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가 여성 안수의 역사와 현재 의미를 짚는 기획 '비하인드 스토리 - 여성 안수 투쟁사' 특별 페이지를 제작했습니다. 특별 페이지에서는 1930년대 자료와 타임라인 등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바로 가기)

 

"오… '여성 안수 논쟁 100년'이라니,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

[뉴스앤조이-구권효·나수진 기자] '비하인드 스토리 - 여성 안수 투쟁사'는 지난해 말 나수진 기자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습니다. 한국교회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장로교단에서 여성 안수가 논의된 지 '100년'이 되는 해가 2022년이라는 겁니다. 2022년을 계획하는 회의에서 편집국 막내 기자가 입에 착 붙는 아이템을 내놓자, 강도현 대표가 '벌써부터 각이 나온다'며 좋아했죠.

그런데 웬걸, 기획은 시작부터 삐거덕했는데요. 조선예수교장로회에서 여성 안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건 1932년, 그러니까 100년이 아니라 90년 전이었던 것입니다. 나수진 기자가 1932년을 1922년으로 잘못 본 것이죠. '100년'이라고 하면 입에 착 붙는 느낌인데, '90년'은 뭔가 애매해 보였습니다. 기획을 돕게 된 구권효 기자는 우스개를 던지기도 했죠. "어떻게… 그냥 10년 뒤에 할까?"

하지만 나수진 기자가 찾아온 1930년대 자료들은 (고어로 돼 있어 읽기 힘들었지만) 그냥 읽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기독교 여성사가 새롭게 보이는 순간이었죠. 편집국 선임 구권효 기자도 처음 보는 내용이었습니다. 10년 이상 교계 기자로 일했지만 '여성 안수'를 깊게 고민하고 취재해 본 적은 없었던 것입니다. 일단 우리에게 흥미 있는 내용은 독자분들에게도 흥미로울 거라 생각하고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주목한 것은 '여성 안수 역사는 여성 투쟁의 역사다'라는 사실이었습니다. 1930년대 시작된 여성 안수 청원은 가히 최초의 개신교 여권운동이라 할 만했고, 이후 여성들이 수십 년간 끈질기게 청원한 결과 여성 안수를 쟁취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성 안수를 위해 노력한 여성들 중에도 '싸움'이라는 뜻이 내포된 '투쟁'이라는 말에 불편함을 느끼는 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을 객관적으로 볼 때 투쟁이라는 말이 과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여성 안수 역사에 대한 여러 연구물이 있었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졌고,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의 여성 안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총망라한 기획물은 없었습니다. 여성 안수가 도입된 교단에서도 여성 목회자의 처우가 열악한 상태에 있는 지금, 기독교 여성운동의 과제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처음에 저희를 설레게 했던 1930년대 자료들을 독자분들에게 직접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는 그런 생각으로 만들게 됐습니다.

나수진 기자는 1930년대 자료들을 찾기 위해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 몇 번이나 방문했습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나수진 기자는 1930년대 자료들을 찾기 위해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 몇 번이나 방문했습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오래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여성 안수 역사를 취재하면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여성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장로교회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여성이라는 이유로 안수직을 주지 않았는데요. 교단 창설 시부터 여성 안수를 도입한 기독교대한감리회 경우도 20여 년간 한국인 여성 목사는 나오지 않았죠. 여성들은 이것이 불합리하다는 사실을 초기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한국교회 여성 안수 역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일이 '김춘배 목사 필화 사건'입니다. 1934년 <기독신보>에 '여권 문제에 대하여'라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총회에서 징계 위협을 당했으니 유명할 만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더욱 놀란 건 1934~1936년 장민숙과 최영혜가 쓴 글들이었습니다. 당시 김춘배 목사를 조사한 총회 연구위원들은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이들이었습니다. 장민숙과 최영혜의 글을 보면 이들에게 주눅든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연구위원 목사들이 성경을 오해했다고 지적할 정도였죠.

아직도 성경적·신학적으로 여성 안수가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교단도 있지만, 성경적·신학적 문제의 결과는 이미 90년 전에 무엇을 더 붙이지 않아도 될 만큼 다 나와 있었던 것입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직분에 차별을 둘 수 없다는 사실을 여성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습니다. 여성 안수를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 숱한 좌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여성 안수가 성경적·신학적·인권적으로 옳고 무엇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성들 못지않게 훌륭한 역량을 갖춘 여성 인재가 많았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여성들이 있었기에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여성 동기 중에도 훌륭한 사람이 많았는데, 그야말로 때를 만나지 못해서 자리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는 김지선 목사의 말이 생각나네요. 동기 중 남자들은 총회장도 하고 신학대학교 총장도 했는데, 여성들은 목사가, 사제가 되는 것조차 힘들었다는 인터뷰이들의 회고가 새삼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여성 안수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강한 확신이 여성들을 무장시켰다면, 칠전팔기七顚八起의 끈기를 주었던 것은 바로 '서로'였습니다. 총회에서 여성 안수 도입이 부결될 때마다 여성들은 함께 울었고, 함께 다시 일어났습니다. 저마다 여성 안수를 필요로 하는 이유와 그 온도는 조금씩 달랐지만, 그 다름으로 갈라지지 않고 하나의 큰 연대를 만들었습니다. 가능한 모든 방법 - 기자회견, 공청회, 토론회, 금식 기도, 단식 농성, 피켓 시위, 책자 발간, 노회원 식사 대접 등 -을 총동원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여성 안수제는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하는 일이었기에, 그 투쟁은 결국 투표권을 가진 남성 목사·장로들을 설득하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성 총대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선물을 돌리고… 취재하면서 때때로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남성 총대들을 대접해 주면서도 '여성 안수는 남성들의 허락을 받는 일이 아니다'라는 자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여성 안수가 한국교회를 살리는 길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인터뷰이 한 분 한 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여성 안수 투쟁이 이어져야 하는 이유

여성 안수는 오늘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가부장적인 성경 해석이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하며 남성들만 목사·장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교단은 물론, 수십 년 전 여성 안수를 받아들인 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 안수가 도입됐다고 해서 여성들의 현실이 극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한국교회 대부분 교단에서 여성 목회자의 처우는 남성 목회자와 비교했을 때 상당히 낮습니다. 여성 목회자를 동료 혹은 리더로 인정하지 않는 인식, 저조한 담임목사·총대 비율, 전무하다시피 한 결혼·출산·육아 대책, 성희롱·성폭력 문제 등 인식과 제도 모두 갈 길이 멉니다. 여성 안수 운동이 '평등을 위한 몸부림'이었다면 지금도 그 몸부림은 계속돼야 할 것입니다.

더 다양한 교단 여성 목사들을 취재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보수적인 성향의 교단 여성 목사들은 인터뷰 자체를 꺼렸습니다. 한 교단 여성 목사는 저희에게 인터뷰이를 물색해 주다가 "옛날 이야기를 뭐하러 하느냐고 선배들에게 혼났다"며 자기 교단은 빼고 진행해 달라고 했습니다. 다른 교단 여성 목사는 "총회에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인터뷰가 어렵다"고 고사했습니다. 또 다른 교단의 경우 여성 목사들을 찾기가 어려워 총회에 문의했는데 "그런 이야기 해 줄 사람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여성 안수가 도입되기는 했지만, 아직 그 역사를 기록하는 것조차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이 여성 목회자들의 오늘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팍팍한 현실이지만 여성 목사들은 그래도 살아 남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냥 살아 남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가 수많은 여성 선배의 눈물과 희생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가부장적인 리더십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다양한 말로 표현됐습니다. "내가 만난 하나님을 이야기하자", "약자들을 위한 교회를 만들자", "자기만의 색깔로 목회하자", "여성들이 계속 협력하고 소통하자", "예수를 깊이 닮아가자"…. 어쩌면 이런 여성들이야말로 무너져 내리는 한국교회의 그루터기가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한국 사회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여성에 대한 논의가 뜨겁습니다. 초창기 여성 인권 향상에 혁혁한 공을 했던 한국의 기독교는 한 세기 만에 여성 인권이 가장 뒤처진 집단 중 하나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교회 내 여성들이 결코 숨죽여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고 이어 가야 할 정신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이번 '비하인드 스토리 - 여성 안수 투쟁사'에서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저희가 그랬던 것처럼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기독교 여성사가 새롭게 다가가기를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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