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이도 참혹했던 미국 주요도시에 대한 테러 사건을 보고 잠시 말과 글을 멈추고 일 주일 여를 보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주위의 무언의 재촉이 있었지만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테러의 뿌리가 어디이고, 그 과정이 어떻게 되며, 앞으로 전개될 상황은 어떠할까, 라는 글이야 신문마다 그득하고 누가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주모자이며 배후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으니 쓰거나 말할 내용이 없기도 했습니다.

이슬람에 대해서도 아는 게 너무 적다는 것을 깨달았고, 제가 이슬람을 들여다 본 내력 또한 십자군 전쟁을 통해서,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중동 분쟁을 통해서, 미국과 이스라엘을 통해서, 기독교를 통해서, 그렇게 정작 이슬람이 아닌, 이슬람과 적대적인 창을 통해서만 들여다 보아왔음을 깨달았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한가지는 이번 테러로 인한 미국인들의 고통과 슬픔, 그 구체적인 실체가 너무도 크고 분명한 것이어서, 애도와 추모의 공백도 필요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사건 발발부터 이번 테러의 뿌리는 어디인가, 그건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예견된 테러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미국의 대오각성 없이는 불행은 계속될 것이다, 등등의 판단을 늘어놓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무자비한 폭격과 경제봉쇄로 인해 짓밟히고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숨져갔을 중동 이슬람 국가의 사람들, 그 깊고 슬픈 눈의 아이들도 떠오르고, 그 커다란 눈들은 제게 "당신이 이 폭력과 고통의 역사를 진정으로 이해하는가, 설령 우리의 편을 든다 해도 우리의 아픔을 얼마나 느낄 수 있는가" 피할 수도 대답할 수도 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뉴스앤조이 게시판에도 독자 한 분이 그 아이들의 사진을 올려놓으셨더군요.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 사진 속의 얼굴이 이 문제의 답의 시작이자 끝인 듯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런가하면 이슬람은 종교를 가장한 정치사상이며, 이슬람 신앙을 내세워 세속 정권을 장악하고 이슬람 제국을 건설하려는 무력신봉의 종교사상이며 테러를 부추기는 종교사상이라는 다른 독자 분의 글이 올라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아마도 종교를 가장한 정치 사상이란 말씀은 정교일치의 통치이념을 지적하시는 것이겠지요.

이슬람은 종교이기도하겠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삶의 체계이기도 합니다. 유대교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렇듯 말입니다. 또한 중세에 이루었던 화려한 이슬람 문명을 동경하고, 이슬람에 대한 선험적인 우월감을 바탕으로 서구에 대한 비굴한 굴종이나 타협을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와 크게 달라 보입니다.

종족의 자존심을 폐쇄적으로 지켜 나가려는 몸부림에 대해 서방세계는 힘으로 제압하려하니까 결국 종교적 신념으로 결속을 강화하고 투쟁에 나서게 된 것이겠죠. 물론 여기에서 팔레스타인이 미국에게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자산임을 빼놓고 생각할 수는 없겠지요.

만약 우리 나라가 이런 식으로 서방세계나 사회주의 국가들의 무력에 의해 압박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무얼 구심점으로 하여 뭉칠까요? 단군 신앙이요? 그럼 단학선원이 민방위군 사령부가 되겠군요. 말이 났으니 얘긴데 단군과 고조선이 한민족의 뿌리라는 설화는 한반도 전체에 해당되는 설화가 아니고 평양지역에서만 전승되던 특정 지역의 부족전승이라는 해석이 새로 나왔더군요.

단군신화가 역사 속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이 고려시대 후기의 저술인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인데 1280년에서 1290년 사이에 기록된 책들이지요. 고조선이 사라진 지 1500년이 지나서 기록했는데 현재도 아니고 그 당시에 1500년 전 일을 더듬어 기록하려 했으니 오죽 했겠습니까? 그 이전의 다른 역사 기록들은 단군과 고조선을 아예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당연하겠죠, 고구려와 신라는 자신들이 하늘의 자손임을 자처하는 별도의 건국신화를 갖고 있고 백제 역시 부여와 고구려에서 자기들의 기원을 찾고 있습니다. 독자적인 건국신화가 있는데 왜 굳이 고조선을 들먹이겠습니까.

어떤 역사학자는 평양과 황해도 구월산 자락에 살던 고조선계 유민들이 부여와 고구려에 흡수된 뒤에도 자신들의 시조인 단군 부족신앙을 지키며 자존심을 지켜오던 것을 1500년 뒤 원나라의 식민지처럼 되어 버린 고려왕실이 국가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차용해 사용했으며 조선조와 대한제국이 이어받았다고 말합니다.

단군신화는 그런 이유가 아니라 해도 민족의 결속을 이뤄내기엔 턱없이 역부족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신앙입니까?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라는 찬송가도 있고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 높이높이 쳐들고 라는 찬송가도 있으니, 우리가 이 노래를 부르며 나가 싸울 수 있을까요?

한국교회는 그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의 토템처럼 세워 왔습니다. 토템이란 아시다시피 어느 특정 집단에 의해 신성시되는 동식물이나 자연물입니다. 예수께서 토템이 되셨다는 게 아니고 교회가 예수를 토템화시켜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토템은 집단을 결속시켜 통일된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상징이고 다른 공동체와는 다른 '우리끼리'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지표입니다. 그 안에 들어가면 의무도 주어지지만 개인으로서는 소속감이 주어지니까 안정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한 토템은 다른 토템과의 숙명적인 경쟁관계 속에서 한편 방어적이고 한편 공격적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때에 바로 바람에 휘날리는 '전장(戰場)의 깃발'이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은 천하(天下) 위에 있는 보편적인 것이고, 그 보편성은 그 분이 곧 진리이시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한국교회는 그 진리가 자기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화석화시키고 격하시켜 온 것입니다. 불상을 찾아다니며 목 위를 부수었으니 호국불교와도 인연을 끊었고, 단군 숭앙파들에게 저주를 퍼부었으니 이것도 토템화의 한 반증이리라 생각됩니다. 주 5일 근무제는 신앙교리에 위배된다고 반대하면서 노동족과 담을 쌓아버린 것도 기억나실 겁니다.

이 토템은 이스라엘과 아랍, 이슬람과 미국을 판단하는 데도 쓰여지는 모양입니다. 현대사에서 빼앗기고 고통당하는 쪽이 아랍이고 이슬람인데 이스라엘과 미국의 편으로 기울어 있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경우를 따져보자면 아브라함의 본처 사라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혈통을 유지해갔고, 첩실인 하갈의 자손은 이슬람 부족들이 되었는데 이스라엘 부족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억울한 죽음을 맞게 했으니 한국의 교회는 이슬람 편이 되어야 마땅한데 왜 이스라엘 편이 되었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미국이 이스라엘 편을 들고나섰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리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번에 미국이 아프카니스탄을 공격한다고 합니다. 십자군 전쟁을 놓고는 유럽 연합군 편을 들었고, 중동 전쟁에서는 이스라엘 편을, 아프카니스탄 침공에서는 한국교회가 누구의 편이 되어야 할까요?

글/변상욱 부장(CBS 편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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