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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성전기 문헌으로 읽는 로마서>(감은사)라는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다. '바울에 관한 새관점'이라는 주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거나, 관련 서적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제2성전기'라는 용어가 주는 긴장감을 이해할 것이다. '중간기 문헌'이 아닌 '제2성전기 문헌'이라는 말은 학문적 표현에 가까우며, 신학적 관점에서 바울신학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톰 라이트와 제임스 던, E.P. 샌더스는 '바울에 관한 새 관점'이라는 폭풍의 중심에 있는 이들이다. 성경을 신성시해 왔던 한국 그리스도인들이나 보수적 관점에서 바울신학을 설명하는 이들에게 '제2성전기 문헌'은 지극히 위험한 문헌들이다. 한국교회가 성경신학에 취약한 것은 과도한 '종교개혁 이후 신학'에 치우친 탓이 아닐까. 작년부터 성경 속 우상에 대한 자료를 읽고, 수메르를 비롯한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 신화, 인도 신화를 읽으면서 성경 배경 지식이 심각한 결핍 상태에 있었다는 게 분명해졌다.

제2성전기는 이스라엘 포로기 이후의 역사, 신약성경 배경사다. 구약에 등장하지 않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대제사장과 관련한 내용은 제2성전기 역사와 문헌을 개략적으로라도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수전절은 마카비 독립 전쟁을 기념하기 위해 생겨난 절기이다. 그동안 한국 보수 교단은 바울에 관한 새 관점을 과도하게 터부시하면서 논쟁 속에 담긴 수많은 장점과 이로운 내용까지 매도해 버렸다. 제2성전기 문헌은 보수 교단이 이해하는 것처럼 위험하지도, 이상하지도 않다. 제2성전기 문헌은 구약과 신약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제2성전기 문헌으로 읽는 로마서> / 프랜시스 왓슨 서문, 벤 블랙웰, 존 굿리치, 제이슨 매스턴 엮음 / 이학영 옮김 / 감은사 펴냄 / 352쪽 / 2만 원
<제2성전기 문헌으로 읽는 로마서> / 프랜시스 왓슨 서문, 벤 블랙웰, 존 굿리치, 제이슨 매스턴 엮음 / 이학영 옮김 / 감은사 펴냄 / 352쪽 / 2만 원

이 책은 제2성전기 문헌과 바울의 로마서를 비교한다.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 직간접적 인용을 통해 보여 준다. 지금까지 로마서는 갈라디아서의 쌍둥이 서신이자 이신칭의라는 거절할 수 없는 신학적 관점에서 읽혀졌다. 그렇게 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또 다른 새로운 바울에 관한 새 관점 논쟁을 담은 책인가 싶어 긴장했다. 그러나 앞의 몇 장을 읽고 나니 기우임을 알았다. 서문을 쓴 프랜시스 왓슨이 언급한 내용처럼 "성경 문헌을 연관된 비성경적인 문헌들과 함께 읽는 고대 관습을 장려하기 위해 힘쓰는 책"(23쪽)이다. 각 장을 간략하게 주해하면서 제2성전기 문헌 속 비슷한 주제, 동일한 맥락을 설명한다.

바울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자 율법 교사였다. 로마 시민권자이기도 했다. 이러한 바울 이해는 바울서신을 이해할 때 매우 중요한 단서다. 바울은 구약뿐 아니라 제2성전기 문헌에 상당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로마서를 좀 더 깊이, 바르게 읽으려면 1세기 유대인들이 알던 문화와 역사, 신학 지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바울뿐 아니라 신약 저자들은 구약뿐만 아니라 제2성전기 문헌에 익숙했다. 신약 저자들이 인용한 구약 본문은 맛소라(MT)가 아니라 70인역(LXX)이었다. 이는 70인역 안에 함께 담긴 위경들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뜻한다.

바울은 제2성전기 문헌과 당시 유대인들의 신학 개념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정의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솔로몬의 시편' 내용과 일치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는 메시아를 예수에게 적용한다.

"따라서 바울은 예수를 '권능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부르면서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원을 대리하시는 분, 기름 부음을 받은 종말론적 대리자'라는 것을 말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57쪽)

저자는 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주장을 제2성전기 문헌과 꼼꼼히 비교하면서 바울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힘쓴다. 바울은 당시 문헌들을 인정하는 동시에, 예수를 메시아라는 모호한 정의로 방치하지 않고 그리스도라고 선언한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을 재해석한 것이다. 바울의 해석은 혁명적이다. 바울은 스스로 율법으로는 흠이 없다는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율법으로 결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고 선언한다(롬 3:20).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선언한다. 종말에 완전한 의가 도래할 것임이 묵시문학에 등장한다.

조나단 리니버는 에녹서에 종말의 때에 하나님의 의가 드러날 것임을 보여 준다. 바울이 에녹서에 무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에녹서와 바울의 이야기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에녹서는 지금이 고난의 때이고, 후에 의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한다. 반면, 바울은 바로 지금이 종말의 때이며, 이미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선포한다. 율법과 제한된 인원에 대한 선별적 의와 달리, 바울은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롬 4:5)고 선언한다. 이 책은 이처럼 로마서를 제2성전기 문헌들을 비교하면서 바울의 주장들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제이슨 매스턴은 시락서와 로마서 7장 1-25절을 비교하며 율법과 성령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지혜 전승의 영향을 받은 시락서는 "사람이 선천적으로 하나님의 명령들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177쪽)고 전제한다. 하지만 바울은 율법 아래 철저히 무능한 인간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로마서 8장이 왜 성령 장인지 7장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새 관점' 주의자들은 제2성전기 문헌에 담긴 유대인들의 사상을 정확하게 읽어 냈다. 이중 칭의라는 용어로 새 관점 주의자를 제한할 필요는 없지만, 제2성전기 문헌은 분명히 그와 같은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책 의도는 분명하다. 바울 너머의 유대인 정서와 신약성경 배경을 볼 수 있게 한다. 위경과 위경, 쿰란 문헌을 통해 당시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기대했던 신앙의 결을 로마서와 함께 읽을 수 있다. 루터의 이신칭의 논법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제2성전기 문헌은 불경스럽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로마서를 깊고 넓게 읽고자 한다면 이 책은 참으로 유용하다. 신약 배경사를 공부하고 싶거나, 신학을 시작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가이드 삼아 제2성전기 문헌에 입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정현욱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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