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뭘 할 수 있는지 방법을 찾으러 간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2월 16일 새벽, 이스탄불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블루투스에 연결돼 흘러나온 찬양이다. 너무나 익숙한 찬양인데 갑자기 여러 감정이 몰려왔다.

'하나님, 이건 좀 모순적이지 않습니까? 지금 세상에서 가장 저주받은 것 같아 보이는 땅, 그 사람들에게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이름이 온 땅에 아름답다니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서 제 신앙적 답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고통받는 그들을 위로할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얼마 전에 구호 물품을 갖고 다녀온 튀르키예 동부 '말라티아'도 그렇지만, 이번에 향하는 곳은 튀르키예 땅에 10년을 넘게 살았는데도 처음 가 보는 '가지안테프' 지역이다. 처음 지진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소식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지인과 함께 여러 구호 물품을 챙겨 지진 피해 지역에 전달하러 갔다. 말라티아까지 왕복 2000km가 넘는 지루한 운전과 짧은 구호품 전달 과정이 전부였지만, 뭐라도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다녀왔다.

지진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담요, 핫팩, 모자, 목도리, 레깅스, 양말, 화장지, 기름통, 초코바 등을 싣고 이스탄불에서 말라티아까지 왕복 2000km가 넘는 길을 달렸다. 사진 제공 박종안
지진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담요, 핫팩, 모자, 목도리, 레깅스, 양말, 화장지, 기름통, 초코바 등을 싣고 이스탄불에서 말라티아까지 왕복 2000km가 넘는 길을 달렸다. 사진 제공 박종안

이번 가지안테프행은 지난번과는 다르게 구체적인 목적이 있었다. 나는 평소 시리아 아이들을 돕는 센터에서 수학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센터에서 만난 한 아이 표정이 좋지 않았다. 튀르키예뿐만 아니라 시리아도 지진 피해가 심각한데, 시리아에 있는 친척 중 죽은 사람도 있고, 피해 지역에 있는 친척들이 지금 너무 힘들어한다고 했다. 그 친척 주소를 받아서 위로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시리아로 물품이나 구호금을 전달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런데 때마침 평소 알고 지내던 '헬프시리아' 단체의 압둘 와합이 긴급 구호차 튀르키예에 온다고 했다. 와합은 한국으로 귀화한 시리아인이다. 그의 인맥을 이용해 시리아와 연결을 해 보고 싶었다. 그에게 연락을 했고, 가지안테프에서 만나 같이 동행하기로 했다. '뭐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뭘 할 수 있는지 방법을 찾으러 간다'라는 마음을 품고.

뉴스에서 보는 것처럼 '카흐라만마라쉬'·'누르다으' 지역은 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는 듯 보였다. 현지에 도착해 보니 거대한 텐트촌이 형성돼 있었고, 물품 지원 트럭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텐트촌은 이미 마켓, 학교, 미용실까지 갖추고 있었다. 나와 함께 간 단체들이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였다.

현재 튀르키예에는 시리아 난민이 300만 명이나 있다. 오타가 아니다. 무려 300만 명이다. 지진 재난 지역 수많은 사람이 이스탄불로, 앙카라로 전국의 자기 친지들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그러나 인근 시리아 사람들은 갈 데가 없다. 누추하지만 자기 집이 있었는데, 지진으로 금이 가고 무너져 내려서 차디찬 길바닥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시리아 난민 캠프를 갔는데 한숨만 나왔다. 튀르키예 재난 지역은 언론 주목도도 높고, 구호 물품도 비교적 많아서 어떻게라도 해 보겠는데, 여기는 그냥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 아닐까 싶었다. 원래도 힘들었던 사람들인데, 더 나빠질 게 없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사진 제공 박종안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사진 제공 박종안
가장 열악한 사만다으 지역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이곳을 조금 아는 주변 지인들에게 물었다. 정부나 NGO의 지원이 가장 열악한 곳이 어디인지 말이다. 신기하게도 이구동성으로 하타이주 '사만다으' 지역이라고 말했다. 사만다으는 성경에 나오는 '실루기아'의 현 지명이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곧바로 사만다으로 향했다.

전쟁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부서진 건물과 잔해가 한 집 걸러 내내 이어졌다. 구호를 떠난 일주일 동안 지진도 2번 경험했다. 한 번은 호텔에서였고, 또 한 번은 사만다으 지역에서였다. 자동차가 과속방지턱을 넘어가듯 갑자기 덜컹거렸다. 그와 동시에 바로 옆 이미 기울어진 구조물이 휘어지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동네에 사는 현지인들은 이런 일을 하루에도 수차례 겪는다고 했다. 우리가 놀라는 것을 보고도 그러려니 한다. 이들이 왜 건물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텐트를 치고 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나도 매일같이 보다 보니 무너진 건물과 도로의 잔해가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이것도 익숙해지나 보다. 영화의 흔한 '아포칼립스'를 연상시키는 장면인데 말이다.

지인을 통해 연결된 한 사만다으 튀르키예인의 집, 아니 텐트에 초대받았다. 일가친척 모두 3개의 큰 텐트에 모여 있다.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어찌나 밝은 얼굴인던지…. 동생, 남편, 친척이 전부 교사란다. 튀르키예 사람을 만나면 으레 그렇듯, 함께 차를 마시며 한국에 대해 얘기하고, 북한 사람이 아니라 남한 사람이라고, 2002년 월드컵을 기억하느냐고, 6·25 한국전쟁, 형제 국가 등의 이야기로 물꼬를 튼다. 이런 대재난 와중에도 똑같다. 상황이 달라도 튀르키예는 튀르키예다. 텐트에 앉아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만나야 하는 지역 대표는 전화 연결이 안 된다. 내 전화도 되다 안 되다 한다. 차선책으로 현재 그 지역을 돕는 '교사 노조' 사무실을 방문했다.

평소에도 정부 지원이 충분하지 않은 소외된 지역, 시리아 국경과 맞닿아 있는 조그마한 도시. 다른 지역과 비교해 NGO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서 알게 된 '교사 노조'는 평상시 교육 이슈로 모였겠지만, 지금은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사회를 열심히 돕고 있다. 그들과 같이 먹고 마시고 웃었다. 좋았다.
 

사만다으 교사 노조 사무실에서. 사진 제공 박종안
사만다으 교사 노조 사무실에서. 사진 제공 박종안

사실 내가 이 지역에 온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나는 비참한 사람들을 보러 온 것도 아니고, 부서진 건물 속에 있는 이들을 구하는 슈퍼맨이 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시리아로 구호금을 보낼 루트도 알았고, 내 학생의 시리아인 친척도 만났다. 그러나 이대로 떠날 수는 없었다. 나도 일상이 있고, 생계도 꾸려야 하는 평범한 가장이지만 그냥 돌아갈 수가 없었다. 무언가 돕고 싶었다. 튀르키예에 사는 사람으로서 그들을 지속적으로 도울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일정을 더 연기했다. 필요한 구호 물품들을 트럭에 싣고 그들을 만나러 갔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서두에서 언급한 신앙적 질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그분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재난과 고통 속에서 그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범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처음으로 교사로서 동질감을 느끼게 만들어 준 이곳 사람들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건 알겠다. 부서진 건물과 누추한 텐트 안에서 함께 먹던 차이(çay)와 수프, 꼬질꼬질하지만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미소, 장난기 어린 꼬마들, 재난 속에서도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했던 사람들. 그들을 생각하니 울컥한다. 그들의 착한 미소는 '우리는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이 찬양을 들을 때마다 재난 속에서도 미소를 지어 보이며 차와 밥을 함께 먹었던 이들을 떠올릴 것 같다. 아직은 모르겠지만, 그 미소 속에 조금은 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이스탄불로 돌아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일상이 멍하다. 재난 지역에 겨우 일주일 있었을 뿐인데 왜 이리 마음이 동요되는지 모르겠다.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지인들에게 모금을 위한 기도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모금하는 방법도 익숙하지 않고 이런 요청을 하는 게 쑥쓰럽기도 하지만, 지금은 정말 긴급한 상황이니 헌금 좀 하라고, 돈 좀 보내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아마 당분간은 내 사소한 일상을 사는 게 죄송하게 느껴질 것 같다. 현장에 있을 때처럼 마음을 다잡아 본다. 지금은 울 때가 아니라 도울 때라고. 0.0001%라도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싶다.

박종안 /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10년 넘게 거주하고 있다. 평상시는 세종한글학교 교장이자 우무트시리아센터 수학 교사, 현재는 사단법인 하나누리 긴급구호팀장으로 활동한다.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긴급 구호 관련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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