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여 동안 <뉴스앤조이>는 저에게 깊은 위로와 끊임없는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한국 교계의 부패한 현실 가운데 듣기 어려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꼭 들어야 할 소리건만 이리저리 눈치보느라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었던 소리들! 음지를 힘없이 떠돌아다니던 소리들이 인터넷과 지면을 통해 힘차게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너무 기뻤습니다.

동토 속에 잔뜩 움츠려 있던 생명의 씨알이 마침내 세상으로 그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는 것 같았습니다. <뉴스앤조이>는 봄에 막 돋아나기 시작하는 연둣빛 잎새 같습니다. 위대한 생명의 신비와 아직은 여린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뉴스앤조이>를 지켜보며 깊은 동지의식을 가슴에 안고 한 발짝 떨어져 같은 길을 걸어온 셈입니다. 그런데 이제 편집인으로서 그 길을 동지들과 한 걸음으로 걸어갈 수 있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섬세한 인도의 손길을 느끼면서 제 마음에는 감격이 벅차오르고 있습니다. 우선 그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 여린 생명의 씨알을 지키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뉴스앤조이>의 모든 일꾼들과 독자들에게 뜨거운 격려와 고마움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예리하면서도 수려한 필봉으로 한국 교계를 통찰하고 이정표를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뜨거운 반향을 일으켜 왔던 한종호 목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한 목사님은 한국 기독 언론을 한 단계 성장시키는데 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새로운 부르심을 받아 아브라함처럼 미지의 세계로 개척의 길을 떠나는 한 목사님께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편집인으로서 첫 글을 쓰고자 할 때 하나님은 제 마음속에 세례 요한의 모습을 자꾸 생각나게 해주셨습니다. 제 안에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라"는 주님의 음성이 강하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 길을 과연 갈 수 있을지 두렵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신실하게 저를 붙들어주시고 이곳까지 이끌어주신 주님의 손만을 꼭 붙들고 이 길을 가려 합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이 하필이면 광야에서 세례 요한에게 임했을까요?(눅 3:2) 세례 요한은 왜 좋은 가정 환경을 뒤로하고 굳이 약대 털옷을 걸치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는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많은 시간을 외로운 광야에서 보내야 했을까요? 그것은 거기밖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인간의 거짓된 소리들만이 의사소통의 공간을 빼곡이 채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례 요한을 외로운 들판으로 불러내셨고 거기서 생명의 말씀을 들려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광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쓰레기 같은 말들을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통회의 눈물로 말끔하게 씻어내야 합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하는 욕망의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겸손히 약대 털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주목하는 사람이 없는 곳, 오직 하나님만이 기다리고 있는 광야로 나아가야 합니다.

부활주일 오후 그 영광스러운 순간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교계 지도자들의 입술을 통해 울려 퍼진 소리들이 주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셨을까 생각하니 슬픔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라"는 주님의 피 맺힌 음성이 나의 가슴에 사무칩니다. 우리 모두 광야로 나갑시다. 거시서 주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그래서 그 음성을 다시 세상에 힘차게 전달하는 광야의 소리가 됩시다. 그 작은 음성이 온 세상을 뒤흔드는 함성이 될 때까지!  

편집인  박득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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