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신대원 기숙사 생활을 할 무렵, 기숙사에 도둑이 들어 학생들의 수 년째 써온 노트북이며 지갑 같은 것들을 죄다 훔쳐 간 일이 벌어졌다. 신학교여서 그랬겠지만, 워낙 서로 믿는 터라 문단속이 소홀할 때가 많았는데 이렇게 크게 된서리를 맞은 거였다.

당시 노트북을 분실한 어느 학생은 눈물의 호소문을 기숙사 곳곳에 붙여 놓기도 했다.

"노트북은 돌려 주시지 않더라도 제발 그 안에 수 년째 모아둔 자료들은 다시 돌려 주십시오!"

나도 역시 지갑을 통째 잃어버렸데, 그때만 생각하면 씁쓸하다. 오랜 뒤에 도둑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지갑에 들어있던 카드, 주민등록증, 학생증, 운전면허 같은 걸 많은 시간과 품을 들여 힘들게 재발급 받고 난 다음이었다. 그 도둑은 신학교의 허술한 문단속을 훤히 알고 무모하게도 이런 일을 수시로 저질르다 끝내 덜미를 붙잡혔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한 번 크게 당한 뒤로 다시는 지갑을 쓰지 않고 있다. 작은 현금은 호주머니에 그리고 은행카드는 통장과 함께 따로, 신분증은 다이어리 같은 데 넣어 보관한다.

'편리'를 위해 지갑에 중요한 신분증이나 카드같은 것들을 몽땅 넣어 두는 게 보통인데, 카드 하나만 분실해도 된통 당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당사자가 알고서 황급히 분실신고 같은 조처를 취하기 전까지 카드 도둑은 백화점 같은데서 수 천만원어치 물건을 구입해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사라진 뒤일 때가 많다. 이런 일은 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동료를 통해 종종 확인하는 바가 아니던가.

모두 '편리'를 추구하는 현대에 감추어진 어두운 그늘이다. 아내랑 카드분실 사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대안으로 카드로 물건 구입시 비밀번호 같은 걸 적용하도록 하면 이런 엄청난 사고를 일정하게 방지할 수 있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게 아니란다. 그러면, 물건 살 때 시간이 지체되어 한참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을테고 그럴경우 너무 '불편'해서 사람들이 카드를 잘 쓰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편리'와 '속도'의 가치를 그 무엇보다 중시하기에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요즘 세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편리'를 생각해보자. 많은 혜택을 약속하고 신속성을 내세우지만, 일순간의 실수로 가혹한 '불편'을 야기하는 것도 바로 그 알량한 '편리'가 낳는 심각한 문제점이 아니던가? 조금 불편하게 느껴질지 모르나,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느리게 사는 법을 가르치고 배워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한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