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필자는 설교하는 사람이고, 목회자로서 설교와 설교자에 관심이 많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설교라는 것과 설교자에 대한 소책자를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복있는사람' 출판사에서 만드는 책은 여러 카테고리가 있다. 설교와 설교자가 그중 하나다. 특별히 개혁주의와 청교도의 흐름을 이어 가는 저자를 선별하거나, 복음주의 내에서 균형적인 저자를 선택하여 이 주제를 소개하기도 한다.

이번에 나온 책 또한 설교와 설교자에 대한 것으로, 여러 목회자와 성도에게 신앙의 유익을 주리라 기대한다. 필자는 최근 설교에 대한 책을 몇 권 보았기에 솔직히 처음에는 별 기대가 없었고 누구나 쓸 수 있는 내용일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책을 잡은 순간 이 책을 통해 여전히 배울 것이 있었고, 설교가 얼마나 위대한 일이며 설교자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위치인지 나를 두드려 볼 수 있었다.

책은 특이하게 소요리문답 형식을 빌려서 42개의 질문과 답으로 구성되었다. 그 주제들도 설교 준비, 설교 후, 설교자의 마음·자세·태도,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 교회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 성찬과 세례 등 아주 구체적인 내용으로 유익하게 구성되었다. 설교자는 강단 위에서만 설교하는 것으로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 거룩한 곳에 서기까지 그리고 선 후에 어떤 사람이 설교자인지 점검하게 된다.

<설교자의 요리문답> / 루이스 앨런 지음 / 정상윤 옮김 / 복있는사람 펴냄 / 284쪽 / 1만 3000원
<설교자의 요리문답> / 루이스 앨런 지음 / 정상윤 옮김 / 복있는사람 펴냄 / 284쪽 / 1만 3000원
예수님의 흔적 있어야

설교자는 단순히 설교하는 사람이 아니다. 설교하는 것을 좋아하고 가르치는 은사가 있으며 말의 재주가 있다고 설교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설교자는 무엇보다 주님을 깊이 체험하고 경험한 흔적이 있어야 한다. 이 복되고 영광스러운 경험 없이 사역하고 설교한다는 것은 강단을 더럽히는 것이고 교회를 장사판으로 변질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신구약시대나 요즘이나 양의 문이 되신 예수를 통과하지 못하고 전하는 설교자가 있다는 것이다.

남다른 구변과 말하는 재능을 가지고 설교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자신이 믿는 바를 논리 있게 소개하고 사람을 선동하며 '나는 설교자로 부름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언변의 열매로 교회가 성장하고 사람이 몰려드는 일들도 나타난다. 그러나 설교자는 교회를 키우기 위해 설교하지 않고, 사람을 끌어들이고 자신을 따르게 하고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설교하지 않는다. 그런 마음으로 설교하는 자라면 설교자가 아닐 것이다.

설교자에게는 언변과 비유와 논리와 수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설교자로서의 자질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다. 탁월한 은사를 가져도 교회를 위해 잠시 쓰임받다 버려지는 설교자가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설교자는 자신에게 그 누구도 뺏을 수 없는 예수의 흔적이 새겨져 있는지 보아야 한다. 이게 없다면 은사만으로 설교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은사와 관심과 특기 이전에 이 영광스러운 스티그마를 지녀야 할 것이고, 이것은 더 선명해져야 할 것이다.

거룩해져 가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는 우리가 배나 존경하고 사랑하여야 한다. 그를 통해서 나오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교회와 영혼을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비전이고 목적이기에 설교자를 소중히 여기고 감사해야 하고 모든 것을 좋은 것을 나누어 서로의 기쁨을 크게 해야 한다. 그러나 단지 설교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고 어떤 설교자인지 우리는 그의 삶과 거룩을 통해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설교자는 그의 설교와 가정과 삶이 거룩해져 가야 한다. 설교를 전하는 자가 설교의 거룩함이 없고 그의 삶에 거룩함이 없다면 설교자로 부름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당신의 자녀인 성도 또한 거룩해져 가기를 원하시는데, 그 성도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설교자의 거룩함은 더욱 크고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거룩해야 하고 거룩해져 가야 한다.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볼 수 없으니, 거룩함이 없는 설교자는 주님 없이 말만 하는 것이다.

설교자는 실력과 은사와 연구에 있어서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 부름받은 이후 이런 2차적인 부르심이 없다면 그 부르심 또한 가짜일 확률이 높다. 부름받은 이후 절대적인 거룩함으로의 아름다움이 없다면 가짜일 확률이 더 높다. 가정과 삶에서의 거룩함은 설교로 증명된다. 어느 정도 설교의 거룩함만으로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설교를 뒷받침하는 인격의 거룩함이 없다면 시끄러운 꽹과리일 뿐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거룩함에서 자라가야 한다. 거룩함 없이 설교하는 것은 위대한 설교를 우스운 설교로 변질시키는 것이다.

자신에게 설교하라

설교자는 설교를 준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일주일 삶에 있어서 강단에 서기까지 이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본질적이고 영적인 일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으면서 이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필자가 볼 때 이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설교자들은 다른 일들에 우선순위와 중요성을 두고 사역을 하는 것 같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다. 진리를 전하고 보존하는 일에 설교자의 우선성은 지켜져야 할 것이다.

현대 교회에는 워낙 다양한 일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설교라는 위대한 사역이 뒤처지는 듯한 아쉬움이 있다. 그러다 보니 부족한 준비로 무능력하고 감동 없는 설교가 전해진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설교해 보지 못하고 강단에 서서 전하는 체험 없는 선포가 이루어진다. 자신에게 체화하지 못하고 전해지는 설교는 자신감이 없고 영감이 없으며 무미건조하게 된다. 반면 자신을 통과한 설교는 불이 있고 감동이 있으며 생기 있게 증거된다.

설교자는 교회와 영혼에 설교하는 사람이다. 그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설교하는 사람이다. 설교자는 설교하는 일을 직업으로 여기게 되는 것을 무서워해야 한다. 주님을 향한 사랑 없이 설교하는 것도 교회와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이고, 직업으로 입을 여는 것 또한 교회와 자신을 어둡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늘 자신에게 먼저 설교하는 자여야 한다. 강단에 서기 전 주님의 말씀이 나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훈계하고 사랑하고 품으시고 변화시킨 흔적이 있어야 한다. 그런 설교자는 생기 있게 주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교회가 부흥하는 시대에 교회에서 선포되는 설교는 회심과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권능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시대 교회에서 증거되는 설교는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돌아본다. 설교가 지루해지고 건조하고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가? 아니면 설교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그냥 교회에 의자만 뜨겁게 달구고 자기 가슴은 서늘해져 가고 있지는 않는가? 설교를 좋은 이야기 듣는 정도로 여기는 것도 슬프지만 설교에 대한 기대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 더욱 가슴을 치게 한다.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이 된 것은 설교자의 책임이 클 것이다. 정말 아무나 이 일을 감당하면 안되는데, 한번 은혜를 받았다는 감격 하나만으로 소명이라 여기고 강단에 서니 귀를 닫는 일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부름받은 설교자는 자라 가는 사람이고 그의 자라남이 교회와 성도를 자라게 한다. 설교자의 정체가 교회의 정체이고, 그의 무지가 교회의 무지가 되며, 그의 닫힘이 교회의 닫힘이 된다.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현대인들은 교회가 설교만 중심이 된다는 것에 대해 지적하고 불만을 가지고 있다. 예배학적으로 고민하고 해결해야 될 부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설교가 무의미하고 약해져서 그런 주장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 설교자의 부르심을 돌아보게 하는 책을 통해 자신을 점검해 본다.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그분께 붙잡힌 설교자, 그분이 중심이 되고 그분만으로도 충분한 설교자가 되길 소망한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방영민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서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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