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21일 새벽, 을지로 노가리골목의 시초 '을지OB베어'는 강제집행을 당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2022년 4월 21일 새벽, 을지로 노가리골목의 시초 '을지OB베어'는 강제집행을 당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2022년 4월 21일 목요일 새벽, 40년 넘게 을지로 노가리골목에서 장사한 '을지OB베어'가 깡패 용역들에게 강제집행을 당했다. 직접 가 보면 알겠지만 주변이 몽땅 '만선호프'다. '만선滿船'이라는 이름처럼 이 골목에 만선은 이미 충분히 넘치지만, 노가리골목의 상징적인 6평짜리 가게 하나를 내쫓고 굳이 거기로 들어가 을지로를 정복하려고 한다. '법대로 나가라면 나가야지!', '그만큼 장사했으면 됐지.'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의 교회가 그 동네 안에서 쌓아 온 신앙의 가치가 돈 몇 푼에 밀려날 정도로 가볍지 않은 것처럼, 그 동네에서 을지OB베어가 40년 동안 형성해 온 노가리와 생맥주의 맛, 그리고 손님들과의 관계는 자본가들의 서류 몇 장으로 지워 버릴 수 있을 만큼 가벼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선에 의해 이전에 쫓겨난 다른 가게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을지OB베어는 40년 넘게 그곳에서 돈만 번 것이 아니라 정 많은 노가리골목을 만들며 많은 사람들의 삶을 채웠다.

기독교인들, 혹은 목사가 맥줏집을 되찾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이 한국교회 정서 안에서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목사가 맥주를 마셔도 되는가?' 이 질문은 유치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많은 교회 안에서는 이것이 아직까지도 신앙의 잣대로 작용하고 있다. 나는 이런 질문 앞에 설 때면 농담을 섞어 이렇게 대답하고는 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새번역, 고전 10:31)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 안에는 이런 윤리적 논쟁의 흔적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는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어도 되는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이건 그냥 고기야'라고 말하며 먹는 사람들이 있었다. 실제로 우상 앞에 잠시 놓였다고 해서 고기의 성분이 변하거나 썩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어떻게 우상에게 한번 바쳐졌던 고기가 그냥 고기입니까?'라고 물으며 그 고기들을 보이콧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신전에서 사용됐던 고기들이 시장에 풀리는 시기에는 아예 고기를 사지도 말아야 했다. 고기를 먹는 자유로운 사람들은 고기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답답해했을 것이고, 고기를 보이콧하는 사람들은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보고 시험에 들었을 것이다. 믿음이 강하고 자유로운 사람이었던 바울은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가 "그 고기는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입니다"라고 말한다면, 먹지 말라고 한다. 어디서나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당신의 자유로 그대의 동지들을 신앙의 노예라고 조롱한다면 그것에 어떤 유익이 있겠냐는 말이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우리가 음식을 먹는다는 건 단순히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의 식탁은 언제나 우리가 지금 어디에 연대하고 있는지를 가리킨다. 고린도 온 동네가 로마의 카르텔이었다. 힘이 강한 자에게 붙은 사람들은 한몫씩 단단히 챙겨 주고, 그들에게 빼앗기는 사람들, 그것이 억울해서 저항이라도 하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짓밟는 제국의 카르텔 말이다. 지금 을지로가 그러하다. 이제 이곳은 더 이상 노동자들이 퇴근길에 잠시 들러 생맥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노가리골목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과 폭력으로 단단히 결탁한 만선호프의 카르텔이 되었다. 이제 만선호프 야장에서 즐기는 맥주와 안주들은 그것을 지지하는 식탁이 되었다는 말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듯, 우리에게는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아무거나 먹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돈이 있으면 사고, 팔고 싶으면 팔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힘이 있다고 해서, 돈이 많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남의 인생들을 사고팔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신앙은 쫓겨난 을지OB베어를 되찾는 일을 지지하며, 그것을 빼앗는 만선호프 불매에 동참하고, 그들에게도 함께 살 것을 호소한다. 더 많은 신앙인들이 인터넷 지도에서도 사라진 을지OB베어 앞으로 오기를 바란다. 탐욕과 개발의 불도저가 만연한 이 세상 안에서 우리가 이 작은 가게 하나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예배도 드린다. 이 안에서 드려지는 간절한 기도를 위해 모인 손들이 더욱 많아지길 바란다.

그리스도는 만선호프의 식탁보다는 빈약해 보일지 몰라도 거룩한 성찬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권력자들에게 부역하는 식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누는 식탁이다. 우리가 이 빵을 먹는다는 것은 가난에 연대하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함이고, 축복의 잔을 마시는 것은 그 고난에 참여함이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절기를 보내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찾고 있는가? 교회 안에서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고 있는가? 혹 우리들의 부활은 아주 먼 미래로 밀어 둔 채 살고 있지는 않은가? 부활은 바로 거리로 쫓겨난 을지OB베어 앞에 차려진 성찬 안에 있다. 부활은 무엇인가. 부활復活은 다시 산다는 것이다. 강제집행을 당했다고 해서, 저 건물 안에 지금 집기가 없고 사람이 없다고 해서 빈 무덤 같은 을지OB베어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 부활 신앙을 품고 성찬에 참여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을지OB베어를 다시 살려 낼 줄로 믿는다.

황푸하 /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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