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신은 마음과 마음이라는 정신과 의원 원장이다. 특별히 그는 자신의 아버지의 삶을 생각하면서 남성들의 심리에 대해서 깊이 있게 연구한 남성심리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여성이라는 측면에서 남성을 보았다기 보다는, 정신과 전문의로서 한국의 대표적인 남성들을 해부하는 심도깊은 심리상담 전문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강준만 교수가 한국의 대표적인 인물들의 평전을 내놓았지만, 이렇게 심리상담적인 측면에서 남성을 해부한 책은 처음이지 싶다. 특히 여성의 섬세한 면이 심리분석과 어우러져, 봄바람에 휘날리는 상큼한 바람처럼 시원함을 주었고, 나 자신을 돌아보며 오래동안 생각케 해주는 여운을 남겨주었다.

정혜신은 이 책에서 같은 성격의 인물이지만 다르게 나타나는 측면을 대비하여 극명한 대조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두 인물을 대조하여 극대의 효과를 이루려고 하였지만, 어떤 면에서는 두 인물의 연결에 대한 의도와 결론이 약하기도 하고, 정과 반에 의하여 합을 도출해나가려는 의도에 비하여 합의 대안이나 결과가 부족하지 않나 생각되는 면도 있다. 특히 정혜신은 가진자와 약한자를 대비하여 약한자 편에 서 있는 것같은 느낌을 준다. 가진자와 기득권자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아주 날카로우며, 그 사람의 심리적인 분석과 성장과 발달 측면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것을 볼 수 있다.

정혜신은 김영삼을 자기중심적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왕자병자로 보고 있다. 김영삼의 모든 행동은 자기를 통찰하지 못하는데서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딴지일보의 창업자 김어준은 김영삼과 같은 독재적인 요소가 있지만 끊임없이 자기에 대한 인식과 통찰을 하고 있기에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김영삼은 자기 인식을 바로 해야 하고, 김어준은 냉소적인 패러디를 넘어서서 따뜻한 애정과 의미부여가 필요할 것이다.

정혜신은 이건희 회장의 일등주의나 강박관념의 근원을 열등감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열등감은 그의 엄부 이병철 회장에 대한 공포와 분노에서 비롯된 것일 게라고 말한다. 그래서 정혜신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더 유연하고 여유있는 남근기적 삶을 음미할 수 있어야 될 것이라고 제시한다. 이건희 회장에 대비하여 조영남도 열등감을 가지고 자기의 삶에서 여러가지 것들을 투사하고 있지만, 그는 그 열등감을 뛰어 넘어 자유를 즐기고 있다고 한다. 열등감이란 별거 아닌 지엽적인 것에 발목을 잡혀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다.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열등감을 어떻게 진화와 승화의 기회로 삼느냐 하는 것이다.

정혜신에 의하면 장세동은 전두환이란 보스에 붙어 그에 대한 충성심으로 자기의 입지와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려고 하는 조폭의 졸개에 불과하다. 그리고 장세동은 그러한 자기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이제와서 어찌하느냐고 항변한다. 그대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장세동에게 있어서 정확하고 객관적인 자기 인식 하에 새로운 출발은 불가능한 것인가? 이에 비해 전유성은 행동하는 자유인이다. 그는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지체없이 행동한다. 정혜신은 전유성을 자유의지와 행동에너지가 절묘하게 배합되어 있는 보기드문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꿈과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꿈만 꾸다가 일생을 마치고 만다. 그 소망을 왜 지금 바로 행동에 옮기지 않는가? 여기에서 전유성의 자유성과 폭발성이 나오는 것이다.

정혜신은 이수성과 강준만을 평하면서 인간의 고립과 연대의 심리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분석하고 있다. 인간이 패거리주의나 연고주의를 조성하는 것은 고립에 대한 본능적 공포심을 극복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속에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잠재 심리가 존재하는데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동조성(conformity)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고립과 연대를 분명하게 살펴보기 위해서 정혜신은 이수성과 강준만을 대비시키고 있다. 정혜신은 이수성을 근거리 네트워킹의 대가로, 강준만을 원거리 네트워킹의 대가로 보고 있다. 이수성은 김상현, 김재기와 함께 한국의 '3대 마당발'로 불린다. 이수성의 그늘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통합도 가능하며 나이나 성별의 차이도 의미가 없다. 이수성은 열정과 관심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어왔다. 정혜신은 이수성을 외향적 감각형으로 보고 있으며,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극적인 행동파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최대 약점은 정신적 에너지가 바깥 세상을 향해 있기 때문에 자신만의 생각, 자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빈약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혜신은 이수성에게 그의 외향적 모습과 내면의 화합을 제기하고 있고, 지금껏 소외되어온 그의 내면을 포용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정혜신은 강준만을 내향적 사고형으로 보고 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사고와 언어 방면에 가장 정밀함으로 보이며 아주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며 객관적 비평을 잘한다고 한다. 그래서 강준만은 공정성과 거리두기라는 기본전략을 고수한다. 그리고 그 공정성은 기계적 중립성이라기보다는 아웃사이더나 주류에서 밀려난 사람들, 약자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다. 강준만은 철저히 글을 쓰기 위해 절대고립속에 자신을 가두고 있다. 집단주의에 중독된 사람들이 홀로 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데 반하여, 강준만은 독립과 고립과 고독속에서 그의 색깔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정혜신이 제기하고 있는 것은 '자기가 믿는 바'에 대한 지나친 자기몰입이다. 그래서 정혜신은 박종웅을 '돈키호테형' 소신으로, 유시민을 햄릿형 소신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돈키호테형 소신이란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절대 뒤돌아보지 않고 최면을 걸듯 자기강화를 공고히 하는 믿음이다. 이런 형태의 사람은 저돌적이고 전투적이며 자기중심적이다. 반면 햄릿형 소신이란 공동의 선을 위한 것이라는 소신이 있어도 혹시 그게 나만의 생각은 아닌지 한번쯤 따져보는 '의심'을 동반한 믿음이다. 박종웅은 김영삼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소신으로 삼아 자기본질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이 보여진다. 그러나 유시민은 맹목적으로 신봉하고 주장하는 것을 반대하며 철저한 자유주의자로서 살아가려고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다.

지금의 시대는 변화를 요구한다. 세계 100대 기업 중 한세기 이상 지켜온 기업은 17개에 불과한데, 그 생존과 쇠퇴를 가른 조건은 '자기변혁'이라고 한다. 이에 걸맞게 김윤환은 변화의 천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5공과 6공 그리고 문민정부의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치며 시대에 따라 변화를 해왔다. 그는 자신을 빈배로 표현한다. 그러나 김윤환의 빈배는 무엇이나 주워담는 빈배가 아닌가 생각된다. 정혜신은 김윤환이 확고한 원칙에 따라 변화를 해 간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무난하고 평균적인 것을 추구하고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비해 김윤식은 외견상으로는 답답할 정도로 변화가 없는 삶을 사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글쓰기나 비평작업의 접근방법에서는 놀랄 만큼 다양한 변화를 추구한다. 그는 평론가로서 동시대에 그와 함께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작품을 읽고 평가하는데 성실하다. 얼핏 변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끝없는 변화의 물결이 출렁이는 것이다. 아무리 변화의 시대라지만 일관적인 한가지 변하지 않는 본질은 붙잡고 있어야 한다. 변화가 가능하려면 반드시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봉두완과 이외수는 똑같이 재능이 있는 남자들이다. 봉두완은 66세의 나이임에도 아직까지 정상급의 인기있는 방송인이고, 이외수의 소설은 항상 40-50만부가 고정으로 팔리는 인기있는 작가이다. 그러나 봉두완은 그 재능을 너무 함부로 사용하며, 쉽게 상황에 따라 자기의 입장을 바꾸어나가는 것 같다. 5공의 언론통폐합으로 문을 닫게 되는 TBC의 고별방송을 울먹이며 해놓고, 얼마있지 않아 5공 출발의 역사적인 창당대회의 사회를 맡으면서 "해방 후 이 땅에 생겼다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린 4백여 개의 정당들을 생각하면서 민주정의당의 창당이념만은 영원히 후손들에게 물려줘야겠다는 사명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멘트한 그의 말은 너무 유명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이 주신 재능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정혜신은 봉두완이 흘리는 눈물을 화려한 재능의 눈물로 보고 있고, 이외수의 작업을 피흘리면서 만들어내는 치열한 재능이라고 말한다.

정형근과 마광수는 똑같이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정형근은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5공 6공에서 정보와 고문 전문가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정보통의 폭로 전문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정혜신은 정형근의 이런 활동을 극심한 가난에서 어려웠던 성장기를 벗어나 이제 새로운 위치를 차지한 남자가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고픈 집착심리로 생각한다. 이렇게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고 싶은데 현실에서는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그의 정치적인 모든 활동은 이런 측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광수는 솔직하게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고 표현하는 문학의 자유를 침탈당한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20세기 대한민국의 문화적 후진성과 야만성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다시 일어서는 마광수의 모습을 보고 싶다.

김우중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면서 무에서 유를 이룬 신화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자기가 벌려놓은 그 프로젝트에 의해서 쓰러지고 말았다. 끝없이 팽창해나가는 인간의 욕구와 그 최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우중이 현실을 부정한 몰락의 영웅이라면, 정동영은 현실을 직시하는 고뇌하는 인간의 대표형이라고 할 수 있다. 좌절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좌절하지도 못하는 사람은 그 꿈이 깨져버렸을 때, 어떻게 설 수가 있겠는가?

정혜신은 김종필과 앙드레 김을 직업인이라는 시각에서 관찰하고 있다. 김종필은 그의 막강한 지위와 재력을 바탕으로 역사의 한 축을 긋는 정치적인 업적을 남기지 못하였지만, 앙드레 김은 "패션 오페라"를 만들어낸 패션 휴머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역사는 그가 얼마나 높은 지위와 재력을 가졌는가를 판단하지 않고, 자기의 분야에서 어떤 업적과 족적을 남겼느냐를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혜신은 그의 책의 대미를 이회창 내부에 있는 두 부분을 대비시킴으로 마치고 있다. 칼처럼 냉엄하고 거의 결벽에 가까운 이회창의 이미지는 저울과 같은 판사라는 그의 직업을 통하여 유지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정치인으로 이회창은 그의 이런 두 부분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내부에 숨어있는 이런 두 부분의 그림자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사람의 외부에 나타나는 부정적인 그림자만 가지고 그를 난도질도 하고, 평가하기도 한다. 우리 속에 있는 두 부분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 우리의 건강한 정체성이 확립될 것이다.

(윤종수 life91.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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