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6일, 통일민주운동가 강희남 목사(89)가 전주시 삼천동 자택에서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뉴스앤조이 변하삼

한 평생을 통일과 민중 운동에 바쳤던 강희남 목사(89·기장 전북노회소속)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강 목사가 남긴 유서에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날선 비판이 그대로 드러나 큰 파장이 예상된다.

고 강희남 목사는 지난 6월 6일 전주시 삼천동 자택에서 목을 매 숨졌고 유가족들이 같은 날 오후 7시 30분경 발견했다. 장례는 전북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 중이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초대 의장을 지낸 고 강희남 목사는 이미 지난해 겨울, 12일에 걸쳐 현시국의 암담함을 비통해 하며 단식투쟁을 벌였다. 또 올해 5월에도 9일간 민주주의 후퇴와 대북 경색 국면 등 이명박 정권의 역주행을 비판하며 곡기를 끊었다. 하지만 건강이 극도로 쇠약해지자 지인들과 가족들이 강 목사를 전주예수병원으로 옮겨 7일간 입원해 치료 받았다.

하지만 강 목사는 치료가 끝나기도 전에 퇴원 수속을 밟았고 지난 6일 가족이 자리를 비운 사이 홀로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고 강희남 목사 아내 주정수 사모(61)는 "이미 지난해 단식투쟁을 벌이면서 생에 대한 미련을 버린 것 같았다"면서 "용산참사와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지켜보면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걱정하고 마음 아파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강 목사는 지난 5월 1일 단식을 시작하면서 "이 목숨을 민족의 제단에"라는 붓글씨를 남겼다. 이 글에 자신의 낙관을 남겨 목숨을 던질 것을 미리 예고했다는 것이 주위 설명이다.

▲ 고 강희남 목사가 남긴 유서는 전북대학병원 장례식장에 차린 고인의 빈소에서도 볼 수 있다. ⓒ뉴스앤조이 변하삼

강 목사는 지난 6일 스스로 목을 매기 전 간단한 유서를 붓글씨로 남겼다. '남기는 말'로 시작하는 유서에서 강 목사는 "지금은 민중 주체의 시대"라며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잡을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이에 더해 제2의 6월 민중항쟁을 촉구하면서 "살인마 이명박 대통령을 내치자"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강 목사를 잘 아는 전북지역 기장소속 최갑성·서용운 목사는 "강희남 목사님은 항상 짧지만 해야 할 말만 하셨던 분으로 목사님이 남기신 글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말하면서, 특히 서용운 목사는 "강 목사님은 단식으로 현 시국을 해결할 방법이 없음을 알았고 앞서간 많은 민주열사들을 떠올리며 '살아있기가 부끄럽다'고 말해 이미 마음을 굳히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고 강희남 목사는 범민련 남측본부 초대의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강 목사는 1990년대 통일운동에 매진했던 재야 원로인사로 고 문익환 목사와 함께 범민련을 결성했다. 이후 10년 동안 남측본부 의장을 맡아왔다. 강 목사는 연방제 통일·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외쳐왔다. 2003년 이라크 파병저지·청와대 앞 단식, 2004년 용산 미군부대 앞 반미 집회 주도 등으로 계속 활동했다. 특히 지난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범민련 남측본부 대표단을 이끌고 방북조문을 시도하다 구속된 사건으로 더 알려진 인물이다.

이런 이력으로 장례식장에는 수많은 통일운동가, 진보 인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7일 임재복 범민련 상임의장 등 진보 인사들과 정치권에서는 민주당 천정배 의원을 비롯 무소속 정동영 의원, 이부영·이광철 전 의원 등이 빈소를 찾았다. 교계에서는 강 목사가 소속된 기장 전북지역노회 소속 목사들이 장례식장에 모여들었고 오랜 동지였던 한상렬 목사와 이강실 목사도 장례식장을 지켰다. 이날 한상렬 목사는 심정을 묻는 질문에 "뭐라 할 말이 없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며 비통함을 금치 못했다.

▲ 장례집행위원회는 지난 7일 빈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 강희남 목사 영결식 절차를 설명했다. ⓒ뉴스앤조이 변하삼

현재 지역 목회자들은 장례를 돕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지역집행위원장인 최인규 목사는 기자회견을 열어 장례 절차를 밝혔다. 집행위는 고 강희남 목사 영결식은 '통일·민주사회장'으로 한다면서 오는 9일 입관, 10일 오전 발인, 이후 명동 향린교회에서 영결식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최인규 목사는 "범민련과 진보연대 등이 공동집행위를 구성할 것이며 함께 활동한 지인들과 시민사회단체, 농민단체 등에서 장례위원을 선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고 강희남 목사 죽음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이어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미 유서를 통해 6월 민중항쟁을 독려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살인마'라 칭하며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장례집행위가 영결식과 함께 노제를 준비하고 있어 정부와의 마찰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고 강희남 목사는 슬하에 2남 4녀를 두었다. 자녀들이 밀려드는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변하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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