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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는 낯설고 어렵다. 23년이 넘게 설교를 했지만 욥기 설교는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단 한 번일 것이다. 욥기의 구조는 단순하다. 1~2장은 천상 회의에서 결정되는 욥의 고난, 3~37장은 친구들의 방문과 논쟁으로 점철된다. 마지막으로 38~42장은 하나님의 현현과 욥의 축복을 다룬다. 문제는 구조가 아니라 내용이다. 사탄과 하나님의 대화는 그냥 넘어가더라도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욥과 친구들의 논쟁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비슷한 내용을 되풀이 하는 걸까? 엘리후는 갑자기 왜 등장하며, 하나님은 왜 답은 주지 않고 질문만 하다 사라지는 걸까? 주석과 개론서들의 설명은 명료하지도, 충분히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필자가 알고 싶은 건 단지 욥기의 흐름이나 신학적 주제가 아니었다. 끊임없는 욥과 친구들의 논쟁, 하나님의 질문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구약은 설교자들에게 인기가 없다. 욥기의 경우는 불가해성과 모호함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실제로 욥기를 본문으로 설교하는 목사들은 많지 않고 내용도 '욥의 믿음과 인내'로 대부분 획일적이다. 흔히 욥은 인내의 상징(약 5:11)으로 여겨지고 욥기는 지혜서로 분류된다. 그런데 필자는 이러한 내용에 동의하기가 힘들었다.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욥은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이기보다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욥이 고난 속에서 감사했는가? 아니다. 그는 믿음 없는 자처럼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원망했다. 욥은 믿음의 사람도 아니고 인내의 사람도 아니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혜 말씀으로 읽는 욥기> /  안근조 지음 / 감은사 펴냄 / 442쪽 / 2만 5000원
<지혜 말씀으로 읽는 욥기> / 안근조 지음 / 감은사 펴냄 / 442쪽 / 2만 5000원

<지혜 말씀으로 읽는 욥기>(감은사)는 욥기와 관련 저자의 논문들을 모으고 다듬어 출판한 책이다. 따라서 각 장 사이의 철저한 일관성과 연관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저자도 "꼭 순서대로 읽어 나갈 필요는 없"(13쪽)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욥기를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면 필히 정독하기를 추천한다. 어느 한 곳도 쉽게 넘어갈 만한 곳이 없다.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의'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다(창 15:6).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욥기 1~2장을 근거로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로운 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초반부만 보고 욥이 의롭다고 단정 짓는 것은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먼저 우리는 '욥기 저자'에 주목해야 한다. 저자는 몇 가지 근거를 들면서 욥기의 저자를 포로 후기(주전 6세기 후반에서 주전 5세기 전반)에 활동한 이스라엘의 지혜자로 추정한다. 단어와 어근들의 형태, 통치자들의 명칭, 사탄이라는 개념(슥 3:1-2)의 사용, 악인의 번영과 의인의 고난에 대한 신정론적 질문들이 포로 후기의 정서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악이 횡행하고, 모든 안식과 보호의 장막이 벗겨진 포로 후기의 관점에서 욥기를 읽어야 한다.

"욥기의 저자는 포로 후기 초기에 예루살렘의 회복을 꿈꾸며 바벨론으로부터 귀환한 경건한 유대인들 가운데 전통적인 야웨 신앙의 한계를 초월하여 계시와 깨달음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한 '지혜자'의 기록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29쪽)

필자는 저자의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저작 연대 문제는 아직도 논쟁 중이고 많은 난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욥의 고난을 개인의 고난인 동시에 공동체의 고난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로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는 욥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욥기에는 답이 없다. 질문만이 난무하다. 그럼에도 욥기가 지혜서로 불린다는 사실에 중요한 역설이 담겨 있다. 저자는 개관에서 친구들과 욥을 비교하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본문에서 친구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눈앞에 펼쳐진 욥의 현실과 유리된 교조적 신앙의 반복에 있었다. 반면에, 욥은 철저히 실존적 현실의 문제를 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있다. 삶의 현실과 동떨어진 관습화된 기도는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않는다. 삶의 한 가운데서 인생의 부정성(negativity)을 정직하게 떠안은 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부르짖음이 응답된다." (35쪽)

욥은 삶의 불가해성을 삶과 유리된 교조적 고백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삶의 모호함을 부정하지도 않았고 그것을 끌어 안고 하나님께  '항변'했다. 저자는 욥기 2장 4절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를 '가죽 둘레에 가죽을 (둘러 주셨다)'로 해석한다. 욥은 ‘자신의 정체성을 담고 삶의 울타리들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며(49쪽), 하나님의 묵인 아래  '울타리 안의 조화로부터 울타리 밖의 무질서'로 내던져진 것이다.(51쪽) 이것은 정확하게 '반창조'이다. 창조는 무에서 유로, 혼돈에서 질서로, 텅 빔에서 충만으로 향한다. 욥은 정확하게 거꾸로 돌아간다. 그러나 욥은 자신의 상황을 부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 항변한다.

저자는 욥이 항변과 논쟁을 통해 점점  '깨달음'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통찰한다. 첫 단계는 단지 울부짖음에 불과하다. 두 번째 단계는 "상황의 원인을 묻는 적극적인 항변의 모습"(345쪽)으로 발전한다. 왜 악인이 형통하며, 평안힌가를 묻는다. 욥은 하나님에 대한 전통적 지식에 도전하고 친구들은 끊임없이 응과응보의 원리로 욥을 책망한다. 드디어 욥은 "자신의 무고함을 변호받기 위하여 하나님을 상대로 법정소송을 제기"(346쪽)하기에 이른다. 탄식은 도전으로 발전하고, 도전은 다시 하나님을 소환하는 데까지 거침없이 나아간다.

"욥기의 서론부터 시작되었던 욥을 둘러싼 울타리들이 이제 28장을 거쳐 31장에 이르러 완전히 붕괴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제 욥의 세계는 모든 경계가 무너져 내린 그 혼돈의 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신비에 새롭게 열리게 된다." (348쪽)

고난은 광야이며 하나님의 학교다. 모든 보호막이 무너지고, 경계가 사라진 곳에서 하나님은 욥을 만나신다. 울타리 밖에서 욥은 부르짖는다. 욥기 전체는 "종교적 완전으로부터 지혜자의 절정의 경지에 이르는 욥의 배움과 깨달음의 과정을 담고"(118쪽)있다. 욥은 처음에 자신의 의로움을 변호해 줄 '변호자'(욥 9:33)를 찾았고, 이어서 '보증자'(욥 17:3)와 '구속자'(욥 19:25)를 찾는다. 결국 하나님은 폭풍 속에서 지혜자의 음성으로 욥에게 말씀하신다.

폭풍 속에 계신 하나님은 인간이 닿을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 하나님이 욥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한결같이 인간 통제 밖에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신다. 욥기 41장 9절에서 갑자기 1인칭으로의 전환이 일어난다. 이것은 하나님의 독백인 동시에 천상의 존재들에게 욥에 대하여 소개하는 것이다. 여기서 욥은 사탄에게 있어 리워야단에 비견되는 존재로 드러난다.

"그 사탄 역시 하나님을 중심으로 서 있는 천상회의 석상에서 지금 하나님께서 욥에게 대답하시고 그를 끝내는 의롭게 여기고 계심을 잠자코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욥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여 욕하지 않았다(욥 1:11, 2:5). 오히려, 인간의 역사 가운데 나타나는 악의 문제에 대면하여 분연히 떨쳐 일어섰던 것이다." (305쪽)

하나님께서는 천상에서 사탄과 천사와 함께 욥과 친구들의 논쟁을 바라보고 계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욥은 자신의 신앙을 정교하게 다듬어 가고 마침내 하나님을 구속주로 고백한다. 하나님은 폭풍 속에서 말씀하심으로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여 역사하고 계시는 분임을 드러내신다. 욥은 자신이 '티끌과 재'임을 자각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처분만 기다리는 소극적인 인간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그 본연의 청지기적 모습으로 적극적으로 나아오기 원하"(315쪽)시는 뜻을 안다. 욥은 새로운 경계 속으로 들어간다. 경제와 가정, 신체적 울타리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 선상에서의 자기 발견"(322쪽)이 새로운 지표가 된 것이다.

경이로운 책이다. 지금까지 읽은 욥기에 관련 서적 중 가장 탁월하다. 몇 번을 더 읽을 참이다. 서평을 위해 욥기를 두 번 넘게 읽으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욥기는 지혜서다. 욥기가 전하는 지혜는 그저 신정론이 아니라 실존적 신앙의 삶이다. 모든 것이 모호하고 뒤죽박죽된 시대에 욥기는 하나님을 더 깊이 신뢰하도록 독자들을 이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추천한다. 특히 고난 가운데서 살아가는 이들과 말씀을 가르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정현욱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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