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그러니까 2년 전에 김희자 교수(총신대 종교교육)가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보수 교단 예장합동에 소속된, 그러니까 이 교단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는 교회 중 하나로 꼽히는 ㅅ교회의 주일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경에 대한 반응을 조사한 일이 있다.

이 조사 결과에 의하면 성경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이 전체 응답자의 39%로 나타났으며, 성경 읽기를 좋아한다고 응답한 나머지 61% 학생들 가운데서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성경이 주는 내용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니까(56%), 부모님과 목사님이 읽으라고 하니까(10%) 읽기를 좋아한다고 응답했다.

또 읽기를 싫어하는 학생들의 경우 읽기가 어려워서(27%), 무슨 뜻인지 몰라서(22%), 재미가 없어서(25%) 등의 순으로 이유를 밝혔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어린이들이 성경에 대해 어릴 때부터 갖게 될 부정적인 인상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성경은 알 수 없는 말로 가득하며,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를 뿐 아니라 재미도 없다는 것. 게다가 읽더라도 그것은 단지 부모나 목사님의 강요 때문에 억지로 읽을 뿐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다.

궁창·생육·육정…"무슨 말인지 몰라요"

그러니 성경 공부를 스스로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문제다. 김희자 교수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4%가 스스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무슨 뜻인지 몰라서(72%), 읽기 어려워서(28%) 그렇다는 것이다. 결국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적합한, 그러니까 읽기 쉽고 내용이 명확히 이해되는 성경이 없다는 것이다. 각 세대에 적합한 성경 번역이 안될 경우 앞으로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 참담한 미래상이 불을 보듯 훤한 것이다. 한국 교회의 성경번역 작업이 지연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어린이와 청소년들 나아가 학력 수준이 낮은 사람들에게 떠넘겨지고 있는 셈이다.

어른들도 성경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단어나 문체까지 ‘고서’에 가까운 수준이라면 어린이들이야 말할 나위가 없다. 실제로 이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손삼권 교수(전주대·<기독교사상> 주간)가 개역성경의 창세기 1장과 요한복음 1장에 대한 인식도를 어린이들(초등학교 3∼5학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구절 대부분을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궁창이니, 과목이니, 생육이니, 혈통이니, 육정이니 하는 말에 대해서는 상당수의 어린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이런 단어들에 대한 이해 없이 본문을 읽기란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고 보면 어린이들이 신구약의 중요한 성경들에 대해 시작부터 단어 이해가 막히고 그러다가 성경을 읽는 것이 따분해지기 마련이다.

▲서점에서 성경책을 고르고 있는 어린이 ⓒ뉴스앤조이 신철민

이 때문에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교육 현장에서 개역성경을 기피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기장이나 감리교 등 비교적 진보적인 신학이 용인되는 교단에 소속한 교회 가운데는 <표준새번역성경>을 교육 현장뿐 아니라 어른들의 예배에서도 사용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으며, 일부 보수적인 교단에 소속된 교회의 경우에도 교육 현장에서의 <표준새번역성경> 사용을 허락한 교단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교단의 교회들 가운데서도 상당수가 <현대인의 성경> 등을 함께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 교육에 대해 다양한 사례들을 발표해 주목받고 있는 조성민 목사(대전 새로남교회 교육목사·예장합동)의 경우, 난해한 개역성경을 사용하는 데 따른 어려움이 현장에서 늘 부딪치는 문제가 되었다.

“지금은 개역성경을 다시 쓴다. 2년 동안 <현대인의 성경>을 사용했는데 학부모들이 새로운 성경을 구입하는 번거로움도 있고, 이런 저런 사정들(구체적인 사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강단에서 용인되지 않은 성경을 사용하는데 따른 부담이 큰 것이 그가 소속한 교단의 현실이다) 때문에 다시 개역성경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목사인 나도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 있는데 어린이들이 무슨 수로 그걸 이해하겠는가. 그래서 교사들이 성경을 읽어주고 단어를 다시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교육한다."

물론 유아들을 위한 이야기 방식의 성경들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오고 있지만 번역의 조악함이나 완역이 아니라는 점 등으로 인해 관심 밖으로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반해 미국 교회의 경우 어린이들도 읽을 수 있는 다양한 버전의 성경들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강단에서 현대어로 된 성경조차 들을 수 없는 처지는 아니다.

특히 1986년 성경 전체를 어린이용으로 완역한 ICB(International Children's Bible)의 경우 '고도의 자격을 갖춘 학자들과 번역가들이 한 팀을 이루어 원어 사본에 충실하게 작업'(ICB서문)한 첫 성경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김희자 교수는 이 성경이 가진 장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ICB는 독자인 어린이들의 발달 단계를 고려해 짧고 복잡하지 않은 문장과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자연스러운 용어를 사용했으며, 어려운 단어들과 고대 관습에는 주를 달았으며, 함축적인 의미가 있는 용어는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수사학적 질문을 서술체로 바꾸었다. 또 은유의 경우 이미지는 가능한 보존하되 오해하지 않도록 번역하고 관용적 표현은 현대적 용어로 대체했다. 또 총천연색 지도를 첨가하고 주제를 머리말에 적어 본문 이해를 돕고 색인과 주도 첨가했다."

국제성서공회의 경우 어린이 독자들을 위해 만화 성경도 꾸준히 제작하고 있다. 성경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만화 성경은 10년 동안 겨우 9권을 제작하는데 그쳤을 정도로 제작에 상당한 신중을 기하고 있다. 등장 인물의 표정이나 배경 소품들 하나 하나까지 고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나온 성경들은 모두 어려운 성경에 접하기에는 어린 독자들에게 먼저 효과적으로 읽히고 있으며 이런 과정 때문에 어려서부터 성경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지닐 수 있다고 평가된다.

대한성서공회, 2003년께 어린이용 성경 출간 계획

이에 따라 대한성서공회에서도 2003년께 어린이용 성경을 내놓을 방침이다. 성서공회 민영진 부총무는 어린이 성경 번역과 관련해 몇 가지 기준들이 제시되고 있음을 비쳤다. 삽화의 수록 여부에서부터 완역할 것인지 아니면 부분을 발췌해 이야기 식으로 엮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이 성경의 경우 <표준새번역성경> 개정판이 나오면 이를 토대로 재 번역에 들어갈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렇게 번역이 되더라도 이를 한국 교회에 보급하기에는 역시 많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보여 결국 이런 혜택들로부터 소외된 채 개역성경에 매달려야 할 피해자(?)들은 여전히 남게 될 전망이다. 이것은 복음 전도를 지상 명령으로 가르치는 교회와 지도자들이 자칫 복음 이후의 문제인 신학 문제로 인해 복음의 보고인 성경을 전하고 보급하는 일을 막게 됨으로써 그들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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