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경공업 수출산업의 주역은 여성노동자들이었으나 노동조합 간부직은 대부분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한 중심이었던 동일방직노동조합이 겪어야 했던 '나체 시위 사건'과 '똥물사건'은 이 땅의 여성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했던 쓰라린 역사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사진제공 : 서울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 노동사 100년 사진전"

▲성공회대 새천년관 2층에 마련된 한국 여성 노동사 100년 사진전
ⓒ뉴스앤조이 신철민

성공회대학교는 3.8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에서 열었던 사진전을, 사이버상에 그대로 옮겨 "한국 여성 노동사 100년 사이버 전시관"을 개설했다(http://www.demos.or.kr/women100). 이 사진전은 일제시대를 시작으로 70, 80, 90년대까지 이어져오는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30여 점의 사진을 통해 구현해 놓은 것이다. 성공회대 새천년관 2층에서 29일(금)까지 전시할 예정이다.

전순옥 박사 "한국여성노동운동사" 강연

3월 27일(목) 오후 7시에는 새천년관 2층에서 총학생회 여성국 주최로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박사가 "한국여성노동운동사"를 강연했다. 생생한 현장을 몸으로 껴앉았던 전순옥 박사는 사진 속 숨은 얘기들을 실타래 풀듯 줄줄 내놓았다. 12년의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작년 다시 직공으로 취직한 전순옥씨. 그동안 어떻게 바뀌었는지 몸으로 알고 싶어서다.

경력을 인정받아 12시간을 일하고 받은 월급은 60만원. 그때보다 환경도 개선했고 월급도 터무니없진 않다. 손씻을 세면장이 있고, 줄서서 화장실을 가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점심, 저녁까지 공장에서 제공하고 있었다. 이런 저런 사례들을 통해 70-80년대 노동환경과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나를 꼼꼼히 비교해 보던 중 아직도 영세사업장 대부분이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환경이란 것을 실감해야 했다고 한다.

여전히 비정규직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해고 1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보면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동료 남자노동자에게까지 배신을 당하고 온갖 테러를 겪으면서 꿋꿋히 일궈온 여성노동운동의 우여곡절은 고스란히 역사속에 놓여있다. 지금도 크게 나아졌다고 평가하지 못하는 현실앞에 누가 이 멍에를 떨치고 자유로울 수 있을까?

▲동일방직의 똥물사건 사진 앞에 선 전순옥씨 ⓒ뉴스앤조이 신철민

전순옥
1970년대 섬유직 여성노동자로 근무
1987년   한국여성노동회 창립 멤버
1999년   영국워릭대학에서 "한국여성노동자와 민주노동조합운동론"으로 박사학위 취득
현재    성공회대학교 사회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신민당사 YH여공들

▲YH진압과 김경숙의 죽음은 유신정권의 본색을 폭로시켰고 이후 여러 반정부투쟁이 일파만파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청계천 전태일의 인간선언으로 시작된 70년대는 박정희의 유신독재의 기나긴 터널을 지나 마침내 YH의 여성노동자들에 의해서 그 막을 내렸다.(자료제공 : 매일노동뉴스)


전투경찰과 대치

▲노동운동이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80년대에 들어 여성노동자들도 대열에 합류했다. 기본적인 임금인상투쟁을 비롯하여 '동일노동 동일임금', '결혼퇴직제 폐지'등 여성노동자들만의 이슈를 드러냈다.(자료제공 :서울여성노동자회)

114교환원의 눈물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용역직 증가와 파견직전환 등 비정규직 확대로 사회문제가 되었다. 2001년 한국통신 114교환 부서 전체가 분산될 위기에 직면하여 삭발투쟁을 감행하였다. (자료제공 : 노동일보)

한달 월급 42만원

▲IMF 경제위기 이후 격화 된 빈부격차는 한달에 42만원 밖에 받지 못하는 청소용역노동자의 현실로 대변되었다. 이들 다수가 용역직이기 때문에 법정 최저임금(현재 월 474,600원)이 올라야 자신의 임금도 오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자료제공 :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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