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34년간 민중 목회를 해 온 김규복 목사. 김 목사는 대학 시절 전두환 신군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이끌었다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40년 만에 재심이 열렸고,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대전에서 34년간 민중 목회를 해 온 김규복 목사. 김 목사는 대학 시절 전두환 신군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이끌었다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40년 만에 재심이 열렸고,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편집국장] 먹고살기 어려웠던 1970~1980년대 적잖은 목사가 '민중 교회'를 표방하며 돛을 올렸다. 처음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했지만, 점차 교인이 늘고 교회가 커지자 본래 지향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제도권 교회의 길을 가기도 했다. 혹은 어렵게 민중 교회를 유지하긴 했지만, 가치와 정신을 계승할 만한 후임을 뽑지 못해 명맥을 잇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한평생 민중 교회를 일궈 오며 노동자·빈민과 함께해 온 김규복 목사(69·빈들교회 원로)는 초지일관 민중 목회를 해 왔다. '사회적 약자가 곧 하나님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빈민, 노동자, 이주 노동자 등과 34년간 연대했다. 하지만 학생운동 시절 고문의 후유증으로 기력이 쇠하면서 2018년 조기 은퇴했다. 지금은 후임 허연 목사가 바통을 이어받아 빈들교회를 이끌고 있다.

김규복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소속이다. 웬만한 예장통합 목회자는 총회 연금재단에 가입해 있는데, 김 목사는 수중에 1만 원이 없어서 가입조차 하지 못했다. 평균 교인 수 50명대를 유지해 온 빈들교회는 헌금이 들어오는 대로 어려운 이웃에게 흘려보냈다. 김 목사는 그렇게 모은 것도, 받은 것도 없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은퇴 이후 치료에 전념하며 지내 온 김규복 목사에게 뜻밖의 선물이 찾아왔다. 대학생 때 계엄령·포고령위반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2021년 12월 9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 김 목사는 연세대 재학 시절이던 1980년 4월경, 12·12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신군부를 두둔하는 연세대 교수들을 규탄하는 '어용 교수의 자성을 촉구하는 제1선언문' 초안을 작성하고 2000부를 제작했다. 같은 해 5월 15일 '국민에게 드리는 글' 1만 부를 만들고, 학생 1000여 명과 함께 연세대에서 신촌역까지 신군부를 규탄하는 행진 시위를 이끌었다. 뒤늦게 광주 5·18민주화운동 소식을 들은 6월에는 반정부 도심 시위를 계획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학생운동을 주도한 김 목사를 수배했고, 결국 붙잡아 법정에 세웠다. 1981년 1월 군법회의는 김 목사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재심 재판부는 전두환 신군부를 반대한 행위는 헌법의 존립과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행위이므로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전두환 등이 1979년 12월 12일 군사 반란으로 군 지휘권을 장악한 뒤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 선포를 시작으로 1981년 1월 24일 비상계엄 해제에 이르기까지 행한 일련의 행위는 헌법상 내란죄 등 헌정 질서 파괴 범죄에 해당한다. (피고인은) 헌법의 수호자인 국민으로서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전두환 등의 헌정 질서 파괴 범죄에 저항하여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 및 국민의 기본권을 내용으로 하는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로 판단한다."

정확히 40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지만, 정작 김규복 목사는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12월 29일 대전 대화동 빈들교회에서 만난 김 목사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전두환·박정희 군부독재 및 친일 세력을 영웅시하고,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잔존 세력이 있다. 역사적 과오를 범한 독일처럼 철저히 반성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 한 개인이 재심으로 무죄를 받는 것보다는 국민과 나라가 그릇된 역사를 청산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송 목사 등 영향 받아 민중 목회 길로
개척 후 노동·산재 상담 운영소 등 운영
"지는 경우 허다했지만, 오병이어 기적도 일어나"
김규복 목사는 '사회적 약자가 하나님이다'라는 생각으로 목회를 해 왔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김규복 목사는 '사회적 약자가 하나님이다'라는 생각으로 목회를 해 왔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김규복 목사는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4시간 간격으로 약을 먹어야 그나마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손과 팔이 의지와 상관없이 떨렸지만, 대화를 나누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김 목사의 원래 꿈은 정치외교학 교수였는데, 감옥에서 읽은 본회퍼의 책 영향과 이모부 권유로 대전신학교에 편입하면서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특히 대전신대 전 교수 김진영 목사(운암교회 원로)와 영등포산업선교회 초대 총무 조지송 목사에게 영향을 받고, 본격적인 민중 목회를 하게 됐다.

김 목사는 1984년 대전에 빈들교회를 개척하면서 가장 낮고 힘없는, '바닥에 있는 자'를 위한 사역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1986년 종일제 탁아소형 선교원을 시작으로, 같은 해 섬김과나눔의공동체(섬나의집) 개원, 1987년 방과 후 공부방 운동, 주말 무료 진료 및 치과 운동, 1998년 무료 급식 운동, 2005년 이주민 공동체 운동, 2006년 이주 모자 가정 정착을 돕는 민들레 홀씨 지원 사업 등을 했다.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했던 시절 노동 상담소를 개설해 노조 설립 지원 활동을 벌이고, 산재 상담 운영소와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모임 등을 만들었다. 은퇴 직전까지 대전광역시 인권보호관회의 의장을 맡는 등 대외적으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김규복 목사와 빈들교회는 언제나 '을'의 편에 섰다. 노동문제가 벌어지면 노동자 편에, 이주 노동자 문제가 발생하면 이주 노동자 편에, 개발 사업 문제가 벌어지면 피해 주민 편에 섰다. 이들의 기본권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나아가 경제적 보상을 얻을 수 있도록 법률 자문과 행정 지원도 담당했다. 김 목사는 "지는 경우도 허다했지만, 종종 남들을 풍요롭게 하는 오병이어의 역사와 같은 일을 체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예수를 기준으로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청빈을 추구하고 교권이나 명예를 탐하지 않았으며, 없는 중에도 나눠 주고, 도와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다고 했다. 물론 이런 일은 가족과 교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함께했던 일부 교인은 지쳐 떠나기도 했다. 김 목사는 "하는 일이 이렇다 보니 많이 싸우고 나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 빈들교회 출신 한 목회자는 기자에게 "(김 목사님은) 설교로 가르치지 않고 삶으로 설교를 쓰신 분이다. 사실 그분처럼 목회하면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지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지금도 목사님이 이고 사시는 가난과 병약함은 후배 목회자로서 이어 가기 너무 버겁게 느껴진다. 이 지점에서 늘 목사님께 빚진 자의 마음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 목사는 자신의 목회 철학을 단 한 번도 바꾼 적이 없다고 했다. "가난한 가운데서 다른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게 하나님의 일이고 예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예수를 믿는다면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힘이 되어 주는 게 기독교적 진리라고 생각한다. 부자가 돼서 가난한 사람 돕자는 사람도 있던데,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김 목사는 빈민, 노동자, 이주 노동자 등을 '민중'으로 규정하고 함께해 왔다. 최근에는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도 민중으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를 테면 정보의 비대칭으로 부동산·금융 정책에서 소외되거나 결과적으로 피해를 입는 이들을 민중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원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도록 사회구조와 정보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김규복 목사는 갈수록 우경화하고, 배타적인 목소리를 내는 한국교회를 향한 아쉬움을 드러내며 변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율법주의에서 벗어나야 하며, 멸시·천대받는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교회는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믿고 있다. 율법주의에 빠진 나머지 성서를 제대로 해석할 줄 모른다. 가령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은 정말 '무지'한 것이다. 일반 상식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민중적 관점에서,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사람들 관점에서 다시 봐야 한다.

 

주일성수하고 많은 예배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이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절대타자인 하나님과 이웃, 고난받는 사람을 동일시하는 게 참된 복음이다. 멸시·천대받고 죄인과 노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너희도 하나님의 자녀다', '너희도 하나님나라 주인이다'라고 말해 주는 게 복음이다.

 

부유한 사람이 받아야 할 복음은,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가난한 사람과 나누고 함께하고 그래서 가난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부·지식·정보 등 소유하고 있는 것을 자기와 가족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쓰는 게 성도가 해야 할 일이다."        

대전 빈들교회 예배당. 김규복 목사의 뒤를 이어 허연 목사가 빈들교회를 이끌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대전 빈들교회 예배당. 김규복 목사의 뒤를 이어 허연 목사가 빈들교회를 이끌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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