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70일 조금 더 남았습니다. 아들이 재수를 하는 바람에 두 살 터울인 딸이 올해 수능을 보면 3년째 수험생 엄마로 살아갑니다. 예전엔 수능 100일 전이면 동네 교회에 '수능 100일 기도회'라는 이름으로 현수막이 붙었는데 요즘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적어도 제가 사는 동네는) 모든 시계가 일 년에 한 번 보는 수능에 맞춰져 있는 것 같네요. 교회도, 절도, 성당도.

얼마 전 아들 친구 엄마 모임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지금까지 한 달에 한 번 만나 모임을 합니다. 모여서 아이들 자라가는 이야기나 나이 들어가는 엄마들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갖죠.

모임에 수험생이 있는 가정이 세 가정 있는데 그중 한 아이가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일하는 아이 엄마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옆에만 붙어 있다고 합니다. 아이도 학교에 결석계를 내고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전부터 우울감이 있기는 했는데 6월 모의고사를 본 뒤로 많이 심해졌다고 합니다.

그저 밝았던 아이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자라면서 아프고 힘든 세상이 많이 버거웠던 것 같네요. 엄마도 멘붕이 와서 힘들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저 또한 그 엄마의 모습에서 멀리 있지 않은 상황이라 남 일 같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수능이란 게 인생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건 맞지만, 아이들이 너무 많이 아프네요. 큰아이가 수능 시험 보던 날, 시험을 어떻게 보든 집에만 무사히 돌아오길 기도했습니다. 수능 시험 후에 나쁜 생각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작은아이에게도 같은 마음입니다.

결과가 어떻든 많이 아프거나 힘들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인생의 첫 번째 큰 산을 넘어 준 아이에게 수고했다 이야기해 주고 싶네요. 시험 끝나면 미뤄 뒀던 여행도 많이 다니고 많이 안아 줘야겠습니다. 독자님 중에도 수험생 가족이 있으시겠죠? 많이 힘드시겠지만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잘 견뎌 보자고요.^^ 

사역기획국 승연

처치독 리포트

'비하인드 스토리'의 비하인드 스토리

"한 가지 통탄할 일은 우리 조선은 여자 사회가 캄캄한 밤중이다. 언제나 깊이 든 꿈속을 뛰어나와 뒤떨어진 우리 갈 길 달음질쳐야 하겠다. 꼭 우리의 권리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렸으니 우리가 찾아야 할 것입니다."

1935년 장민숙이라는 여성이 쓴 글의 일부입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다짐했습니다. '아, 이런 글들을 독자들이 직접 볼 수 있게 해야겠다.' <뉴스앤조이>가 8월 31일 공개한 '비하인드 스토리 - 여성 안수 투쟁사' 특별 페이지는 이런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기술 발전으로 몇 년 사이 언론사들이 이런 특별 페이지를 만드는 일이 많아졌는데요. 단순히 기사를 글로 읽는 것을 넘어, 다양한 시각화 자료를 통해 더 흥미롭고 직관적으로 내용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물론 인력과 자본이 훨씬 많이 투입되기는 하지만요. 이번 저희 특별 페이지는 아주 잘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어도, 아마 교계 언론 중에는 최초로 시도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저희같이 영세한 언론에서 이런 특별 페이지는 언감생심입니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매번 다른 대형 언론사의 특별 페이지를 부러워할 것만 같아서 기자들이 모두 용기를 냈어요. '뭐라도 해 보자'고 말이죠. 마침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게 됐고, 여러 교회·단체·개인이 후원해 주셔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조선의 여성들이 직접 쓴 글


김춘배, '총회에 올리는 말씀'(1934년 8월 22일 자 <기독신보> 977호). 특별 페이지에서 전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희도 이번에 기획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이미 1930년대에 여성 안수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는 점입니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처음으로 여성 안수에 대한 언급이 있었던 1932년부터 1936년까지 여성 안수 문제는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한국에서 여성 안수 역사를 논할 때 가장 많이 회자되는 사건이 1934~1935년 있었던 일명 '김춘배 목사 필화 사건'입니다. 신문에 여성 안수를 주자고 썼다가 총회에서 징계 위협을 당했으니 유명할 만합니다. 원문을 찾아서 봤을 때 무릎을 탁 쳤습니다. 88년 전 글인데도 아직 여성 안수를 도입하지 않은 몇몇 교단에는 여전히 유효한 내용이었습니다.

장민숙, '기독신보를 읽고서(1)' (1935년 10월 16일 자 <기독신보> 1037호). 특별 페이지에서 전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영혜, '여권 문제에 대하여'(1936년 1월 22일 자 <기독신보> 1051호). 특별 페이지에서 전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 이후 최영혜와 장민숙이라는 여성이 쓴 글들에 더 충격을 받았는데요. 이들의 글들은 지금 읽어도 그 논리와 당위성이 흔들리지 않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애타는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김춘배 목사는 총회에서 조사를 시작하자 결국 자신의 입장을 철회했지만, 이들은 오히려 당시 쟁쟁했던 목사·교수들이 '성경을 오해했다'고 지적했죠.

이런 여성들의 글들을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물론 1930년대 당시 김춘배 목사를 비롯한 남성 목회자 몇 명이 여성 안수를 찬성하는 글을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여성들이 직접 쓴 글들에 더 주목했습니다. 특별 페이지에서 한번 읽어 보시길!

교회를 살리는 일

'비하인드 스토리 - 여성 안수 투쟁사'는 여성 안수 역사와 함께 다양한 교단에서 여성 안수를 위해 투쟁했던 10명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한 분 한 분 인터뷰하며 많이 웃기도 했고 그들의 상한 마음이 느껴져 가슴 아프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 또한 훗날 누군가에게 충격과 감동이 되기를 바라 봅니다.✨

이번 특별 페이지에서는 각 교단 여성 안수 역사의 타임라인도 볼 수 있는데요. 이 타임라인과 함께 인터뷰를 보신다면 더욱 잘 이해될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번 기획은 휴대폰으로 휙휙 보시기보다는, 시간을 내셔서 자리에 앉아 컴퓨터로 보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더 다양한 교단 여성 목사들을 인터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성 안수를 도입한 교단 중에서도 여성 목사가 나서서 인터뷰하는 것이 어려운 곳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총회에 민감한 사안"이라며 인터뷰를 거절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인터뷰할 사람 찾다가 선배들에게 혼났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현실이 우리가 아직도 여성 안수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뉴스앤조이>가 교회 내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계속 보도하는 이유는 '한국교회가 이만큼 후지다'고 지적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여성 문제를 개선하는 일이 곧 한국교회를 살리는 일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기획 취재에 협조해 주시고 후원 등으로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앞으로도 교회를 살리는 일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편집국 권효

※ 교회 개혁과 회복을 꿈꾸는 뉴스레터 처치독은 매주 금요일 오후 6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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