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국내 최대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은 최근 <개역성경 개정판>이 "신학적문제"
가 있으며 "이 성경을 사용할 경우 영적 혼란을 초래한다"고 발표했다. 성서공회는 물론
<개정판>을 사용하고 있는 여러 교단들에 향해 일종의 <신학적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대한성서공회(총무:김호용)가 10년 동안 정성을 기울인 <개역전서 개정판(이하 개정판)>이 신학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한국교회 전체에 초비상이 걸릴만한 일이다.  

국내 최대 교단이자 보수교단의 대표격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장:예종탁 목사)은 10월 17일 <개정판>이 "신학적 문제"가 있으며 "이 성경을 사용할 경우 영적 혼란을 초래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성서공회는 물론 <개정판>을 사용하고 있는 여러 교단들에 향해 일종의 <신학적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도대체 <개정판>에 어떤 문제가 있기에 예장합동은 영적혼란을 초래할 정도로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서슴없이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예장합동이 발표한 공고 내용엔 단지 창세기 15장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중 '의'를 '공의'로 바꾼 것이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내용만 지적하고 있다. 즉 '의'와 '공의'는 신학적 차이가 많다는 것.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신학자들의 견해가 뚜렷하게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성서공회 민영진 부총무는 "국어사전적 의미 외에는 그렇게 심각한 신학적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고 "<개정판> 위원들과 다시 모여 합동측이 주장하는 것에 대해 논의를 거쳐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다.

▲김호용 총무 ⓒ뉴스앤조이 신철민
성서공회 김호용 총무도 예장합동측의 견해에 대해 "<개정판>은 가급적 많이 고치지 않고 오역이나 구어 문법적으로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는 수준에서 작업을 했다"고 말하고 "<개정판>은 말 그대로 새로운 번역이 아니라 개정차원에 머무는 것이므로 신학적인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신학적 문제가 <개정판>에서 발생했다면 새로운 것이라기 보다는 원래의 개역성경 자체가 갖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성서공회측은 예장합동측의 돌발적 주장에 대해 마지못해 하면서도, 교단의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합동측이 구체적인 수정제기를 해올 경우 다시 개정위원회를 소집해 검토에 나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예장합동 교단신학교 총신대의 서철원 교수(조직신학)는 "성서공회가 '의'를 '공의'로 번역한 것은 성경과 신학을 모르고서 한 번역이다"며 성서공회의 정체성까지 문제삼고 나서고 있어 상호간 공감대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쳐야 될 것으로 보인다.  

서 교수가 계간지 <신학지남> 가을호에서 지적한 내용을 살펴보자.

"히브리어 '츠데카'는 공의가 아니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의를 말한다. 그러므로 공의로 번역한 것은 전적으로 잘못되었고 성경과 신학을 모르고서 한 번역이다. 공의를 의의 자리에 넣을 수 없다. 공의는 하나님의 선악심판에 적용되는 용어다"

서 교수는 <신학지남>을 통해 <개정판> 창세기 전체에서 모두 173곳이 잘못되었거나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서 교수는 결론적으로 △개정판은 성경원문에 의존해서 개정한 것이 아니라 한글판에서 글자만 바꾸되 임의로 선별하여 조악하게 만들었다 △새로 번역한 경우는 다 최근 현대판 번역들에 의존하여 번역하였다 △성경의 근본의미를 완전히 변경하는 번역들도 있다 △성경본분과 떨어진 수정들을 하였고 조악하게 만들었으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정했다.  

▲서철원 교수 ⓒ뉴스앤조이 신철민
서 교수의 견해만 놓고 본다면 <개정판>은 성경으로서 적어도 제대로 구실을 할 수 없는 성경이 되고 만다.

그러나 98년부터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개정판>은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기독교대한침례교회 등 한국 교회 유수의 교단들에서 공식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예장합동측의 논리대로라면 이들 교단들은 영적혼란을 초래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성경을 사용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다른 교단의 입장에서 볼 경우, 별 문제없이 채택한 성경을 굳이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합동측을 향해 혹시 남모를 저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길을 보낼 만한 상황이다.

즉 뒤늦게 예장합동이 <개정판>의 신학적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한편으론 자 교단의 신학적 교리의 폐쇄성 혹은 성서공회에 대한 해묵은 선입관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예장합동이 <개정판> 작업에 자 교단 인사가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교단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는 부분이다. 성서공회는 1993년 8월부터 각 교단에 성서학자 신학자 목회자 국어학자들로 구성된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 개정 감수위원회'를 조직했고, 당연히 예장합동측에도 위원을 보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예장합동은 두 차례 요청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95년 11월 13일 당시 총회장인 정석홍 목사의 명의의 정식 공문을 통해 전 총신대학원장 배재민 목사를 표준새번역 개정위원회 위원 및 개역성경 감수위원회 위원으로 추천한다는 공문을 보낸바 있다.

결국 예장합동측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무시하고 자 교단 신학자들이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고 생때를 쓰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예장합동 예종탁 총회장과 최기채 위원장(개역개정판성경대책위원회) 등은 지난 8월 28일 서울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성서공회 관계자들과 회동한 자리에서 성서공회 김호용 총무로부터 배재민 목사 추천 공문을 제시받았음에도 10월 17일 버젓이 자교단 신학자가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예장합동은 가장 신성해야할 성경문제에 있어서 이렇듯 무리한 주장을 교단의 공론으로 정면에 내세우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 교단의 폐쇄성과 함께 허구섞인 주장을 늘어놔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문제가 되고 있는 개역전서 개정판
ⓒ뉴스앤조이 신철민
결국 <개정판>과 관련된 예장합동측의 움직임은 성서공회에 대한 해묵은 선입관이 작용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관측이 유력하다. 실제로 예장합동측은 1992년 <표준새번역성경(이하 새번역)>이 출간된 이후 성서공회를 진보적 색체의 신학자들의 집합체처럼 여기고 있다.

예장합동측에선 성서공회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진보색체로 차 있기 때문에 <새번역>과 같은 진보적 성격의 성경이 발간된 것은 물론 <개정판>역시 보수교단에서 받아드릴 수 없을 만한 문제점은 포함한채 제작되었다고 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서철원 교수는 예장합동측 내의 이런 시각을 그대로 대표하는 인사다. 서 교수는 "보수 신학자라도 그 분위기에 들어가면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서 교수가 말하는 그 분위기란 예장합동측에서 주장하는 '진보적 색채'를 뜻한다.

또 서 교수는 "성서공회가 주도하지 않는 새로운 성경번역 작업이 진행될 필요는 있다"고까지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과연 서 교수의 말대로 예장합동측은 성서공회가 아닌 독자적 혹은 제3의 세력과 연대해 새로운 성경 번역 작업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일단 예장합동측은 이런 의문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예장합동 총무 이재영 목사는 "교단차원에서 새로운 성경번역을 시도할 계획은 전혀 없다"고 말하고 "이번에 <개정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은 조금 미비한 점이 있으니 손질해 달라는 의미다"며 "확대 해석하지 말아 달라"고 설명했다.  

이 총무는 또 "완벽한 성경번역 그리고 모두가 만족하는 성경번역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며 "우리 신학자들도 <개정판>에 대해 서로 견해가 틀린 것을 보면서 성경번역의 어려움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이재영 총무와 기타 교단 인사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예장합동이 <개정판> 사용 거부 결정을 틈타 새로운 성경번역을 시도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서 교수의 뜻에 동조하는 교단 내 분위기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기도 힘들다.  

특히 <새번역> 파문때 예장개혁과 예장고려 등 교단이 결성한 <한국성경공회>는 예장합동이 이런 시기를 틈타 성경공회에 합류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성경공회 한 관계자가 "예장합동 가입을 유도하는 것이 우리들의 최대 과제다"고 말할 정도다.

▲대한성서공회 ⓒ뉴스앤조이 신철민

성경공회는 92년 <새번역>에 대응하는 새로운 성경을 졸속으로 제작하고 특정 출판사가 깊게 개입돼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주춤한 이후 히브리어 원문 성경번역을 시도하고 있으며 최근 구약은 약 80% 신약은 100% 초역을 마친 상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경공회는 제작한 성경은 2003년말 선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만약 이 성경이 나온 다면 예장개혁과 고려 예장합신 및 보수 성향의 군소교단 몇 곳 혹은 예장고신까지 이 성경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돼 적어도 3000교회 정도가 이 성경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성경공회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는 예장합동이 성서공회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개정판>의 신학적 문제점을 내세우며 새롭게 성경공회를 주도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의 <강단용 성경>을 아름다운 전통으로 갖고 있는 한국교회에서 뚜렷한 명분없이 또 하나의 <강단용 성경> 제작되는 것도 그렇게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성서공회 김호용 총무는 "하나의 성경을 사용하는 것이 단점 보다 장점이 많다"고 전제하고 "거대한 재원과 인력이 투입되는 성경번역 사업이 교단연합으로 추진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밝히고 있다.

▲교보문고 종교서적 코너에서 성경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 ⓒ뉴스앤조이 신철민

즉 다양한 성경번역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공식 <강단용 성경>의 경우는 한국교회 전체가 참여하는 논의구조 속에서 번역작업과 개정작업이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 옳다는 견해다. 예장합동 이재영 총무의 견해도 김호용 총무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양측이 성경 발간에 따른 잇권과 자존심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면 양측은 관계는 <개정판>사건을 계기로 훨씬 우호적으로 전환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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