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미디어·종교 연구 집단 '미디에이티드' 연구원들이 진행한 공개 포럼 '지옥을 말하다: K-드라마 속 종교 상징과 아포칼립스 코드'(2021. 12. 16.)에서 발제된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 편집자 주

영화 '부산행'으로 우리에게 이름을 알린 연상호 감독의 작품 세계는 멸망과 파멸로 점철해 있다. 그의 전작이 좀비 떼를 앞세워 황폐해진 도시만큼이나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다면, 이번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은 고도로 문명화한 도시 한가운데 불가해한 초월적 존재를 등장시킨다. '지옥의 사자'라 불리는 이들이 고지받은 사람에게 가하는 끔찍한 폭력 앞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또 한번 자신의 민낯을 드러낸다.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나약함을, 불안을 잠재울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믿고 보는 비합리성을, 그리고 다른 해석·질문을 신의 이름으로 철저히 배격하는 극단적인 배타성을. 

이처럼 연상호 감독이 그리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는 교양과 합리성에 가려져 있던 인간 본성과 현실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폭로한다. 그래서 작품을 다 보고 나면, 으레 무서운 대상은 좀비도 지옥도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감독의 상상을 통해 구현된 세계는 상당히 비현실적이지만, 그 안에서 튀어나오는 평범한 사람들의 간악한 행태는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기시감마저 드는 것이다. 

'새진리회'와 '화살촉'으로 대변되는 사람들의 반응이 감춰져 있던 인간의 밑바닥을 드러낸다면, 이와 동시에 드라마 '지옥'은 두 가지 요소를 철저히 가림으로써 현대사회를 보여 준다. 법체계나 군대로 재현될 수 있는 '공권력', 그리고 개신교를 포함한 '기성 종교'. 이 두 가지 요소는 드라마에서 철저히 소외된다. 혹자는 이와 같은 부재를 놓고 스토리의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초월적 존재의 등장으로 충격과 공포에 빠진 사람들에게 현실 공권력과 기성 종교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오히려 감독은 이와 같은 설정을 통해, 사람들의 육체와 정신을 보호하고 정의를 구현해야 할 공권력과 종교가 현실에서 제 기능을 상실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게 아닐까. 필자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드라마 속 신흥종교 '새진리회' 의장 정진수(배우 유아인 분).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갈무리
드라마 속 신흥종교 '새진리회' 의장 정진수(배우 유아인 분).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갈무리

사실 공권력의 부재와 그 자리를 대신하는 사적 복수는 최근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테마다. "악은 악으로 처단한다"는 '빈센조'(조문주 책임 프로듀서)를 비롯해 피해자에게 복수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범택시'(박준우 감독), 경찰이지만 악인을 자기 손으로 처벌하는 '마우스'(최준배 감독) 등 일명 '다크 히어로'를 내세운 텍스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전문가가 논평했듯이, 이 모든 텍스트는 현실 세계 공권력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을 반영한다.

드라마 '지옥'에 나타나는 공권력의 부재 또한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비록 스토리 초반, 경찰이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해결해 보려 움직이기는 하지만, '새진리회'가 사회를 장악하고 난 뒤에는 그들의 하수인으로 기능할 뿐이다. 진경훈 형사(배우·감독 양익준 분)는 유일하게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고자 끝까지 노력한 인물이었지만, 자신의 딸이 사적 복수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진실 대신 침묵을 선택한다. 진경훈이란 캐릭터가 '경찰로서의 신념'과 '딸을 보호할 수 있는 거짓' 앞에서 후자를 선택한 까닭은, 갑자기 나타난 초월적 존재의 전지전능함 때문이 아니라 경찰인 그조차 공권력을 끝까지 신뢰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20년 전 지옥행 고지를 받고 두려움에 떨며 살았던 새진리회 정진수 의장(배우 유아인 분)이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신의 의도를 '정의 실현'으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권선징악이 인류의 오랜 바람이며 종교 대부분이 공유하는 가치이기에 가능한 설정이었겠지만, 정진수가 보여 주는 정의에 대한 광기 어린 집착은 상당히 징후적이다. 그는 진경훈 형사에게 진실을 고하면서, 만약 자신이 만들어 낸 진리가 기각된다면 이 세상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형사의 딸과 함께 그의 아내를 죽인 범죄자를 위장 살해함으로써 자연재해와 같은 신의 고지를 정의 실현으로 둔갑한다.

'새진리회'가 그렇게 단시간에 세를 확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지옥행에 대한 공포만이 아니라 죄인을 처벌하기 원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자리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와 같은 사적 복수 텍스트가 드러내는 현실은 '공권력에 대한 깊은 불신'과 그보다 더 짙은 '정의에 대한 갈망'이다. 이 드라마가 여타 텍스트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정의를 실현하는 것처럼 보이는 주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새진리회'는 사람들의 정의감과 공포심을 이용해 권력을 장악하는 집단이며, '화살촉'은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 권력 집단에 이용당하는 불쌍한 다크 히어로에 불과하다.

'화살촉'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만 폭력도 서슴지 않는 광기 어린 집단으로 묘사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갈무리
'화살촉'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만 폭력도 서슴지 않는 광기 어린 집단으로 묘사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갈무리

드라마 '지옥'에 부재하는 또 한 가지는 '기성 종교'의 목소리다. 한국에서 처음 '지옥의 사자'가 등장했을 때도, 박정자(배우 김신록 분)의 공개 시연이 거행될 때도, 새진리회가 모든 권력의 중심에 서 있을 때도 개신교를 위시한 기성 종교 집단은 철저한 침묵 속에 놓인다. 생각해 보면, 천사·예언·사제 같은 용어나 공개 시연 시 의장이 입는 예복 등은 개신교 전통과 흡사한데, 그에 대한 개신교의 반응은 드라마 속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정치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높여 가고 있는 현실 개신교와는 매우 상반된 재현이다.

이와 같은 부재를 이해하려면, 공권력에 대한 앞선 설명과 마찬가지로 현실 사회에서 사람들이 기성 종교에 갖는 관념을 살펴봐야 한다. 세월호 참사처럼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을 당한 사람들에게 개신교는 어떤 존재인가. 하루하루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죽음과 같은 시간을 견디는 청년들에게 교회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가. 피해자의 용기 있는 폭로로 겨우 공론화한 교회 내 성추행·성폭력 사건은 과연 정의롭게 해결되고 있는가.

교회가 위와 같은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면, 이 드라마에서 개신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작금의 교회가 혼돈과 공포에 빠진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갈 것이란 기대가 사람들에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성 종교는 문제의 해결사로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텍스트의 리얼리티를 더한다.

그렇다면 드라마에서 단 하나의 절대적 종교 집단으로 급부상한 '새진리회'는 어떤 현실을 반영하는가. 새진리회가 권력을 획득하는 방식이나 그와 공생 관계를 유지하는 '화살촉'의 행태는 최근 들어 급속도로 심화하고 있는 '탈진실(post truth)' 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탈진실이란 특정 사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때,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이성적 토론보다 감정과 주관적 신념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말한다.

레거시 미디어가 쇠퇴하고 소셜미디어가 일상화하면서 가짜 뉴스가 범람하고 있지만, 정보의 진위를 합리적으로 따지기보다는 자신의 입장과 유사한 정보만을 진실이라 믿는 탈진실의 시대. 그 속에서 사람들은 신념을 중심으로 분열되고 나와 다른 입장을 가진 집단을 악마화하며 폭력을 정당화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새진리회는 초월적 현상에 대한 해석을 독점하고 사람들의 공포심과 정의감을 땔감 삼아 권력을 확장하는 탈진실 시대의 진정한 승자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지옥'이란 텍스트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은 까닭도 탈진실 현상이 전 지구적 흐름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러나 과연 '지옥'에 나타난 신흥종교의 모습이 기성 종교와 완전히 다른가. 신의 뜻을 해석하는 권력을 특정 집단이 독점하고 그와 반대되는 의견이나 의심은 '불신'으로 간주하는 모습이 개신교 안에는 없는가. 올해 <청소년 매일성경>(성서유니온)의 '큐티, 경제학과 만나다' 코너가 독자들 항의로 중단된 사태는 위 질문에 답을 제시한다. 전통적인 성경 해석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도 코너를 연재하던 김재수 교수는 이단·사이비, 심지어 '마귀 새끼'라는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그러니 드라마 '지옥'이 '반기독교적이냐 친기독교적이냐'를 따지며 새진리회와 구분되는 개신교 교리의 우월성을 논하기 전에, 우리는 다시 한번 진지하게 질문해야 한다. 과연 한국교회는 '지옥'에서 재현된 신흥종교 집단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금의 교회는 지옥과 같은 현실에서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

유지윤 / 콜로라도대학교에서 미디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연구소에 소속된 연구원이자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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