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로서 나는 한 주제에 대해 한 번에 수개월 동안 연구하고 명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곤 한다. 내가 가장 최근에 다룬 주제는 모든 주제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주제, 즉 예수님이었다. 나는 교회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우리 가족들의 이름을 외우면서부터 그분의 이름을 배웠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에 나는 정말 그분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던가? 어린 시절 그분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인상 중 더 강해진 것은 어떤 것이고 뒤집힌 것은 어떤 것인가? 「내가 알지 못했던 예수」라는 책을 쓰는 과정에서 알게된 사실들을 되새기면서 나는 ‘10대’ 목록을 만들어 보았다. 이러한 형식이 불경스러워 보인다면 용서를 바란다. 데이비드 레터먼(미국의 토크쇼 진행자) 식으로 10위부터 내려가겠다.

10. 예수님은 유대인이셨다

물론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나는 그분의 인간성이 논외의 문제로 치부되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매주일 교회에서 사도신경을 외우곤 했지만 사도신경은 예수님의 생애 대부분을 제외하고 있다. 사도신경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라고 되어 있다.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 사이에는 어떠한 일이 있었는가?

사람들은 예수님의 생애를 올바르게 해석하려고 달려들었지만 그러한 노력의 와중에서 정작 그분이 이 땅에서 33년 동안 하셨던 말씀들과 행하셨던 일들은 옆으로 치워놓은 경향이 있다. 기독교적인 전통에서 자라난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도 팔레스타인의 먼지나는 길을 걸으셨던 그분은 완전히 잊어버렸었다. 나는 ‘빛의 빛이요 하나님이 본체요, 태어났으되 창조되지는 않으신’ 그리스도는 알았지만 나사렛 출신의 예수, 또는 요셉의 아들인 랍비 죠슈아는 몰랐었다.

최근에 괄목할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도서관에서 연구를 하는 가운데 나는 유대인들 가운데서 예수님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25년에 히브리 학자인 죠셉 클라우스너는 당시의 유대인 학자들 중에서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다룬 학자는 세 명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은 예수님에 대한 수백 건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들 가운데는 예수님에 대한 최고 수준의 연구들도 찾아볼 수 있다. 현대의 이스라엘 학생들은 예수님은 위대한 스승, 곧바로 이방인들에게까지도 ‘발탁되었던’ 아마도 가장 위대한 유대인의 스승이었다고 배우고 있다.

예수님이 진정한 유대인이셨다는 것은 마태복음의 첫 번째 문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 문장은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조잡한 비교이지만, 이러한 소개의 변이란 미국으로 말하면 정치인을 ‘아브라함 링컨과 조지 워싱턴의 후손’이라고 소개하는 식인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자기 민족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던 시기에 자라나셨다. 당시 유대인들은 족장들의 시대와 출애굽 시대에 유행했던 이름들을 사용하곤 했었다(미국 흑인들이 아이들에게 아프리카 이름을 지어주는 것과는 다르다). 아기 때 할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소년의 몸으로 예루살렘의 유대교 축제에 참석하셨으며 성인이 되셔서는 회당과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셨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 등의 유대인들과 논쟁을 벌이기는 하셨지만 이 사실조차도 그들이 예수님을 자신들의 가치체계에 포함시키고 자신들과 같이 행동하도록 만들려고 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나는 단 한 명의 유대인도 만나지 못한 채로 자라났다. 그러나 지금은 유대인을 안다. 다음과 같은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도 일부 알고 있다. 더 이상 안식일의 의미를 믿지 않는 가정에서조차도 아직도 살아있는 ‘안식일 성수’라는 엄격한 의무. 처음에는 나를 당황케 했지만 곧 나를 매료시킨 유대인의 열정적인 토론 관습. 이 관습은 개인이 공동체에 참여하는 양식인 것이다. 자율성을 주된 가치로 삼는 사회 한 가운데서도 살아있는 율법주의에 대한 존경과 경외. 세상이 축하할 이유를 주지 않아도 팔짱을 끼고 춤추며 노래하고 웃을 수 있는 능력.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문화였다. 유대 문화인 것이다. 그렇다, 그분은 이 문화를 변화시키셨다. 그러나 그분의 출발점은 언제나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십대 때 어떠하셨을까를 생각하다가 내가 아는 시카고의 유대인 소년들을 생각해냈다. 이러한 생각을 하다가, 나는 예수님께서는 유대 문화와 반대되는 반응을 보이셨다는 점을 기억했다. 그분은 십대의 유대인 소년이셨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셨지 않은가?

9.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처럼 행동하지 않으셨다

성전의 건축 구조는 그 자체가 유대인의 믿음을 표현해 주고 있다. 그들은 높고 높은 하나님께 이르는 위계 질서의 사닥다리가 있다고 믿었다. 이방인들과 사마리아인들 같은 '잡종'들은 이방인들의 바깥뜰까지는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뜰과 성전의 다음 구획 사이에는 벽이 하나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이방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그 이상 들어올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유대 여인들은 그 다음 구역까지 들어오도록 허용되었다. 유대 남자들은 한 단계 더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성소에는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유대 사회는 사실상 종교적인 카스트 체제였다. 이 체제는 어느 계층이 더 거룩한가라는 문제에 기반을 둔 체제였으며 바리새인들은 매일매일 용의주도하게 이 체제를 더 강화시켜나갔다. 손을 씻고 부정을 피할 것을 지시하는 모든 규례들은 하나님께 용납될만한 존재가 되기 위한 시도였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에 쓰기에 바람직한(흠 없는) 동물들과 바람직하지 않은(흠 있는, 정결하지 못한) 동물들의 명단을 주시지 않으셨던가? 하나님께서는 죄인들과 월경 중인 여자들,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밖의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들은 성전에 들어오지 말라고 금지 명령을 내리시지 않으셨던가?

예수님은 이렇게 빈틈없는 종교적 카스트 제도의 한 가운데에 출현하셨다. 그분은 아이들이나 죄인들, 또는 심지어 사마리아인들과 어울리면서도 거리낌이 없으셨다. 그분은 나병환자, 장애자, 혈루병 걸린 여자, 미치고 귀신들린 사람 등 ‘정결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지셨고 그들도 예수님을 만졌다. 레위기의 율법이 병든 자를 만진 후에 다시 정결케 되기 위해서는 하루가 지나야 한다고 규정했지만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지시면서 수많은 치유의 기적을 행하셨다. 그분은 병든 사람을 만진 후에는 부정하게 된다는 율법, 심지어는 죽은 사람을 만지면 부정하게 된다는 율법들에 대해서 전혀 개의치 않았다.

참으로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받아들였던 지혜를 뒤집으셨다. 바리새인들은 부정한 사람을 만지면 그 만진 사람이 더러워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병환자를 만졌을 때 부정해진 것은 예수님이 아니었다. 나병이 깨끗하게 되었던 것이다. 부도덕한 여자가 예수님의 발을 씻었을 때 그녀는 용서받고 변화되었다. 예수님이 이방인의 집은 방문하지 못하게 되어있는 관습을 부정했을 때, 그 이방인의 종이 나음을 입었다. 월터 윙크가 표현한 것과 같이, ‘거룩함의 전염성이 부정함의 전염성을 극복했다.’ 요컨대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함(배타적)에 대한 강조를 하나님의 자비(포용적)에 대한 강조로 옮겨놓았다. ‘부정한 자는 들어올 수 없다’는 메시지 대신에 그분은 ‘하나님의 나라에는 더 이상 부정한 자가 없다’고 선포하셨다.

예수님의 태도가 오늘날 나에게 신념을 주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과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교회는 점점 더 정치화되고 있다. 사회가 해이해지고 부도덕이 증가하면서 교회는 자비보다는 도덕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높아지고 있다. 동성연애자들을 모욕하고, 미혼녀를 수치스러운 것으로 생각하며, 집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범법자들을 벌주라는 주장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에 대해 깊은 우려를 품고 있다. 분명히 그리스도인들은 도덕적인 목소리를 발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나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자비의 힘에 충격을 받았다. 그분은 건강한 자가 아니라 병자를 위해서,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서 오신 분이다. 나는 반평생을 어릴 적 받았던 율법주의의 영향에 저항하면서 보냈다. 내가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수를 처음 맛보았을 때 나는 내가 영원히 변화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8. 예수님은 ‘문화 전쟁’에서 패배하셨다

얼마 전에 나는 강력한 소수파 유대인들이 포함된 자유민주파의 많은 청중들 앞에서 ‘문화 전쟁’이라는 주제로 연설을 했다. 나는 디즈니와 워너 브러더스 사장, 웨슬리 대학 총장, 그리고 아니타 힐의 개인 변호사가 포함된 패널 토론에 복음주의적 기독교인을 대표하는 인사로 초청받아 참여했다.

그곳에서 말할 내용을 준비하면서 나는 도움을 얻기 위해 복음서들을 통독했다. 그 결과 나는 예수님의 비정치성만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마다 어느 후보가 백악관에 입성하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사람’인지를 토론한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를 생각해 보아도 티베리우스와 옥타비우스, 또는 쥴리어스 시저가 로마 제국의 황제로서 합당한 ‘하나님의 사람’인가를 숙고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나는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문화 전쟁을 포기했을 때 일어났던 일들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최악의 악몽같은 일들이 알바니아, 소련, 중국 등의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현실적으로 발생했다. 이 정부들은 교회가 지하로 들어가도록 몰아 부쳤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역하던 한 선교사에 의하면 아프간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 유일의 교회를 철거해 버리고 나서는 그 지하를 깊이 파들어갔다. 그들은 지하교회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것이다!) 예컨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친 박해의 물결 속에서 중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벌금을 물고 감금되었으며 고문을 당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억압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교회 역사상 가장 거대한 영적인 부흥이 일어났다. 눈에 보이는 왕국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중에도 5천만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왕국에 충성을 바쳤던 것이다.  

나의 발언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내가 따르는 분, 즉 1세기에 팔레스타인에서 사셨던 저 유대인 역시 문화 전쟁에 연루되었었다고 말했다. 그분은 경직된 종교 기관들과 이방 왕국에 대항하여 일어나셨다. 자주 다툼을 벌였던 그 두 권세들이 그분을 죽이기 위해 함께 음모를 꾸몄다. 그분은 어떻게 대응하셨던가? 그분은 싸우지 않으시고 오히려 적들에게 생명을 내어주셨다. 그분의 사랑의 표시로 그렇게 하셨던 것이다. 그분이 죽기 전에 남긴 몇 마디 말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패널 토의가 끝난 후에 모든 독자들이 알고 있을 저명인사 한 명이 내게로 왔다. 그는 ‘당신의 말이 내 가슴을 찔렀다는 것을 말해야겠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당신을 혐오하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모든 우익 기독교인들을 혐오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나는 예수를 따르지 않습니다. 나는 유대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예수가 그의 원수들을 용서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내가 그러한 정신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 원수와 싸웠습니다. 특별히 우익들과 싸웠습니다. 그들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예수의 정신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겠습니다.’

7. 예수님은 가난한 세일즈맨이셨다

때때로 나는 예수님이라면 이 매스 미디어와 하이테크 목회 시대에 어떻게 지내실까를 궁금해한다. 나는 거대한 기관을 운영하면서 그 세부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염려하는 그분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다. 텔레비전에 출현하기 전에 더 멋있는 모습으로 나오기 위해서 분장사에게 얼굴을 맡기는 그분의 모습은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다. 기금을 요청하기 위해 예수님이 쓰실 편지의 내용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텔레비전의 조사 기자들은 증거는 거의 없으면서도 초자연적인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텔레비전 설교자들을 크게 다루고 지원해주기를 좋아한다, 그와는 정반대로 예수님께서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나타내셨지만 그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그분은 치료를 받은 사람에게 일곱 차례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군중들이 그분의 주위에 몰려들었을 때, 그분은 홀로 떨어져 나오시거나 노를 저어 호수를 건너가셨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는 건강하지 못한 증후군을 ‘구세주 콤플렉스’라고 부르곤 한다. 역설적이게도 참 구세주에게는 이러한 콤플렉스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분에게는 생전에 전세계를 회심시키겠다든지 치료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도 다 치료해 주어야겠다는 강박관념은 없었다.

나는 예수님께서 누구의 팔을 비틀어 어떤 일을 강요하시는 모습은 생각도 할 수 없다. 오히려 그분은 선택의 결과를 설명해 주시고는 상대방 자신이 결단을 내리도록 하셨다. 예를 들어 언젠가 한 부자의 질문을 받은 예수님은 단호한 대답으로 그를 보내셨다. 마가는 예수님의 충고를 거절했던 그 사람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셨다’고 날카롭게 덧붙이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예수님은 인간의 자유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존중해 주셨던 것이다. 사역을 하는 우리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과 같은 ‘구세주 콤플렉스’가 요구된다. 엘튼 트루블러드가 관찰한 바와 같이 예수님은 부담의 멍에, 고난의 잔, 종의 수건 등 주로 가혹하고 때로는 공격적인 상징들을 사용하여 초대의 말씀을 하셨다. 그분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역사상 가장 꾸밈없는 초대였던 것이다.

6. 예수님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요한복음에는 다음과 같은 과장적인 표현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신학대학의 도서관에서 예수님에 대해 쓰여진 수천 권의 책들을 뒤적이느라 시간을 보낸 후에 나는 요한의 예언이 현실이라는 오싹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이상한 것이 있다. 이렇게 뛰어난 연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여전히 예수님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들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네 복음서들은 출생 이후 아홉 내지 열 살까지의 예수님의 삶은 건너뛰고 있으며 현대의 독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켰을 법한 많은 사건들을 생략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청소년기에 대해서는 단지 한 장면만을 알고 있을 뿐이며 그분이 어떠한 교육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분의 가족 생활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설명이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에 학자들은 그분의 형제 자매가 몇 명이었는지에 대해서 아직도 논쟁을 하고 있다. 복음서 기자들은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필수적인 경력에 관한 사실들에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김새나 체격, 눈동자의 색깔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 따라서 작가로서 나는 보통 어떤 사람에 대한 글을 시작할 때와 같이 용모를 묘사함으로써 예수님에 대한 글을 시작할 수는 없다. 5세기에 이르러서야 다소 사실적인 예수님의 초상화가 처음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 초상화들은 순전히 상상에 의한 것들이었다. 그때까지는 그리스 사람들이 예수님을 젊고 수염이 없는 아폴로 신 비슷하게 그렸었다.

나는 강의를 하면서 한 번은 다양한 모습 - 아프리카인, 한국인, 중국인 - 으로 예수님을 그린 몇 십장의 초상화 슬라이드를 보여주고서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예수님의 용모를 묘사해 보라고 청한 일이 있었다. 사실상 모든 학생들이 예수님은 키가 크셨을 것이라고(1세기 유대인과는 달리) 생각했으며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분은 잘생기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님이 비만이셨을 것이라고 말한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BBC에서 제작한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룬 영화를 보여주었는데, 그 영화에서는 살이 찐 배우가 예수님 역을 맡아서 연기했다. 일부 학생들은 그 영화를 불쾌하게 생각했다. 우리는 키 크고 잘생긴, 그리고 무엇보다도 호리호리한 예수님을 선호한다.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은 꼽추였다고 한다. 그리고 중세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예수님께서 나병을 앓으셨다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아마도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생각들을 불쾌하고 이단적인 발상으로 여길 것이다. 그분은 완벽한 인간의 표본이 아니셨던가?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 탄생 수백 년 전에 선포되었던 예언 한 마디를 제외하고서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예수님의 신체를 묘사한 부분은 찾아내지 못했다. 다음 구절들은 이사야의 묘사이다. 이 구절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 가운데 나오는 것이다.

“그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그리는 매력적인 외모의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5. 예수님은 뒷뜰의 바베큐 파티에 초대할 수 있는 편안한 이웃이 아니다

예수님께 대한 책을 쓰는 동안 내게는 다른 어떤 느낌보다도 우리가 그분을 길들여 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어린 시절에 내가 배웠던 예수님은 그 무릎 위로 기어올라가고픈 수염이 많은 할아버지같이 따뜻하고 유순하신 분이었다. 실제로 예수님은 신사적이고 동정심이 많으셨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도 그분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분은 분명히 수염 많고 사람 좋기 만한 분은 아니셨다.

나는 산상수훈을 연구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이 말씀들은 가난하고 박해 당하고 비탄에 빠져있는 사람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편안한 격언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대도시의 난방파이프 위에서 웅크리고 잠을 자는 집 없는 사람들, 국제사면위원회가 배포하는 사진 속의 고문당한 죄수들, 텔레비전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오클라호마 시청 폭파 사고 희생자의 가족들을 보라. 누가 이들을 복되거나 ‘행운이다’이라고 말하겠는가?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모든 영화들 중에서 산상수훈 장면을 가장 도발적으로, 또한 아마도 가장 신랄하게 그려낸 영화는 저예산으로 제작된 BBC 방송의 ‘사람의 아들’이다. 이 영화의 감독인 데니스 포터는 산상수훈을 폭력과 혼돈이 넘치는 당시의 배경과 대비시켰다. 로마 군인들은 이제 막 갈릴리 마을에 침입하여 로마 제국의 명령을 어긴 갈릴리 사람들에게 보복을 가하고 있었다. 그들은 징집 연령의 유대 남자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창으로 꿰었으며 겁에 질린 그들의 아내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놓은 채로 그들의 아기들도 창으로 찔러 죽였다. ‘이 유대놈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피와 눈물과 죽은 이들을 위한 통곡 소리가 진동하는 이러한 혼돈의 현장을 불타는 눈으로 목격하시면서 다니셨다. 이 비탄의 현장에서 그분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외치셨다.

내가 말하거니와 너의 형제를 사랑하고 너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세리들조차도 그 같은 일은 할 줄 안다! 네 동족을 사랑하는 것으로 칭찬을 받고 싶으냐? 아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 너를 발로 차고 네게 침을 뱉을 사람을 사랑하라. 네 배에 칼을 꽂을 로마 군인을 사랑하라. 네 가진 것을 뺏고 너를 괴롭힐 도적을 사랑하라. 내 말을 들으라! 네 원수를 사랑하라! 로마 군인이 네 왼뺨을 치면 그에게 네 오른뺨을 대주어라. 권세잡은 자가 5리를 가라 하면 10리를 가주어라. 네 겉옷을 얻기 위해 너를 고소하는 자가 있거든 그에게 속옷까지 벗어주어라. 들으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나를 따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이 세상이 시작된 이래 아무도 하지 않았던 말이다!

이렇게 달갑지 않은 충고를 들은 갈릴리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산상수훈은 그들을 위로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을 격앙시켰다. 나는 편안한 마음과 무서운 마음을 동시에 느끼면서 예수님에 대한 나의 연구를 끝마쳤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으로 이 땅에 오셨다고 말했다. 그분의 진리는 나의 지적인 의심을 가라앉혔고 그분의 은혜는 나의 감정적인 의심을 잠재웠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의 무서운 일면과도 마주쳤다. 이것은 주일 학교에서는 결코 가르쳐주지 않았던 부분이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도 자신의 삶에 만족을 느끼고 떠나간 사람이 있었는가? 예수님 주변에 있으면서 편안함을 느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예수님 앞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란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내가 복음서에서 만난 예수님은 길들여지시지 않는 분이셨다.

4. 예수님은 교회가 아니다

하버드 대학 교목을 역임한 조지 버트릭 목사는 학생들이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와서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나는 하나님을 안 믿어요’라고 선언하곤 했다고 회상한다. 버트릭 목사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러한 학생들의 적대감을 풀어주었다고 한다. ‘거기 앉아서 자네가 안 믿는다는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인지를 말해보게. 아마도 자네가 믿지 않는 그 하나님은 나도 안 믿고 있을 걸세.’

예수님을 거부하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제시하는 왜곡된 예수님의 모습을 거부하는 것이다. 관찰자인 이 세상은 교회를 보고 예수님을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교회의 역사에는 십자군 원정과 종교재판, 라틴 아메리카 정복, 예수호라는 이름의 노예선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의 영원한 수치이다.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 나는 교회 자신이 쌓아놓은 먼지와 때의 꺼풀을 벗겨내야만 했다. 내 경우에는 미국 남부에 있는 근본주의 교회들의 인종차별주의와 완고함, 속 좁은 율법주의가 예수님의 이미지를 흐려놓았었다. 러시아와 유럽의 카톨릭 교회들은 아주 다른 과정을 거쳐서 예수님의 이미지를 회복시켰다. 한스 큉은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탐구 과정과 관련해서 ‘먼지만이 진정한 모습을 가리는 것은 아니다. 금이 너무나 많을 경우에도 진정한 모습은 가리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질문 자체를 전적으로 거부한다. 그들은 교회의 모습에 좌절을 느낀 나머지 예수님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있다.

나는 종종 교회의 역사는 어느 정도 논외의 문제로 치부해 버렸으면 하는 마음을 품곤 한다. 예수님에 대한 교회의 해석층들은 제거해 버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처음부터 복음서의 말씀을 만나도록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렇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사람들이 잘못된 이유로 그분을 거절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내 마음속에 끼어있던 안개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자 예수님에 대한 나의 생각은 놀랍도록 변화되었다. 내가 그분에 대한 탐구를 마쳤을 때, 예수님은 지혜가 탁월하시고 길들여지지 않으시는, 인자하시고 창조적이시며 자비로우시고 쉽게 파악되지 않는, 사랑이 많으시고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며 역설적이게도 겸손하신 분으로 내 앞에 서 계셨다. 그분은 내가 원하는 나의 하나님이시다.

3. 그러나 교회는 예수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윗 글에서 내가 추구한 일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비성경적이다. 처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은 죽으시고 당신의 교회인 우리들이 당신을 대신할 것을 계획해 놓으셨다(로버트 파라 케이폰이 상기시켜주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이 세상에 당신의 사람들을 보내신 것이다. 그분은 지금도 보내고 계시다’). 그분은 당신의 말씀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할 제자들을 모으는데 필요한 기간만큼만 이 땅에 머무셨다. 월터 윙크는 예수를 죽이는 것은 민들레 꽃씨를 바람에 날려 죽이려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사시는 곳이다. 오늘날 교회는 예수님께서 몇몇 사람들에게만 베풀어주셨던 것들 - 치유, 은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복음 - 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말씀해주셨다.

복음서를 읽어나가면서 나는 승천은 내 신앙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거리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승천의 실제적 발생 여부가 아니라 승천의 이유가 나에게 문제로 다가왔다. 이 문제는 부활이나 그 밖의 다른 기적들에 대한 신앙보다도 더욱 나에게 도전을 주는 문제이다. 이것은 이상한 의문인 것 같다. 나는 승천에 대한 의심에 답해주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나 기사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그러나 나의 경우로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떠나신 이후에 세상에서 일어난 일들이 내 신앙의 중심을 공격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머무시면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이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 안에서 성육신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의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과 내 안에서 성육신하셨다고 믿는 것보다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이것을 믿어야 한다. 이대로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다하시고 떠나셨다. 이제는 우리, 곧 그리스도의 몸이 일할 때인 것이다.

2. 교회력에 있어서는 가톨릭이 프로테스탄트보다 낫다

내가 자란 교회에서는 부활절 종소리만을 기다렸을 뿐, 성주간 행사는 하지 않았다. 우리는 성금요일에도 예배를 드리는 일이 없었다. 성찬식은 석 달에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 나는 로마 가톨릭 교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으며, 그 때문에 가톨릭을 믿는 소녀들은 ‘작은 남자가 새겨진’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다니는 것이라고 들었다. 그들은 매일 미사를 드렸다. 그것은 그들이 죽음에 고착되어 있다는 증후였다. 우리 프로테스탄트 교인들은 달랐다. 우리는 부활절을 위해 가장 좋은 옷과 부활 찬송,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성전 장식을 준비했었다.

신학과 교회의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우리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가톨릭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었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들도 우리만큼 확고하게 부활을 믿고 있다. 복음서를 읽으면서 나는 우리 교회에서와는 다르게 성경기록은 성주간이 다가올수록 빨라지기보다는 오히려 느려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기 기독교의 주석가는 복음서들이란 본질적으로는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에 대한 기록인데, 거기에 확장된 형태의 서론이 첨가된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이며 목사인 토니 캄폴로가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그의 교회에서 한 초로의 흑인 목회자에게 감동적인 설교를 하고 있다. ‘오늘은 금요일입니다. 그러나 주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라는 것이 설교의 제목이었다. 이 제목을 이해하기만 하면 설교 전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캄폴로 목사는 목소리를 점점 더 빠르고 크게 하면서 세상이 금요일 - 악의 세력이 선의 세력을 이기고, 모든 친구들과 제자들은 공포에 질려 도망가 버렸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날 - 은 어떻게 보고 있으며 부활 주일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 차이를 대비시키고 있다. 이 금요일과 부활 주일을 다 지냈던 제자들은 하나님이 안계시는 것처럼 생각되는 때가 사실은 가장 가까이 계실 때라는 사실을 배웠다. 하나님이 무력해 보이는 때가 사실은 가장 강하신 때이다. 하나님이 죽으신 것 같았던 그 때에 그분은 생명으로 돌아오고 계셨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패배하셨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캄폴로의 설교에는 하루가 빠졌다. 다른 이틀, 즉 성금요일과 부활 주일은 아마도 전체 교회력에서 가장 중요한 날들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는 그 가운데 날인 토요일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계, 즉 보스니아와 르완다, 그리고 지상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의 도심에 형성되어 있는 빈민촌을 안고 있는 이 세계에서 무언가 거룩하고 아름다우며 선한 것을 만들어 내실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가? 인간의 역사는 약속의 시간과 성취의 시간 사이에서 삐걱거리고 있다. 지금은 이 땅의 토요일이다. 부활의 주일이 올 것인가?

아마도 이러한 이유에서 복음서 기자들은 공생애의 다른 주간들보다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던 그 마지막 한 주간에 훨씬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던 것 같다. 그들은 미래의 날들은 기쁨의 날인 주일보다도 금요일과 주일 사이의 날, 즉 토요일과 같은 날들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이 우주적인 드라마 속에서 이름도 없는 날인 토요일에 살고 있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될 것이다.

1. 예수님은 나의 믿음을 구원해 주신다

때로 나는 스스로에게 ‘나는 어째서 그리스도인인가?’라고 물어본다. 온전히 솔직하게 답하면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1) 훌륭한 대안 부재, (2) 예수.
마틴 루터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숨어있는 하나님에게서 도망나와 그리스도에게로 달려가라고 격려했는데, 이제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만약 내가 훌륭한 미술 작품을 보기 위해서 확대경을 사용한다면 확대경의 중앙 부분에 비친 그림의 모습은 또렷하고 깨끗하게 보이겠지만 가장자리에 비친 모습은 찌그러져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나의 초점이 되셨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내 믿음의 확대경의 초점을 계속적으로 예수님께 맞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는 고통이나 섭리와 인간의 의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라는 등의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놓고 오랜 시간 동안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럴 때는 모든 것들이 혼란으로 빠진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볼 때 문제가 다시금 명료해진다.

예수님께서는 고통의 문제에 대해서 철학적인 대답을 해주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분은 실존적인 해답을 주셨다. 나는 예수님께 나쁜 일들이 생기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배울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러한 일들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계시는지는 배울 수 있다. 나는 예수님께서 그분의 좋은 친구였던 나사로의 누이동생들을 어떻게 대해주셨던가, 또는 성문 앞에서 출입을 금지 당해 서있던 나병환자를 어떻게 대해주셨던가를 살펴보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얼굴이시다. 그리고 그 얼굴은 눈물로 얼룩이 져있는 것이다.

어째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도 나의 비참한 느낌을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내게 도움이 된다. 그분은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밤을 새워 기도하셨건만 그 제자들 가운데는 유다가 포함되어 있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분은 몸을 땅바닥에 내던지시고는 다른 길을 달라고 울부짖으셨다. 그러나 다른 길은 없었다. 겟세마네 기사는 결국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한 이야기인 것이다. 고난의 잔은 옮겨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다면 기도는 해서 무엇하느냐?’라는 등의 질문을 듣고 영적인 마비상태에 빠지지는 않을까 염려할 수도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셨다. 예수님께서 기도의 씨앗을 뿌리셨다면 나도 그렇게 해야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나의 잘못된 생각들을 바로잡아 주셨다. 내 자신의 생각만 있었다면 나는 실제와는 아주 다른 하나님 관념에 빠졌을 것이다. 나의 하나님은 정적이고 변화가 없는 하나님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 때문에 나의 이러한 천성적인 개념들을 수정해야만 했다. (아마도 이것이 그분의 중심적인 사역이 아닐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 아들의 생명을 대가로 치루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에게 자유의 여지를 주시는 하나님, 상처받기 쉬우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무엇보다도 예수님께서는 사랑이신 하나님을 보여주셨다.

우리 스스로의 생각으로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또한 사랑 받기를 사모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사람이 있겠는가? 기독교 전통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예수님 말씀이 얼마나 충격적인 것인가를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과 그들의 신 사이를 사랑의 관계로 묘사하는 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코란에는 사랑이라는 말을 신에게 적용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구든지 자기가 제우스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괴상한 사람이다’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제우스가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 역시 있을 수 없는 괴상한 일로 여겨졌다. 기독교의 성경은 이러한 경향들과 빛나는 대조를 이룬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하며 사랑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주된 이유로 꼽는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나는 오헤어 공항의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다섯 시간이나 연착되는 비행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기나긴 밤을 지낸 일이 있다. 우연히 작가 카렌 메인스도 나와 같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었다. 비행기가 너무나 연착이 되고 시간도 늦어 우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당시 나는 「하나님에 대한 실망」이라는 책을 쓰고 있었으며 고통과 슬픔, 의심에 시달리고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 대해서 마음의 짐을 느끼고 있었다. 카렌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조용히 내 말을 경청한 후 갑자기 언제나 내 마음속에 머물러 있던 질문을 내게 던졌다. ‘필립,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시도록 자신을 내어 맡긴 일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요?’ 그리고는 그녀는 ‘나는 그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놀랍게도 그녀가 나의 영적인 생활 가운데 입을 벌리고 있는 웅덩이에 빛을 비추어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기독교 신앙에 몰입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축제의 이야기요 사랑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물론 그 이야기에는 고통스럽고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도 그러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가족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기꺼이 찾아와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그 약속을 몸소 보여주고 계신다.

글 / 필립 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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