄 목회자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악질'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피해자분을 만나 이야기를 듣다가 "혹시 그 목사가 이러이러한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마치 저를 독심술 하는 사람처럼 쳐다보며 놀라더군요. "기자님, 어떻게 아셨느냐. 너무 정확하다"라고요. 목사의 행동은 전형적인 '그루밍 성폭력'이었습니다.

"악인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다"던데, 도대체 이 말이 맞는지 가끔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쭉정이만큼이나 그 수가 많다'는 뜻인 걸까요…? 흩날리는 쭉정이를 다 잡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꼭 다 잡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런 취지에서 저희는 올해도 '거룩한 범죄자들' 보도를 이어 갈 예정입니다. 순수하고 은혜에 목마른 신앙인들을 이용해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목회자들, 그리고 아무런 책임 있는 조치도 취하지 않고 나 몰라라 하는 교단들, 범죄자들의 목회 활동을 합법적으로 열어 주는 각종 제도들. 올해도 열심히 따져 보고 취재하겠습니다.

편집국 승현

처치독 리포트

아름다운 제주, 평화를 호소하는 제주

독자님은 '순례'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유월절을 보내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한 기나긴 여정을 떠나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아니면 신앙의 신비를 만나고자 곳곳의 성지를 찾아 떠나는 순례자가 떠오르시나요?

혹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내딛는다면 우리는 어디서든 순례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지난해부터 사단법인 하나누리, 한국샬렘영성훈련원과 '평화 순례'를 기획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년 6월 25일에는철원 DMZ 평화 순례를, 열흘 전인 3월 27~29일에는 제주 평화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철원 순례에서는 몇몇 교회·단체 참가자들과 함께 조금 큰 규모로 함께 걷고 기도했다면, 이번 제주 순례에서는 희년평화빌딩에 입주해 있는 단체 활동가들 중심으로 모인 작은 규모의 순례자들과 함께 걷고 기도했습니다.

특별히 이번 순례는 프랑스 떼제(Taizé) 공동체에서 30여 년 생활하다 한국에 돌아와 최근 '이음새'라는 단체를 만들어 우리 사회에 평화와 화해의 다리를 놓는 작업을 하고 있는 신한열 수사와 함께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내가 20대 초반 떼제 공동체에서 장기 체류한 경험을 종종 들려줬기에, 신한열 수사 그리고 그와 함께할 떼제 기도회에 대한 기대감이 샘솟았습니다.

제주의 봄은 찬연했습니다. 광활한 바다와 푸르고 너른 들판, 봉긋 솟은 오름과 신비롭고 위엄 있게 우뚝 선 한라산은 처음 본 것도 아닌데도 다시금 경탄하게 만들더군요. 곳곳에서 형형색색 망울을 터뜨린 꽃들에 눈과 마음이 산뜻해졌습니다. 순례 참가자들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거닐면서 때로는 웃으며 떠들었고, 때로는 침묵하며 기도했습니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사야 11:9)

순례 첫날 저녁 떼제 기도회에서 읽은 말씀입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마주하고 나서였을까요? 평화의 나라를 묘사한 이사야서 11장 가운데 유독 이 구절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제주의 아름다움 이면에는 사람들이 서로를 해치거나 자연을 파괴하는 일들이 남긴 상흔이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저희가 둘째 날 찾아간 '알뜨르 비행장'과 예비 검속 '섯알오름', '송악산' 일대는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일본군이 태평양전쟁을 치르려고 마을 7개를 없애고 세운 군사기지, 적 함대를 공격하기 위해 바다와 맞닿은 산 아래 파낸 동굴 진지, 제주 4·3 사건의 여파로 한국전쟁 당시 200명에 가까운 양민을 집단 학살한 장소 등.

순례자들과 일본군 지하 벙커에서 진행한 떼제 기도회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20여 명이 비좁고 음습한 지하 벙커에서 촛불을 켜고 떼제 찬양을 불렀습니다.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나와 함께 기도를 하라." 화평케 하는 자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초대처럼 느껴졌습니다.

제주에서 만난 평화활동가들의 모습과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도 잊히지 않습니다.

· 한국 사람보다 더 찰진 한국어를 구사하며 집회 사회를 보는 강정마을 평화활동가 카레(Kaia Curry Vereide)
· 제주 제2공항 건설 문제를 비롯해, 제주도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계신 엄문희 님의 "안보를 뛰어넘기가 너무 힘들어요"라는 탄식
· 우리가 일상 속에서 서로를 특정한 정체성의 틀로 규정하고 범주화하는 것이 또 다른 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화두를 던져 준 왕 에밀리 님
· 그리고 30년 넘게 군사기지 반대 운동을 펼쳐 오시면서도 반대 진영 이웃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인사를 건네신다는 김정임 선생님···.

저는 특히 김 선생님 내면에 흐르는 평화의 기운을 본받고 싶었습니다.

제주 평화 순례에서 돌아온 지 열흘이 지났습니다. 둘째 날 지하 벙커에서 그리고 저녁 기도회에서 반복해 불렀던 떼제 찬양이 틈틈이 제 입술 밖으로 새어 나옵니다. 일상 속에서도 걷고 노래하며 평화의 걸음을 한 발씩 내디뎌 가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주님, 정의가 꽃피는 세상, 평화 가득한 생명 나라.

주님, 정의가 꽃피는 세상 이 땅 위에 이루어 주소서."

사역기획국 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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