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청자아파트 옆 시장안에는 별난 현수막이 하나 걸려 있다. 한 교회에서 무료급식을 실시한다고 알리는 현수막이다. 하지만 무료급식을 한다고 써붙인 교회건물을 보면 오히려 그 교회가 무료급식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예장합동 나눔의교회(이왕욱 목사). 놀랍게도 교인수 30명의 초소형 교회가 무료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지하에 세들어 있는 교회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면 아직 멀었다. 마찬가지로 세들어 있는 3,4층에는 10여명의 정신지체장애인들이 모여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나눔의교회 이왕욱 목사가 운영하는 장애인들을 위한 공동체는 대구에 이곳 말고도 2곳이 더 있고 총 35명의 장애자들이 공동체 이름 밑에 함께 모여 재활을 꿈꾸고 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온다면 입이 떡 벌어질 법도 하지만, 올 41세의 젊은 목사의 사역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중국에 나눔하우스를 건립하고 선교사 4명을 파견하여 단독 후원하고 있다. 아프리카 케냐에는 현지인 교회인 나눔의 교회도 지었다. 도대체 이 목사는 어떤 든든한 후원자나 무슨 재주로 이 같은 일을 감당하고 있을까 궁금해져 온다.

기자가 첫번째로 이 목사를 만난 곳은 실내주거공간 마련을 위한 일일찻집 현장이었다.

“한국에서 장애인시설을 운영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지역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반대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들어 있는 곳에서 언제 이사가야 할 지 모르지만 대식구가 생활하기엔 공간이 너무 부족하다. 일일찻집을 통해 3층 홀에 조립식 칸막이로 몇 개의 방을 추가로 만들 계획이다.”

그랬다. 이 목사는 실로 어렵게 발로, 몸으로 모든 일들을 해결해 나가고 있었으며, 그 일만이 자신의 소명이자, 사역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수많은 교회가 있고 더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지만 이 같이 ‘춥고 배고픈’ 장애인시설에 관심을 두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기에, 적지않은 시간동안 절망과 회의를 가졌을 법한 젊은 목사는 그의 청춘을 모조리 이 사역에 바쳐왔다.

그가 장애인사역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92년부터 우연찮게 장애인시설에 가서 설교를 하게 되면서부터.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에는 합법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돌볼 이가 없는 장애인들을 수용하는 인가시설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시설에 들어가려면 법적으로 고아라야 한다.

하지만 호적에 돌볼 이가 등재되어 있으나 실제로 고아와 마찬가지인 장애인들도 많다. 예를 들면 생활력이 있는 홀어머니 밑에 있는 장애아동의 경우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하지만 혼자서는 생활이 불가능한 아이를 두고 일을 나갈 수 없다. 또 부모가 있어도 그들이 병이나 가출 등으로 아이를 돌볼 수도 경제활동을 할 수가 없는 경우의 장애아들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이왕욱 목사
이 목사가 바라본 아이들이 바로 그러한 ‘인가시설’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의 천진한 얼굴을 보고, 그들의 찢어지게 어려운 현실을 보면서 그의 비전은 굳어져 갔다. 마침내 94년에 나눔공동체를 세우고 그는 이 사역에 그의 젊음과 인생을 바치기로 했다. 처음 4년동안은 쌀이 없어 끼니를 때우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었고, 열악한 환경속에서 하늘의 부름을 받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 목사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더 많은 돈을 들여 치료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기를 수차례. 게다가 자폐아들은 종종 가출을 해 이 목사의 속을 태웠고, 한달에 2, 3번은 가출아동을 찾아 전국을 헤매었다. 한번은 가출 30일만에 경기도 남양주 정신요양원에서 애를 데려 오기도 했다.

동기목사나 주변에서는 “도대체 언제 목회할 거냐”고 물어와 이 길이 자신의 목회이자 사명이라 확신하는 그를 가슴 아프게 했다.

이렇게 매일매일 끼니를 걱정하며 어려운 날들을 보내던 공동체에 98년 마지막 남은 양식이었던 20kg짜리 쌀자루를 도둑맞는 일이 생겼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어려운 시설의 양식을 훔쳐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찌하다 보니 지역 일간지와 방송에 기사화되어 나눔공동체의 어려운 형편이 실렸고 여기저기에서 도움의 손길이 몰려왔다. 심지어 몇몇 사찰의 승려들과 무당들도 이들을 돕기위해 나섰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최소한 양식걱정을 할 일은 없어졌다고 말하는 이 목사는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세심한 다루심의 손길을 체험하게 됐다. 이때부터 이 목사는 자신들도 어렵지만 세상에는 더 어려운 이웃들도 있으며 가난하지만 그들을 도와야 겠다는 생각에 무료급식을 실시해 오고 있다.

이 목사는 최근들어 ‘그룹 홈 사역’을 한국교회가 도입해 줄 것을 요청하고 다닌다. 이는 개체교회가 공간을 마련하고 자원봉사자 1명당 장애인 5명 정도씩 배정해 그들의 재활을 돕고 돌보도록 하는 프로그램으로 교회의 특성에 따라 외국인노동자들을 돌보는 것도 고려할 수도 있다.

“교인 30명의 우리교회도 30여명의 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다. 수백명의 교인을 둔 교회들은 훨씬 더 효과적이고 힘있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는 우리 교회들의 몫이 아닌가. 해외선교에 쏟는 관심을 조금만이라도 이곳으로 돌려줄 수 없는가. 균형을 맞추라는 이야기다. 왜 우리사회의 아픔은 외면하고 해외에만 눈을 돌리려고 하는지 정말 안타까울 따름이다.”

두번째로 상인동에서 만난 그는 그의 표현대로 ‘한국교회의 시각으로는 실패한 목회자’이다. 10년동안 목회해 겨우 30명의 교인이 있는 교회를 목회한다. 게다가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거나 신체가 부자유한 ‘혹덩이’ 35명을 달고 있다. 게다가 이웃을 위해 자신의 신장까지 이식해 준 후 그는 자의적 장애인이 됐다.

그의 사역 10여년 동안 자의보다 타의에 의해서 이사를 23번 했다. 아직도 자기 건물은 꿈도 못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그 누구보다 그는 성공한 목회자요, 그는 위대한 목사다.

“장애인시설은 교외로 가라고? 아니다. 장애인들일수록 병원이나 목욕탕 등 근린생활시설에 가까이 있어야 한다. 최근의 어려운 경제 탓으로 후원의 손길이 줄어져 간다. 이제는 한국교회의 몫이다. 그룹홈 사역은 한국교회가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길이다.”

다음은 나눔공동체안에 게시된 내용이다.
천국을 미리 맛보는 공동체

1.우리는 한 형제입니다.
2.우리는 편견을 가지지 않습니다.
3.우리는 가난하게 살겠습니다.


나눔공동체 연락처 053-642-0101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