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서 만난 선한 사마리아인

얼마 전 요즘 핫한 소설 <불편한 편의점>(나무옆의자)을 읽었습니다. 명불허전, 정말 재밌고 여운이 진하게 남는 책이었습니다.

알코올성 치매로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노숙인 '독고'. 그는 어느 날 70대 여성이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 주고, 그 일을 계기로 지갑 주인이 서울역 인근 청파동에서 운영하는 편의점 야간 알바가 됩니다. 그가 편의점에서 일하며 건강을 회복하고 기억을 되찾기까지의 이야기가 편의점을 둘러싼 소시민들의 애잔한 사연과 얽혀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노숙인 주인공 독고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지만, 제 마음속에 각인된 인물은 편의점 사장 '염 여사'였습니다. 그는 역사 교사로 정년 퇴임 후 편의점을 차렸지만, 매출이 썩 좋지 않습니다. 목이 좋은 곳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매출을 늘리려고 아등바등 상술을 꾀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편의점을 팔아 자기에게 사업 자금을 대라고 조르지만, 염 여사는 편의점을 접을 생각이 없습니다. 알바 인건비 빼고 나면 남는 것도 없는 장사를 꿋꿋이 이어 갑니다.

편의점 알바들 때문입니다. 염 여사는 이들을 단지 편의점을 운영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마음을 포개며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 줍니다. 매상을 올리기 위해 닥달하지 않고, 임금을 낮추려고 꼼수를 부리지 않습니다. 야간 알바에게는 시급도 500원 더 얹어 줍니다. 독고가 자신을 되찾고 회복할 수 있었던 것도 노숙인이라는 편견 너머 그의 우직하고 따듯한 성정을 알아본 염 여사의 환대 덕분입니다.

약간 비약일 수 있지만 염 여사에게서 선한 사마리아인을 봅니다. 염 여사는 기독교인입니다. 소설에서 그의 종교 생활과 신앙심이 자세히 서술되거나 미화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 그는 하나님의 심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불편한 편의점>의 알바들은 어찌 보면 이 시대의 강도 만난 자들과도 같습니다. 20대 취준생 알바 '시현', 사업 말아 먹은 남편과 이혼한 후 다 큰 아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50대 생계형 알바 '오 여사', 그리고 노숙인 독고…. 염 여사는 한 뼘짜리 욕망을 더 채우려고 우격다짐으로 그들을 쥐어짜지 않습니다. 인격적으로 대하며 그들의 삶을 응원하는 염 여사의 모습이 일상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잔잔하게 실천하는 참신앙으로 보였습니다.

염 여사와 같은 그리스도인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최근에 국민 중 개신교를 신뢰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18.1%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지요. 이 시대의 교회가 호감을 사지 못하는 이유는 교회가 염 여사와 같은 신앙인들을 그리스도인의 표상으로 내세우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요. 찾아보면 우리 사회 곳곳에 그런 분들이 있을 겁니다. 저도 제 자리에서 그런 분들을 찾아 소개하는 데 좀 더 힘을 기울여 보겠습니다.

사역기획국 은석

친절한 뉴스B

나날이 진화하는 황당한 이유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류영모 총회장)은 세습금지법을 제정·시행 중인데, 안타깝게 올해에도 이 법을 폐지해 달라는 요구가 나왔어요. 좋은 법을 만들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폐지하자고 악을 쓰는지… 하…. 그 이유가 뭔지 물어봤는데 황당 그 자체더라고요.

A: "(세습금지법 때문에) 목사님 장로님 아들들이 신학교에 안 간다!!"
B: "세습금지법이 한국교회를 망치고 있다~"

이번에 세습금지법 폐지안을 헌의한 진주남노회 소속 목사가 기자에게 한 말이에요. 이에 질세라 노회장도 "구약 시대에는 아론의 자녀만 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 "왜 오늘날 아버지가 만든 교회에 아들이 승계를 못 하게 하느냐"며 반발했어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멘트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까지 제 역량이 부족한가 봅니다

왜 교회 세습이 문제인지 수십 번 기사를 썼는데요. 그.럼.에.도 진주남노회 소속 목사들처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배덕만 교수(기독연구원느헤미야)의 멘트를 짧게 인용해 보려 합니다.

"담임목사직 대물림은 교회의 가치를 저하하는 일이다. 세습은 반드시 사유화로 이어지며, 특권을 자자손손 물려주겠다는 것이다. (세습을 강행한) 자신들도 안다. 민망하니까 다른 궤변을 늘어놓는 거다. 결국 돈 문제다. 교회 세습은 맘몬 앞에 무릎 꿇었다는 증거다."

편집국 용필


욥기의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성경을 사랑하는 독자님, 평소 '욥기'를 읽으면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삐딱하고 그다지 믿음 좋은 사람도 아닌 저는 불만이 아주 많았습니다. 욥이 당하는 까닭 없는 고난이나 친구들의 비난은 차치하더라도, 마침내 등장한 하나님이 욥에게 보이는 위압적인 태도와 '그래서 욥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전래 동화 같은 결말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거든요. 

그동안 욥기 관련 서적을 꽤나 접했지만 제 마음을 후련하게 해 주는 설명은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그러던 중 <욥이 말하다 - 고난의 신비에 관하여>(복있는사람)를 만났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양명수 명예교수가 20년 전에 낸 책인데, 지난달 20주년 기념 개정판이 나왔답니다.

이런 책을 왜 이제서야 발견했을까요. 책을 읽는 내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고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어요. 흡사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읽는 듯, 몰아치는 아포리즘에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역시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군….' 곧바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양명수 교수는 아주 흔쾌하게 응했고요. 다만 건강이 좋지 못하니 화상 인터뷰를 하자고 제안해 왔습니다.

사전 질문지를 보낸 것도 아니었는데, 양 교수는 인터뷰 내내 막힘이 없었어요. 주옥 같은 말씀도 많았고요. 일생 동안 기독교 사상 연구에 천착해 온 노학자의 신학적 깊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는데요. 기사 발행 후 "참 잘 정리됐네요"라는 말씀을 들으니 매우 만족스럽네요. 일단 '맛보기'로 인터뷰를 보신 후 책도 직접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추신: 양명수 교수의 제자 김혜령 교수(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가 쓴 서평도 읽어 보세요. 스승을 향한 애정과 존경이 묻어나는, 학자의 시선이 담긴 좋은 글입니다.

편집국 운송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부른 '낙원가'

"내 한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 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나 죽은 게 아깝지 않다고 봐요."

2003년, 청소년 성소수자 그리스도인 육우당이 세상을 떠나며 유서에 남긴 말입니다. 동성애 혐오에 앞장서는 보수 교계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그를 기억하던 그리스도인들은 2013년 그의 10주기를 맞아 첫 번째 추모 기도회를 열고, 해마다 그를 기억하고 있어요. 올해도 고 육우당 19주기를 맞아 '차별과 혐오에 희생되는 벗들을 추모하는 기도회'가 4월 28일 서울 종로구 청어람홀에서 열렸습니다.

추모 기도회는 고 육우당의 죽음에서 시작됐지만, 이후 차V별과 혐오로 인해 세상을 등진 우리 주변의 이름 없는 성소수자들을 기억하는 자리가 됐습니다. 이날 저녁 8시에 열린 기도회에는 그리스도인 60여 명이 찾아왔어요. 준비한 좌석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뒤쪽에 의자를 더 놓아야 할 정도였죠. 기도회는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기를 염원하는 기도와 노래로 채워졌는데요. 참가자들이 육우당의 시조에 곡을 붙인 '낙원가'를 함께 부르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아래 구절이 유독 제 가슴에 박혔어요.

"성소수자 사랑하고 장애인도 살아가고 이방인도 함께 가는 그런 세상 낙원이여 그런 날이 온다면은 모든 이가 밤낮없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할 것이다."

'그런 세상 낙원'은 언제쯤 올까요. 모든 이가 동등하게 대접받는 세상을 '낙원'이라고 부르는 현실이 답답하지만, 오늘날 모습이 19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국회 문턱에 멈춰 있고, 지난해 '차별금지법 연내 제정'을 외치며 부산부터 서울까지 걸어 온 활동가들은 지난 11일부터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육우당'을 더 이상 떠나보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 낙원'을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보태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편집국 수진

※ 교회 개혁과 회복을 꿈꾸는 뉴스레터 처치독은 매주 금요일 오후 6시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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