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땅

먼 길이었다. 비행기를 탄 10시간의 거리야 몇 번의 잠과 식사와 약간의 독서, 그러니 프랑크푸르트였다. 며칠 밀렸던 잠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아쉬운 이별, 사랑하는 사람을 등지는 일은 서로에게 쉽지 않았다. 언젠가는 겪을 일이라며 마음을 가볍게 해보지만 생각보다 마음의 고통은 컸다. 가장 편하고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설고 어색한 곳을 찾는 마음의 거리, 먼 길이었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이 비행기 안에서 떠올랐다. '뒤'에 해당하는 것은 시간만이 아니라 감정도 마찬가지리라. 고마운 기억으로, 즐거웠던 시간으로, 풍요로운 자양분으로 이젠 마음에 묻어야 한다.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더 이상 지난 시간이나 감정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새로운 쟁기를 잡았으니 다시 앞을 바라보아야 한다. 많은 생각이 지나가는, 먼 길이었다. 다시 새로운 땅이다.

천진함

프랑크푸르트 공항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내 삶의 특별한 시간엔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린다. 내 시간을 같이 기억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로 여기는 천진함을 끝내 버리고 싶지 않은 내게는 비가 반가웠다. 꽃다발을 들고 마중을 나온 교우들과 함께 주님께서 나를 맞아주시는 즐거움과 편안함을 비를 통해 누린다. 이 계절, 흔하게 내리는 비라고 해도 내게는 여전히 주님의 손길이었다.

화롯불의 불씨

유병호 장로님 댁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교우들이 한 가지씩 반찬을 준비하여 상을 차렸는데, 놀랍게도 반찬의 대부분이 낯설지 않은 것들이었다. 김치와 오이 장아찌, 마늘장아찌, 녹두 부침개, 무국, 거기에 비지 찌개까지 있었다. 시골에서 보는 잔칫상의 모습 그대로였다.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식탁, 고마웠다. 한국 시골에서 목회를 하다 오는 목사를 위하여 토속적인 음식으로 준비해 주다니, 그 배려가 따뜻했다. 늦도록 많은 이야기들을 했다. 여러 가지 마음 고생이 많았을 터면서도 교우들이 밝은 웃음을 잃지 않은 것이 감사했다. 화롯불의 불씨가 아주 꺼지지 않았다면 다시 살려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은 일, 밝은 웃음이 좋은 기대를 갖게 한다.

순명의 삶을 살게 하소서

늦은 시간 교회를 찾았다. 목사가 불편할까 보아 숙소로 호텔을 알아보았다지만 예배당 지하에 있는 방을 쓰기로 했다. 어려운 시작을 하며 나누어야 할 어려움이나 불편이 있다면 기꺼이 나눠야지, 당연하게 생각하기로 한다. 편한 호텔에 있으면서 마음이 불편한 것보다는 조금 불편한 곳에 있더라도 마음이 편한 것이 더 낫고 당연하리라.

예배당에 들어서고 불이 켜졌을 때 '아!, 이 곳이 주님이 부르신 곳이구나' 싶었다. 아름답고 조용하며 경건함이 흐르는 예배당, 크지도 작지도 않아 마음을 드리기에 알맞은 곳, 이 곳이 주님이 맡기시는 제단이구나 싶었다. 긴 나무 의자에 앉아 기도를 드리다. 순명의 삶을 살게 하소서, 마음을 바치다.

고마운 사랑

시차 때문인지 자다 깨어보니 새벽 4시였다. 약간의 한기를 느끼지만 다시 잠을 청한 뒤 눈을 뜨니 아침 6시, 일어나 씻고 책상에 앉아 성경을 펼친다.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리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기 위한 말씀 이전, 오직 나 자신을 향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리라. 그런 면에서 독일 생활은 무엇보다 내 영적인 생활에 유익이 되리라 여겨진다. 홀로, 절박함으로 읽는 말씀, 마른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예배당으로 올라가 기도를 드린다. 드릴 기도가 많아서일까, 기도가 마구 엉긴다. 아직 정돈되지 않은 마음, 그 마음 주께서 아시리라. 머잖아 정갈한 마음 선물로 주시리라. 가장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주의 이름 부르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바치게 되리라.

기도를 드린 뒤 교우 몇 분과 함께 예배당 부속 시설인 교제실에서 아침 식탁을 대한다. 당분간 혼자 있게 될 목사를 위한 교우들의 마음과 배려가 따뜻하다. 교우들은 냉장고에 여러 가지 음식과 반찬을 넣어주기도 하였다. 고마운 사랑을 고맙게 받기로 한다.

예배를 기다리는 즐거움

주일 아침, 늘 그랬던 대로 눈을 뜨니 새벽 4시였다. 다시 눈을 붙여야지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 때문이었다. 첫 예배에 대한 설렘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예배를 기다리며 이렇게 설레는 마음을 가져본 것이 언제였던가 싶었다. 소풍날 새벽같이 깨어 더디 밝는 아침해를 힘들어하는 한 아이처럼, 내 마음이 꼭 그랬다.

책상에 앉아 말씀을 보며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예배를 기다리는 설레는 즐거움, 이런 마음 잃지 말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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