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목자의 가슴. 김홍도 목사님. 목사님은 목자십니까. 자신에 칼을 휘두르는 이들의 영혼의 구원까지 걱정했던 예수를 믿는 그 목자 맞으십니까.

또 '악마'운운하셨습니까. 목사님, 악마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농담으로도 써서는 안될 저주의 어휘인 것을 알고 계십니까. 목사님의 친구들 몇몇 분은 기독교와 하등 상관이 없는 '붉은 악마'라는 팀의 이름에 '악마'라는 말이 들어가 섬뜩하다며 이름 바꾸라고 성화인데, 목사님은 일개 신학자를 향해 '악마'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쓰셨다고 하더군요. 슬픕니다. 정말 그 목사님이 몇 만 성도를 자랑하는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님 맞습니까.

자유주의 신학 그리고 공산주의는 끝장내야 할 상대이기에 신앙양심을 걸고 '박멸'해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십니까. 그 상대가 맘에 안 드는 정도가 아니라 원수일지라도 예수님은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걸로 아는데요.

수많은 성도들 앞에서 '악마의 종' 운운하며 한 사람의 인격을 이토록 무참히 밟아버릴 수 있습니까. 목사님이,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의 양심에 이렇게까지 심하게 상처를 남기실 만큼 주님의 주권을 이렇게 허락도 없이 남용하실 수 있습니까. 주님도 목사님처럼 그렇게 하실까요.

목사님, 온전하십니까. 그렇다면 목사님은 불륜행각도, 또 법정에 가서 위증도, 또 배임도 하지 마셨어야 했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육체가 망가진 여인을 향해 '미친 여자'라는 너울까지 씌운 사람이 목사님이라면 누가 믿겠습니까. 물론 그런 범죄도 연약한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실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죄와 판단 등 사람의 몫을 벗어난 하나님의 주권을 마음껏 사용하신 목사님께 그에 상응하는 도덕성을 묻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그 동기부여 역시 목사님이 하신 것 아닙니까.

목사님. 목사님은 사람을 향해 '마귀'라는 말을 너무 많이 쓰십니다. 목사님, 몇 년 전 한 교계 방송사 대표이사를 맡고 계실 당시, 직원들을 초법적인 방법으로 가차없이 잘라내면서 '마귀들을 쫓아내고 있다'라고 자랑처럼 말씀하신 적이 있으셨지요. 그런 목사님께서 남아있는 직원들의 급여를 몇 달간 체불하던 그 때 당시, 당신의 회갑생일 축하연을 최고급 호텔에서 휘향찬란하게 거행하고, 거기에 그 방송사 카메라맨들을 불러다가 비디오 촬영기사로 썼던 그 전례는 영원히 사라질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 사람들 가슴에 멍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알량한 감리교 감독회장 자리 한 번 해보려고 몇 년 전 벌어진 선거전에서 친형에 대한 온갖 흑색선전과 비방을 획책했던 그 과오 역시 하나님은 추상같이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목사님, 아무 소명기회 조차 얻지 못하고 쫓겨난 방송사 직원들 그리고 당신의 친형도 마귀였습니까. 이번에 박익수 교수를 향해 또 한 번 '악마'운운 하신 목사님은 스스로 온전히 순결하고도 거룩한 주의 판관자라고 생각하십니까.

목사님. 영혼을 사랑하십시오. 당신의 목회경륜, 속한 교회의 성도 수를 갖고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공을 이야기하실 겁니까. 천하보다 귀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숱한 절망감을 던진 그 죄과에 대한 응징은 무슨 수로 피하시렵니까? 그 앞에서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를 목청껏 부르시렵니까.

목사님. 목사님을 향해 이렇게 절규하는 저도 혹시 마귀입니까. 거룩하게 기름부음 받은 주의 종을 핍박하는 몹쓸 마귀입니까. 그렇다면 허튼 말, 몹쓸 말은 이제 좀 삼가해주십시오. 목사님의 입에서 그런 험한 말이 나올 때마다 우리 같은 무지몽매한 평신도들은 그런 말을 써도 되는 줄 알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평신도들에게 목사님 같은 분들은 이 세상에서 누릴 권한은 없고, 예수님처럼 좁은 길로만 가시는 분들이라는 기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핍박을 하면 핍박을 받고, 입에 발린 칭찬의 말을 들으면 철저하게 경계하는 그런 본이 목사님 같은 분들에게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제가 잘못 알아도 한참 잘못 아는 것일까요.

목사님. 목사님을 향해 이같이 격한 말을 퍼부어서야 되겠느냐, 목사는 사람 아니냐, 교회를 핍박할 수 있느냐...라고 하실 겁니까. 그렇다면 목사님의 입에 맴돌고 있고,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그 저주의 화신들을 지워주십시오.

목사님, 우리 안에 자유주의 신학, 공산주의 사상에 앞서 사라져야 할 것은 남의 인격을 짓밟는 저주의 언어들이 아닐까요. 우리같이 못난 인간들이 서로의 모난 부분을 끝까지 따져나간다면 누군들 온전한 모양새로 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목사님, 예수님이 남기신 향기와, 목사님의 행보의 격차를 좁혀주십시오. 그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좁은 문을 택하시고 사랑의 본을 세워주시는 길입니다. 사랑은, 목사님이 경멸해마지 않으시는 자유주의 신학, 공산주의 사상을 이길 힘이 있습니다. 그 힘으로 목사님의 신앙양심에 어긋나 있는 도처의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사용해 보십시오. 풀리지 않은 일이 없을 것이라는게 부족하지만 제가 품은 신조입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모두가 십자가의 길을 생각하는 때입니다. 목사님, 주님은 자기를 죽임으로써 만인을 살리셨습니다. 목사님이 앞서서 그런 희생의 본을 세워주십시오. 그리고 한 때 악마 운운했던, 그리고 당신으로 인해 교회에서 쫓겨났던 많은 이들을 향해 먼저 품어 주십시오. 그 분들에게 인격적 앙금을 남긴 점을 사과하시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한 형제로서 더불어 함께 믿는 인격체로 섬겨주십시오.

새 봄. 만물에 화창한 기운이 움트는 이 때에 사랑과 용서, 평화의 가치가 도래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도 서로를 악마라 부르지 않고, 악의 축으로 단정짓지 않는 그런 그리스도의 푸르고 푸른 계절이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목사님의 가슴에 주님의 계절이 함께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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