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신철민


산마루

마을을 벗어나면 산이 있고,
산은 온갖 욕망에 뒤엉켜
숨이 막혀 찾아오는 뭇 영혼들에게
숨을 되찾아주고
하늘을 열어줍니다.

산의 가장 높은 곳엔
산마루가 있습니다.
산마루엔
하나님이 임하시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하늘과 땅의 접경이 숨어 있어,
신을 벗고,
나를 빠져 나오게 하는
텅 빈 자유의 충만이
새 숨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러기에
산마루에 오르면
마을은 눈에 들어왔다
사라지고,
굽이쳐 지나온
시간의 골짜기에 새겨진
자기 발자국은
남의 것인 듯
나타났다 자취를 감추게 합니다.

거기
산 그리고 그 마루는
영혼이 뿌리를 내릴 붉은 흙이
우주를 품고
마을 아래 골고다를 넘어
영원을 향하여 길을 떠나라고
둥둥 영혼을 깨우는
소리 없는 소리로
눈을 뜨게 합니다.



▲주일이면 현관에 걸어 놓는 글귀를 적어놓은 팻말. "삶은 '지금-여기'있느니
천천히 한발짝씩" 아래적힌 2는 해석하기 나름. 2층도 되고 2월도 되고 둘도 좋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마루(宗:foundation)는 바탕이고 근원이다. 하나님이 임하시는 산마루를 삶의 자리로 끌고 오는 일이야말로 목회의 본질인지 모른다. 하여 '산마루 가는 길'은 여간한 마음의 다짐 없이는 힘겨운 오름이고 만다.

산마루교회(이주연 목사)를 향했다. 지하철 6호선 대흥역에 내려 태영아파트 출구로 올라와 다시 공덕동 쪽으로 향하면 학원이 보이는데…. 그러나 학원이 들어선 건물까지 찾았지만 멈칫멈칫해야 했다. 거기 교회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흔한 십자가 탑은 물론 어디에도 교회라는 표시를 찾지 못했다.


이 목사는 그랬다. 자신이 게을러서 못 달았다고, 그러나 요즘 세상에 교회 간판 보고 찾아올 불신자들이 어디 있겠느냐고. 우리 동네 어느 교회는 그렇게 현란한 간판 걸어놓고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20명이라고. 간판이 불신자들에게 교회가 여기 있음을 알리는 표시라면 적어도 우리 시대에는 별 효력 없는 방법 아니냐고.

이 목사는 산마루교회를 열면서 몇 가지 꿈을 꾸었다. 그가 속한 감리교 교단에서는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교회에서도 목회를 해보았고, 월간 <기독교사상>의 주간으로 일하며 한국 교회를 속 깊이 바라보기도 했다. 산마루교회는 '산마루 가는 길'처럼 많은 시간과 다짐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영근 꿈이 산마루교회이고, 산마루교회를 통해 '처음교회의 영성이 살아 있는 교회, 재가수도자 공동체, 21세기 교회'의 꽃이 피기를 기도한다.

힘찬 단순함으로 신앙의 삶 변화

▲산마루교회 이주연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처음교회란 사도행전 이전의 교회로 예수와 제자들의 공동체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교회는 단순히 믿음만 넘쳐 응원단이나 패거리처럼 네 편 내 편을 가르지 않는다. 깊은 깨달음과 사랑이 있는 교회이며, 목사와 성도 사이에도 깨달음과 믿음 사랑이 있어 존경과 애정을 느낀다.

재가수도자 공동체는 수도원 운동의 내용을 성도들 가정으로 옮기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을 하루 단위로 살도록 한다. 매일 아침을 창조의 첫 아침 대하듯 하며 저녁은 종말의 마지막 날 밤처럼 맞는 것이다. 그래서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감사하는 삶이 그날그날 나타난다.

또한 성경은 연구 대상이 아닌 삶의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연구 대상으로 전락된 성경은 지적 능력에 의해 성도를 계층화시킬 뿐이다. 우리는 말씀의 핵심에 근접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과 로마서 12장, 야고보서는 우리가 늘 가까이 하며 삶의 원칙으로 삼으려 한다.

바울을 만들고 어거스틴을 있게 한 진리는 어린이들도 알아들을 수 있다. 진리란 이미 존재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기에 그렇다. 진리와 만남으로써 그들은 신도가 된다. 어린이조차 교회 오는 것이 즐거워 부모가 이사할 처지에 놓여도 멀리 이사를 못한다. 술꾼도 이 진리 앞에서는 변화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진리와 만나려 하기보다 성경을 연구하는데 몰두했던 것이다. 재가수도 공동체는 이렇게 진리와의 만남을 삶에서 경험하는 자리이다.

마지막으로 21세기 교회라는 우리의 꿈은 21세기라는 상황과 만난 복음의 모습을 가리킨다. 공동체에 대한 성도들의 요청이 높아지고, 개교회주의와 교파주의를 넘어 진정한 일치를 이룸으로 온갖 벽들을 허무는 것이기도 하다.

영적 네트워크로 연결된 교회의 모습 또한 21세기 교회의 특징이다. 이메일을 통해 성도와 목사는 긴밀히 만나며, 성도들이 목사의 영적 산물들을 사이버 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목사의 깨달음이다."


▲매일 아침을 창조의 첫 아침 대하듯 하며
저녁은 종말의 마지막 날 밤처럼 맞는 것.
그래서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감사하는
삶이 그날그날... ⓒ뉴스앤조이 신철민
이 목사는 일상의 은혜를 시로 쓰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인터넷에서 내려 받아 카드를 인쇄한다. 수요일 모임에서는 함께 글을 읽고 소감을 나누고, 삶 속에서 경험한 신앙을 나눈다. 무엇보다도 힘있는 삶의 이야기들이 참석자들을 감동시킨다.

성도들은 병원에서 환부 치료에 몰두하듯 교회에서는 자신의 변화에 몰두한다. 교회란 일하기 위해 오는 곳이 아니며, 일했다는 빌미로 스스로를 공치사해서도 안 된다. 이것이 산마루교회를 영성공동체로 묶는 끈이며 힘이다. 일은 변화 이후의 결과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변화'이다. 교회의 존재 목적 역시 역사의 진보와 함께 인간의 거듭남이다. 거듭남, 곧 진리와의 만남으로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일이 곧 독이 된다고 믿는다. 한국 교회가 변화되지 않은 성도들의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까닭 역시 교회를 일 중심의 성장체로 오해한 까닭이라고 비판한다.

본질을 놓친 교회가 어디로 향하는지, 복음의 문법에 충실하지 않을 때 교회가 어떻게 타락하는지, 이 목사는 자신의 목회를 통해 고발하고자 한다.

목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 목사는 끊임없이 성도로 걸어야 할 구도의 삶이 본분이라고 여긴다. 목회 방법을 배우러 신학교에 가지 않았고, 목회 방법으로 목회하지도 않는다. 그의 목회는 신앙을 삶으로 즐기는 일이며 거기서 길을 구하는 일이다. 목사로서 성도를 섬기는 일 역시 자신이 발견한 길을 일러주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어쩌면 '힘찬 단순함'이라는 말로 설명된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힘찬 단순함으로

총을 많이 쏜다고
사냥을 잘 하는 것이 아니고,
말을 많이 한다고
말을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발의 총탄으로 호랑이를 잡고,
한 마디의 말로 진리를 낚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고자 하면
사람의 시간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따라야 합니다.

작은 부지런함을 벗고
큰 쉼을 얻어야 합니다.
작은 근심을 벗고
죽음이라는 마지막 근심과 마주쳐야 합니다.

그러한 이는
뜻밖에 힘찬 단순함에 이르러,
부산스럽게 그물만 고칠 뿐
고기를 잡지 못하는 경우를 당치 아니할 것입니다.

그리고 혹,
하나님의 뜨거운 숨결과 마주친다면,
세례자 요한처럼
한 벌의 옷에 광야의 음식으로 족하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도끼 날로 역사를 가르며
우주에 남는 소리를 토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처럼
십자가의 쓴잔을 받는 순종으로
하나님께로 뛰어들 수 있는 영성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의 목회는 신앙을 삶으로 즐기는 일이며 거기서 길을 구하는 일이다.
목사로서 성도를 섬기는 일 역시 자신이 발견한 길을 일러주는 것일 뿐이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산마루교회가 모인지 이제 1년이 지났다. 도시에도 나무가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늦게 들어선 길이었다. "이 어려운 시대에 웬 개척이냐"며 미친 사람 취급하는 이들이 있었다. 당장 대단한 결실을 기대하지 않지만 이 목사에게 지난 1년은 '미친(?)' 목회의 옳음을 확신하는 시간들이었다.

알음알음 소개를 받고 모여든 성도들은 이제 '교회 순례'를 멈춘다. 그들이 삶의 자리에서 영성을 키우고 세상 속의 수도자로 서는 것을 볼 때마다 예전에 느끼지 못한 벅찬 감동을 맛본다.

희망은 홀로 간직하고 멈추지 않는다. 도시의 수많은 '작은 교회'들과 연대의 끈을 만들어 감으로써 청산해야 할 목회문화에 대해 공감대를 확산시키고 있다. 산마루교회는 그들에게 의미 있는 대안이고 싶은 것이다. 이미 '성공한' 교회의 모델이 결국 오늘의 한국 교회를 만들었고, 지금 우리는 어차피 그 한계를 신물나도록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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