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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양 특유의 천명사상과 그에 따른 도덕론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공자를 기독교의 예수와 비교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기독교 교리는 유일신 사상에 의한 종교적 도덕론의 성격이 강하며, '마땅히 ~해야 한다'는 동양의 윤리와 달리 성서에는 '결코 ~하지 마라'는 언명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2. 그러나 예수는 우리가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결코 ~하지 마라'는 신의 명령이 아닌 나와 내 이웃의 정서, 즉 마음에서 찾았다. 예수는 신의 명령을 전달하고 인간을 감시하기 위해 내려온 신의 아들이 아니라, 도덕의 당위성을 인간 스스로에게서 찾고자 한 일종의 인본주의자요 휴머니스트인 셈이다.

3. 실제로 당시 예수는 안식일을 어긴 사람들을 비난한 제자에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생긴 것이 아니다"고 말하며 율법의 절대성보다 사람의 상황을 우선시한다. 또한 세리·창녀·병자·죄인 같은 하층민들과 수시로 어울리면서 도덕성 문제를 율법의 준수가 아닌, 인간과 인간의 동료애적 친교, 사랑에서 찾았다. 예수에 의해 도덕적 기준 자체가 하늘의 법칙(율법)에서 인간 정서와 관계의 세계, 즉 마음의 세계로 이전된 것이다.

4. 예수는 한밤중에 찾아온 친구의 예시를 들며 도덕적 행동의 근거를 우리의 내면에서 찾는다. 한밤중에 찾아온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는 일은 율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그 청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부끄러워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윤리는 인간에 대한,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도덕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문을 통해 도덕적 자율성과 주권성의 획득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예수는 인간 존재를 율법 자체보다 더 높은 것으로 평가했다. 구원은 율법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무상의 사랑 속에 있는 것이다.

5. 이러한 예수의 윤리적 실천과 인간 해방 가능성을 공자의 가르침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본주의자요 도덕의 당위성을 인간에게서 찾으려 한 공자는 전통과 의례를 중시했으나, 그보다도 그러한 행위를 할 때의 마음가짐을 더 중요시했다. 예를 들어, 효를 행할 때는 전통 의식에 따라서 하면 되지만, 부모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개나 말에게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그의 말은 도덕적 행위의 근거를 단순히 율법이 아닌 개인의 내면에서 찾으려 했던 예수와 결을 같이한다.

6. 공자는 또한 사람들을 허용과 금지의 외적 규제가 아닌, 스스로 부끄러워할 수 있는 자율적 규제로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도덕적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율법이나 주위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예수의 비유대로 단지 그러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부끄럽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자의 말처럼 우리는 주위 사람들이 나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7. 예수는 오직 자신을 통해서만 진리를 알 수 있을 것이며,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예수가 신의 아들이요 심판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이 율법을 넘어선 보편적 도덕법칙이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방을 나서려면 문을 거치지 않을 수 없는데, 사람들은 왜 이 길을 지나가지 않느냐며 공자는 한탄한다. 예수와 공자의 가르침, 도덕의 당위성이 우리에게 있다. 인간 마음이 도덕적 실천의 근거라는 깨달음이 바로 그 길이며, 그 길을 통해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도덕적 인간이 될 수 있다.

8. 공자를 메시아로서의 그리스도라고 칭하는 것은 분명 공자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다. 그러나 예수에 앞서 인간의 도덕성을 인간의 문제로 끌어내린 그의 행위는 유교 전통의 동아시아에서 기독교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준다. 나아가 공자와 예수가 인본주의자요 그들의 가르침이 율법과 전통에 얽매여 있지 않다는 사실은 타락한 한국교회에 성찰과 반성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9. 공자는 하늘이 자신에게 소명 의식을 부여하였다고 말한다. 예수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선언한다. 하지만 그들은 도덕법칙을 하늘(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서 찾았다. 그들은 하늘(하나님)을 자신의 역할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본 것이지, 하늘(하나님) 자체를 도덕성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독교는 예수의 부활과 승천, 그의 신성에만 눈이 돌아가 그를 단지 구원의 수단으로 취급한다. 공자 또한 중국의 독재 체제를 옹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공자와 예수가 제시하는 도덕적 실천과 그로 인한 인간의 자율성 회복은 가리어지고, 우리는 다시 율법에 집착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율법학자들이 된 것이다. 이제 인간은 다시 전통이라는 이름의 악습과 문자 그대로의 율법에 묶여 자유를 박탈당하고, 그저 스스로의 부귀를 위해 기도하는 독사의 새끼들이 되어 버렸다.

참고: 류의근, <예수, 급진적 휴머니스트>(2019)

이종태 / 연세대학교 학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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