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같이 살자고 해도 끝내 뿌리치고 가시더니만 다시 오시다. 지난 오월 초순경 한 참 따뜻해 질 즈음 컴컴한 방안에서 대낮에 텔리비전만 보기 지루해 돌아다니다가 술 한잔을 얻어먹고 이내 발동이 걸려 못 참겠었는지 "난 안돼요"라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배낭에 짐을 챙겨 막무가내로 떠나시더니 예고도 없이 다시 오시다.

함께 살아보려고 20년 전에 말소된 주민등록을 동사무소 찾아가 원적지에 연락하여 가까스로 살려내고, 의료보험을 만들어 속이 아파 소다만 먹던 분을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하고 약을 먹여 이제 막 위가 좀 회복되려던 참에 훌쩍 떠나버렸을 땐 담당 의사도 매우 안타까워하며 염려하지 않았던가.  

이분이 떠나고 약 한 달쯤 됐을까 집사람이 운전하며 가다가 길에서 배낭을 짊어지고 가는 걸 발견했다고 핸드폰으로 연락이 오다. 따라가 다시 오라고 해 볼까 묻기에 그러라고 했더니 한 참 후 다시 핸드폰이 오는데 따라잡지 못하고 놓쳤다나. 배낭을 짊어지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모습을 교회 아이들도 보고 집사님들도 볼 때마다 다시 오라고 권유했으나 마다고 하던 분이, 겨울새가 겨울을 나기 위해 찾아오듯이 다시 오셨구나. 누구에게 감정이 있어 떠난 게 아니요 제 자신이 술버릇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원망하며 술이 오라는 곳을 향해 정신 없이 떠난 이가 살을 에이는 겨울 찬바람 피할 길 없어 다시 오셨나 보다.

수요일 저녁예배 시간 중간쯤 되어 누가 문을 삐걱 열고 눈치를 보며 들어오기에 자세히 보니 U아저씨다. 들어오자마자 설교 도중이지만 모두 기다렸다는 듯 박수로 환영하고 집회를 마친 후 빵과 커피를 대접하며 모두 반가이 맞이하다. 젊은 교우들이 그분의 잠자리를 보아주어야 한다기에 내가 대신 차량운행을 하고 다시 교회에 왔더니 그 때까지 모두 가지 않고 라면을 삶아 파티를 벌인다. 남자 집사님들이 U아저씨 드시라고 라면을 한 박스 사다 놓고 부인들은 삶아서 대접하느라고 밤이 깊어 가는 데도 라면파티로 신들이 나다.

그 다음날 아침, 몸에서 냄새나면 교인들이 싫어 할까봐 제일 먼저 목욕탕에 모시고 가 목욕을 시켜드리다. 5월에 헤어지고 약 6개월만에 다시 만나니 제대로 목욕 한 번 못해봤을 거다. 때가 얼마나 많을까하여 등을 밀어 주는데 생각보다 때가 없다. 행려자 치곤 원래 깨끗한 분이라 틈틈이 강가에 가 목욕을 했는가 보다. 작년 12월 중순경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부는 겨울 호암지 양지바른 곳에서 햇볕을 쬐다 나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분은 양말과 옷가지를 말리고 있었지. 추운데 어디서 빨래를 하며 몸은 어떻게 씻느냐고 물으니 햇볕이 날 때 탄금대 물에서 빨래를 하고 목욕도 한다나. 그날도 탄금대에서 머리를 감고 양말을 빨고 난 후 호암지 와서 말리는 중이라나. 탄금대에서 호암지까지 승용차로 약 15분 정도 걸릴 거리며 어른 걸음으로 걸어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양지바른 곳을 찾다가 그곳까지 와 햇볕을 쬐고 있던 중에 나를 만난 거다.

조그마한 동네 목욕탕에 그것도 아침나절에 갔더니 우리 둘만 있어 분위기가 어색하여 이 얘기 저 얘기 물어보다.

   "그래 그동안 어디 갔었어요?"
   "여기 저기 다 돌아 다녔어요, 대전도 가고 부산도 가고 전주도 가고 다 돌아 다녔어요, 안 다니는 데가 어디 있나요"
   "S시에도 갔어요?"
   "S시에는 안 갔어요"
   "왜 S시에는 안 갔어요?"
   "S시는 인심이 더러워요, 우리 같은 사람 가면 금방 집어넣어요, 그래서 안가요"
   "아 그렇군요, 아마 S시는 외국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행려인들이 남루한 모습으로 길을 다니면 보기가 흉할까봐 그러는가 보죠, 그럼 J시나 P시는 어때요?"
,font color=navy>   "J시는 인심 좋아요"

   "뭐가 그리 인심 좋아요?"
   "어물전에 가서 새우젓 좀 달라고 하니까 한사발을 주더라고요, 아주 인심 좋아요, 그런데 바로 산 너머 K도는 아주 인심이 험악해요"

S시는 거리질서를 위해 행락객을 수용소에 잡아넣는다고 인심 고약한 곳이라 하고, J시는 소금을 한사발 주었다고 인심이 좋다하며 그리고 별다른 설명 없이 K도는 험악하다는 그의 판단이 얼마나 정당성이 있겠냐 마는 그가 조선 팔도 거렁뱅이로 걸어다니며 느낀 자신의 세상경험을 말한 것뿐이니 따질 필요가 없겠다.

강원도 시골 두메산골에서 빈농의 자녀로 태어나 두 살 때 어머니를 사별하고 또 세 살 때 아버지를 사별하였다는 이분은 사촌도 없어 육촌네 집에서 눈칫밥 얻어먹으며 지내다 나이 들어 어느 날 아파트 공사판에 나가 막노동하다 고층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치고 나서부터는 남의 일도 할 수 없어 행려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그의 과거 인생사를 들으면 눈물 없이는 들을 수가 없다. 똑같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어떤 이는 부모 잘 만나 호강하며 잘살고 어떤 이는 기구한 운명 속에 빠져 고생만 하다가 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불공평한 인생이 아닐 수 없구나.
  
지난 겨울은 몹시도 추웠지 않았던가. 충주역 뒤편 넓게 펼쳐진 들판 주변에 쓸쓸히 나뒹굴어 있는 차가운 시멘트 노깡속에서 겨울바람을 피하며 지내고 있다는 그가 지난 겨울동안 계속 그곳에서 보냈더라면 아마 언 동태처럼 시체로 변했을 거다. 운 좋게도 우리 교우들의 따듯한 보살핌으로 교회 주방에서 겨울을 잘 지내셨지. 생일날엔 특별히 K집사 가정에서 쇠고기 미역국을 끓여다 드렸으며, 그리고 수시로 여선교회에서 선물도 드리고, 어떤 이는 내의 양말 등을 사다 드리고, 어떤 이는 안 입는 겨울잠바를 갖다 드리고 어떤 이는 쌀도 팔아 드려 지난 겨울을 춥지 않게 잘 보내지 않았는가. 그러한 성도들의 사랑으로 약 6개월 동안은 술 한 모금 안 마시고 잘 버티더니만 어느 봄날 한잔 한 것이 다시 발동이 걸려 행려자요 술 중독자의 길을 다시 걷다가, 가을이 한창 깊어 가는 지금 몸서리치게 추워질 겨울의 혹한을 두려워하여 다시 보금자리를 찾아 온 게 아닐까.

그리워 다시 찾아 온 이를 어찌 박대할 수 있으랴. 그 나이에 결혼도 못하여 부인도 없고 자식도 없으며 친척도 부모도 없고 허리가 약하고 위가 시원찮아 노동 품팔이도 할 수 없으니 얻어먹을 수밖엔 없었으며 추운 밤을 남의 집 처마 밑에서 혹은 쓰러진 건물더미 밑에서 그것도 매일 눈치보며 장소를 바꿔 지내자니 외로움과 한기를 면하기 위해 한 잔 술이 필요하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한 잔 두 잔 먹다보니 어느 듯 중독자가 되어 이제 술 없이는 하루도 견딜 수 없는 신세가 되었는데 교회라는 이름 때문에 어찌 그를 외면할 수 있으랴. 교회조차 그를 박대해버리면 누가 그를 고운 눈으로 맞아줄 것인가.

"이제 술을 먹어도 좋으니 다른데 갈 생각하지 마시고 추운 겨울 여기서 맘 편안하게 잘 지내세요. 교회이니 만큼 대낮에는 먹지 않도록 노력하시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먹도록 노력해 보세요, 그리고 하나님께 맡기고 끊으려고 노력해 보세요"

   "성도님들도 이제 저분이 편한 대로 살도록 해 주십시다. 자유로운 생활을 하기 위하여 떠나고 싶어하면 언제나 잘 가시게 내버려두고, 있고 싶으면 얼마든지 있도록 해 줍시다. 저분이 우리의 방식대로 살도록 강요하지 말고 저분의 방식대로 살도록 내버려두고 우리는 하나님께 저분의 영혼을 위해 기도합시다. 사랑은 내 방식을 강요하는 게 아니요 상대편이 하고싶은 대로하는 게 아닙니까. 한평생 거지의 몸으로 방랑자의 모습으로 살아 온 분을 방에 가둬 두고 한 곳에만 머물러 살라는 것도 감옥살이가 아니겠습니까"

등을 밀어주다 보니 이렇게 수요일 밤 성도들에게 이야기하던 것이 생각나는구나.  

목욕을 하였으니 이제 점심을 먹을 차례다. 교회 가까운 청국장 집으로 데리고 가다. 사실 나보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고 겉보기로는 내가 더 들어 보이니 데리고 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게다. 청국장을 먹으며 또 이런 저런 이야기.

   "그래 그동안 식사는 어떻게 하였어요"
   "주로 라면을 먹었어요"
   "라면만 먹고 지내다니 다른 건 안 먹고 라면만 먹었단 말이요?"
   "술도 같이 먹었어요"
   "돈이 없을 텐데 술은 어떻게 먹었어요"
   "얻어서 사먹었어요, 병원 같은 데 가면 한 2천원 정도 줘요.
   그리고 청주에 있을 때는 모 교회에 가면 매주 화요일마다 노인들에게 점심을 줘서 거기서 얻어먹었고, 또 천주교회 장례예식장에 가면 밥과 술을 먹을 수 있어요"

   "라면은 어떻게 끓여 먹어요?  버너와 그릇을 배낭에 넣고 다니며 끊여 먹는 겁니까?"
   "그냥 맹물에 라면을 넣었다가 먹으면 돼요, 라면이 원래 다 끓여서 만든 거잖아요"
   "맹물에 라면을 넣어 먹다니 이해가 잘 안되네요"
   "한 삼십분 정도 라면과 스프를 물에 담가 놓으면 삶은 것처럼 됩니다. 그렇게 한 다음 국물은 먹기 싫으면 버리면 돼요"
   "허긴 그렇겠군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점심을 다 먹다.

이젠 이발하러 갈 차례다. 오늘은 이분을 위해 모든 일정을 미뤄 놨으니 염려 없다.

J성도네 미용실에 가서 이발을 시켜 주고 같이 걸어오며

   "그동안 머리는 어떻게 깎았어요? 동료들끼리 서로 잘라 줍니까?"
   "아니요, 혼자 깎습니다, 난 혼자 다녀요, 같이 다니면 함께 몰매 맞는 수가 있어요"
   "어떻게 혼자 깎지요?"
   "가위만 있으면 혼자 거울을 보며 실컷 깎습니다"  

그래서인지 처음 만났을 때도 행려자 치곤 첫인상이 제법 깨끗해 보여 흉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이렇게 해서 그 날은 U아저씨와 하루를 보내고 오늘은 목도에 볼일이 있어 가는 데 같이 가다. 혼자 교회 있으면 심심할 테니 같이 가면 바람도 쏘이고 좋지 않을까 하여 함께 가다. 일거리라도 주면 더 떳떳한 모습으로 따라 나설 것 같아 가는 김에 갈대라도 꺾어다 가을 냄새라도 좀 풍겨 보려고 전지가위를 손에 들리다.

역시 시골의 가을 풍경은 마음을 설레게 하다. 황금 물결치는 들을 지나고 산 사이로 난 꼬불꼬불한 산길을 지나며 막 물들어 가는 오색단풍을 보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오다. 갈대와 국화꽃 등은 잘라 줘야 이듬해 더 잘 자란다 했던가?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갈대를 자르고 들국화 꽃을 꺾고 또 이름 모를 나무의 단풍든 가지를 곁 드려 가져와 꽃꽂이를 해 놓으니 모양보다도 향기가 참으로 그윽하구나.

겨울 찬바람과 여름 더위 속에서 모질게 자라 핀 꽃이라 그런가 향기가 참으로 꾸밈없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진하구나. 무엇보다도 요번 교회의 제단 장식은 U아저씨가 꺾어온 들꽃과 갈대로 손수 장식을 하였다는데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하니 부끄러운 듯 만족하는 듯 오랜만에 환한 미소를 짓다. 들국화 향기를 가득 담아 제단에 올려놓은 이분이 이제 돌아오는 주일 교우들을 만날 땐 전보다 더 자신 있는 모습으로 대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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