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국 정치 문화와 한국 정치 문화 발전의 과제들

21세기 초의 한국 정치 문화는 (알몬드와 베르바의 분류를 원용해서 말하자면) 아마도 ‘신민적(臣民的) 정치 문화에서 참여적 정치 문화로 이행해 가는 과정 중’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에만 해도 한국은 정치 참여 문제에 있어서 신민적(subjective)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판단되었었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의 정치적 과정을 통해 시민들의 정치 참여 의식은 참으로 많이 성장하였다. (각 당의 경선 과정에서 소위 “국민 경선”을 강조하는 것이나, 여론 조사를 반영하는 일에 매우 민감하며 그에 유의하는 것이 이를 잘 드러내어 보여 준다.) 그러므로 21세기 초 한국의 정치 참여 의식과 관련해서는 이미 우리가 참여적 정치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근자의 정치적 과정을 경험하면서 한국인들이 자신들이 과연 정치 체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적으로 얼마나 많이 성장하였는지는 의문이다. 불의한 법에 대해 자신들이 참여해서 고칠 수 있다고 하는 조사 연구에서 과연 어느 정도가 나올까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정치적 기대는 높으나 자신들의 정치적 효능감이 떨어진다고 평가 될 수 있다. 이에는 지난 몇 년 간 한국 정치를 감당해 온 사람들의 잘못된 정치 행위가 미친 영향이 매우 클 것으로 판단된다. 민주화를 열망하여 이루어준 결과의 하나가 결국 한국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정치 체제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생각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은 매우 반어적(反語的, ironical)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2007년의 대선에서 모든 한국 사람들이 정신을 차려서 바른 정치적 참여 행위를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의식 있는 정치적 참여 행위의 과정과 그 결과가 우리의 정치 문화를 드러내는 것이 되며, 또한 정치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대개“정치 발전”이라고 하면 (1) 정부 권력의 확대와 집중화, (2) 기능의 분화와 전문화, (3) 민중의 정치 체제에 대한 일체감, 그리고 (4) 민중들의 점증하는 정치 참여 등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일단 편의를 위해 정치적 참여와 통합의 수준, 정치 구조 분화의 전문화 수준, 민중의 정치 체제와의 일체감 수준을 측정하여 정치 발전을 규정하는 체제 기능적 접근과 문제 해결 과정을 정치 발전으로 보는 접근들을 수용하여 말하자면 아마 다음과 같은 것들이 21세기 초의 한국 정치 발전의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국민들의 정치적 참여와 통합의 문제

(2) 정치 구조의 분화(structural differentiation)와 전문화(specialization)를 포함한 정치 과정의 합리화 문제

(3) 정치 체제의 가동력과 효율성 문제

(4) 경제 발전과  경제적 생산성(economic productivity) 향상의 문제

(5) 질병 통제를 비롯한 국민의 건강 문제, 부의 재분배를 포함한 복지 문제

(6) 정의 실현의 문제 

(7) 한국의 독특한 정황에서 나온 남북통일 문제

(8) 내적, 국제적 안전(internal and international security) 보장의 문제

그러므로 이와 같은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국 정치의 발전을 이루는 것이 된다. 이 중에서 정치 참여의 확대와 정부 권력의 균형 문제는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이들은 이상적으로 이해하여 이 문제를 무시하는 경향도 보이지만, 다드 등이 솔직히 인정하듯이 “참여의 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정부의 권력은 점점 더 제한”되고, “참여 하는 사람들은 흔히 정부의 행위에 지나친 통제를 가하려고 하기” 때문에  국민의 참여의 성장과 정부 권력은 “갈등”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갈등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이고도 효과적으로 그 균형을 이루어 갈 수 있어야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치가 전개해 간다고 할 수 있다. 대개 정치학자들은 “미국과 그외 다른 유럽의 큰 국가를 포함하는 서구의 정치 전통에 속해 있는 국가들은 정부 권력의 성장과 점증하는 참여 사이의 타협을 이루어 놓았다. (그리하여) 권력은 제한된 기간 동안 정부에게 주어졌다”고 판단한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21세기 초의 한국의 정치적 상황은 국민들의 정치 참여 의지는 상당히 높으나 국민들이 정치 체제와의 일치감은 상당히 떨어지며(소위 “참여 정부”의 시기에 이런 일치감이 가장 떨어져 있다는 것은 매우 반어적 상황이 아닌가?, 그리고 이와 같이 참여 의지가 높으나 국민의 정치 체제와의 일체감이 떨어지는 것이 오래 지속되면 일종에 정치 체제에 대한 냉소가 증가 하여 결국 정치 체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매우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정치 과정의 합리화 수준도 상당히 떨어지며, 특히 정치 체제의 효율화 문제는 심각할 정도이고, 현재 모든 국민들이 의식하는 대로 경제 발전과 부의 증대 문제는 여러 국내적 정황과 특히 국외적 정황 때문에 이 시기의 가장 심각한 화두의 하나로 제시될 정도이고, 복지의 확대가 지속적인 관심이 되고 있으나 이를 어떻게 더 확대할 것인가의 문제를 중심으로 여러 견해가 나뉘어져 있어서 이 문제를 다루며 해결하는 것이 향후 100여년의 논의와 정치적 과제로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남북통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하는 한국의 독특한 문제까지가 한국 정치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우리 문화와 사회의 영향으로 한국 사회 전반과 특히 정치계에서 지방색의 문제가 지금까지도 매우 심각한 문제로 항존하고 있으며, 정치인들 사이의 관계가 합리적인 관계성 보다는 유교적 (조직적?) 상하 관계의 근거한 관계성이 형성되어 있는 문제, 아직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지연과 학연 등의 관계에 근거하여 모든 것을 판단하는 문제, 이런 것과 연관하여 자신들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부정과 부패의 문제, 금권 선거에 적극적이거나 암묵리에 동조하는 문제 등이 현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지방색 문제, 비인격적 관계성의 문제, 혈연. 학연, 지연 등에 의해 판단하는 문제, 뇌물 문제를 포함한 정치적 부정부패 문제, 금권 선거 문제 등을 극복해야 한국 정치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 된다. 이 문단에서 언급된 문제들은 (다른 정치 발전을 이루어야 하는 나라들에도 있지만) 아마 한국 사회의 독특한 문제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제를 극복해야만 한국 정치 문화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어떻게 국민들의 바람직한 참여를 유지 증대시키면서 그 참여를 효과적인 정치 체제의 변화와 효율성 증대와 연관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정치 발전의 과제가 된다. 이를 위해서 바른 판단에 근거한 보편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정당들의 드러남, 국민들의 바람직한 판단을 도울 수 있는 정치 교육의 확대 등이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된다. 우리나라의 정당들이 이합집산을 하며 그 연속성이 사실상 없는 것은 상당히 많은 정당들이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를 극복하고 앞으로 100년, 200년 후에 한국 사회 속에서 진정한 정당 정치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려면 정치가들은 정당을 이용하려고 하지 말고 바른 정당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를 국민들이 정치 참여 과정을 통해서 도와주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현실 정치에서 한나라당은 과거 독재자들이 세운 정당(공화당, 민정당)과 연관하여 세워진 정당이라는 그 태생적 한계가 있으나, 민주 세력이 정권 창출을 위해 이용한 3당 합당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 정당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에서는 한나라당 자체가 그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민주 정당으로서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민주당은 60년대부터 계속된 민주세력의 계승자로서의 역할을 부각하여 현금 여러 가지 이유로 정치 중심부에서 소외 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그와 함께 노동자와 연계하며 이 사회에 소외된 이들과의 연대를 강조하고 복지 확대를 주장하면서 그 목소리를 굳혀 가고 있는 민주 노동당이 계속해서 그 독특한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새롭게 나타난 민주신당은 현실적으로 가장 많은 국회의원들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나 (이제까지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그리하였듯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합집산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모습을 가장 최근에 보여준 것으로 국민들이 앞으로 이를 어떻게 판단하고 평가하느냐에 따라서 그 존재가 계속될 지가 결정될 것이다. (이와 같이 계속 되면 후에 필요하면 또 다른 정당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상당히 현실적이고 현상 유지(status quo) 위주의 판단들을 하여 온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즉, 새로운 정당이 세워져도 그 문제와는 관련 없이 당적을 바꾸어 나온 기존에 정치하던 그 사람들을 선출해 주고 지지해 주는 형태의 정치적 선택을 하여 왔다는 말이다.) 그런 것이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을 가능하게 하는 토양을 제공해 준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한국민들이 상당히 높은 정치 참여 의지를 드러내면서도, 정치인들이 계속해서 주요 인물 중심의 정당을 만들고 선거 중심의 정당을 급조해 만들어 내도 정치하던 이들이 계속해서 정치해 갈 수 있는, 그리고 그 배후에는 강력한 지방색에 근거한 판단이 작용하여 정당이나 정책과 상관없이 모두 자기 지역의 정치인들에게 투표하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드러나게 하는 요인들이 된다. 

따라서 각 정당은 모두 진정한 민주 정당으로 변화해 가면서 그 독특한 목소리를 내려고 해야 하고, 국민들은 (지방색에 근거한 판단과 결단을 극복하고) 각 정당의 민주적인 정당에로의 변화의 과정과 그 정당의 성격 및 제시되는 정책 내용에 근거해서 정당들에 대한 계속적인 평가에 근거한 정치 참여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이 일을 과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한국 정치가 계속해서 비슷한 문제를 드러낼 것인지, 과연 정치 발전을 이루어 낼 수 있는지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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