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8일 한국 장로교 신학회 제 10차 학술발표회에서 발제했던 내용을 몇 차례에 걸쳐서 올립니다. 우리들의 기독교적 정치 의식의 성숙을 위한 좋은 기여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각주를 포함한 전체 논문은 한국기독교 학문연구소의 학술지인 <신앙과 학문> 다음 호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이 글에서 나는 한국 정치 문화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한국 교회의 역할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한국 정치가 발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고도 필수적인 것은 한국 정치 문화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전해가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를 위해 한국 교회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으며, 현실적으로 무엇을 해야만 하는 지를 논의하고, 이 큰 과제와 관련하여 특히 2007년 대선에서 한국교회는 과연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 

그러나 결론 부분에서 다시 논하겠지만, 한국 정치 문화 발전을 위한 한국 교회의 역할은 교회의 교회됨의 부차적이며, 산물적인 것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교회는 기본적으로  이세상의 정치 문화의 발전을 위한 기관이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단지 교회가 성경이 말하는 교회다운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다보면, 그 과정 가운데서 부가적으로 (일종의 열매로서) 이 땅의 정치 문화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정치의 발전과 정치 문화의 변혁과 같은 것은 교회의 교회다운 존재됨의 부차적이고 산물적인(열매적인)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는 근본적으로는 이 세상의 정치 발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교회는 오히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를 잘 드러내는 교회됨을 위해 존재한다. 교회는 하나님을 위해,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일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그 교회의 본질적 사명에 충실하다보면 그 부산물로 그 교회가 속해 있는 사회의 정치 발전에도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정치 문화 발전이나 정치적 일을 교회의 본래적이며 본질적인 것으로 오해하거나, 그런 식으로 교회(즉, 성도들을) 오도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효과적인 논의를 위해서 먼저 “정치 문화”, “정치 발전” 등 이 글에서 사용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용어들에 대한 정리로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1. 용어 정리 

문화 일반의 하위 문화(subculture)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 “정치 문화”(political culture)라는 말을1) 정의하는 것은 어렵고 따라서 그 정의가 매우 다양하지만, 정치 문화에 대한 중요한 책에서 카바나(D. Kavanagh)는 일단“정치 체제가 기능을 발휘하는 감정적, 태도적 환경”이라고 간단히 정의한다.2) 또한 (탈코트 파슨즈의 생각을3) 원용하면서) 카바나는 이를 좀더 확대하면서 정치 문화를 “정치 대상에 대한 시민들의 정향의 전반적 분포”라고 정의하기도 한다.4) 그러므로 정치 문화는 한 사회의 시민들이 그들의 전통적 문화와 현존하는 정치 체제와의 관계 속에서 정치 의식적으로 과연 어떤 정황 속에 있는지를 밝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알몬드(Almond)와 베르바(Verba)는 정치 대상의 대한 태도의 인지, 정의, 평가적 차원의 연구를 하면서 정치 문화를 참여적(participant) 정치 문화, 신민적(subject) 정치 문화, 그리고 교구적(parochial) 정치 문화로 분류한 바 있다.5) 정치 정향이 모든 대상에 대해 적극적인 참여적 정치 문화는 영국, 미국, 스칸디나비아의 국가들의 정치체계가 드러내는 정치 문화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실제로 시민들이 정치 체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은 국민의 1/4 뿐이라고 한다.6) 그러나 흥미롭게도 실제로는 1/4이 영향을 미치는 상황 속에 있는 영국의 인구 중 3/4이 자신들이 정치 체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런 참여적 정치 문화에서 그 1/4의 엘리트는 대중 선호에 민감하다고 한다.7) 이에 비해서 시민들이 정치 체제에 대해 피동적이고 복종적인 관계에 있고 자신들이 정치 체제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영향을 받기만 한다고 생각할 때의 정치 문화를 신민적(臣民的) 정치 문화라고 하였고, 동유럽의 국가들과 신생 국가들을 이에 포함시켜 분류되었다. 아마 80년대 이전의 한국의 정치 문화도 이와 같이 분류되었을 것이다. 이런 신민적 정치 문화에서는 엘리트들이 기선을 잡아 결정을 내리는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8) 이에 비해 개인이 정치 체제와 거의 연관을 맺을 수 없고 그것에 대해 희미한 지각과 약간의 지식만을 가지고 있을 때의 정치 문화를 교구적(敎區的) 정치 문화라 하고 더 전통적인 사회들이 이에 속한다고 하였다.

정치 문화는 보다 큰 범주인 그 사회 전체의 문화와 매우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말이다. 그러므로 정치 문화는 그 사회 전반의 문화적 구조적 요인에 의해 상당히 결정된다고 여겨진다. 정치 체제의 특성과 실행에 있어서 문화적 구조적 요인이 중요하다고 강조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독일이 민주적 제도를 잘 운영하지 못하는 것의 이유를 독일인들의 권위적 가족 구조의 비민주적 결과라고 결론내린 조사 연구도 있는 것이다.9) 따라서 우리나라의 전통적 문화가 우리나라의 정치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것이나. 20세기의 변화된 우리의 문화가 우리나라의 정치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실증적으로 연구(empirical study)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연구가 될 것이다.

“정치 발전”(political development)이라는 말은 어떤 면에서는 “정치 문화”라는 말보다 더 규정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정치 발전이라고 할 때 그“발전”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 항상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 발전을 다루는 책에서 다드는“정치 변화에 대한 논의는 애매모호함과 이론적 어려움이 따른다고 솔직히 밝힌다.10) 어떤 이들은 정치 발전을 변화 일반과 동일시하여 모든 종류의 정치적 변화를 정치 발전으로 보기도 한다. 이는 다음에 다루려고 하는 정치 근대화 개념의 서구 중심성에 대한 비판적 의식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과연 모든 종류의 정치적 변화를 정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 문제를 야기 시킨다.

이런 입장을 취하지 않는 이들 중의 다수는 정치 발전을 정치적 근대화(political modernization)와 동일시한다. 이런 개념에 대해 처음 견해를 드러낸 대표적인 정치학자인 루시안 파이(Lucian Pye)는 “정치 근대화”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1) 정치에 참여하고 정부 요직을 맡기 위하여 경쟁하는 기회를 평등하게 보장하는 데 대한 일반적 태도, (2) 정책을 세우고 수행해 나가는 정치 체제의 역량, (3) 전체적 통합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의 정치 기능의 분화와 전문화, (4) 정치 과정의 속화(俗化), 즉 종교적 목적과 영향으로부터의 정치의 분리.11) 그러므로 정치 발전을 정치 근대화로 보는 견해는 르네상스 이후로 서구 사회에서 나타난 근대화(modernization)의 한 부분으로 정치 영역에서의 근대화를 모델로 삼고서 제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정치 근대화로 이해된 정치 발전은 한편으로는 문화적 근대화와 함께 오는 “참여 의식의 성장”으로 이해되며,12) 또 한편으로는 “정치 체제의 효율성의 증가” 또 이를 위한 정치 체제의 “분화와 전문화의 성장”으로 이해된다.13) 대개 산업화(industrialization), 도시화(urbanization)와 함께 고찰되는 근대화 과정에서는 도시 지역에로의 주거지 이동, 공업 기술직으로의 직업 전환, 취학의 증가(교육에 대한 투자), 여성의 해방이 일어나면서 그와 더불어 시민 의식의 성장이 나타나게 된다.14) 이 외에 대중 매체의 광범위한 표출 현상도 시민 의식의 성장에 기여 한다고 언급된다. 이에 동의하면서 립셋(S. M. Lipset)은 대중 매체, 도시화, 교육 등 산업화의 지표가 높은 국가들이 민주적 정치 체제가 안정되어 있고, 그 지표가 낮은 국가들에서는 항상 불안정한 민주 정치 체제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15)

이런 관찰에 근거해서 립셋과 커트라이트(P. Cutright) 등은 경제 발전과 민주 발전의 직선적인 상관관계를 주장한다. 커트라이트는 정치 발전은 교육, 노동력 분배, 대중 전달  체제(the communications system), 도시화(urbanisation), 그리고 경제 발전과 같은 요소들에 의존한다고 했다.16)

그러나 일정한 경제 발전에 따라 민주화의 정도가 뒤따른다는 카트라이트의 경제적 결정주의 주장에 반박하면서 노이바우어(Neubauer)는 민주 발전에 대한 정교한 지표를 제시하고서는 그 수준을 “넘어설 경우에는 경제적 발전과 민주적인 발전 정도 사이에 그 어떤 유의미한 관계도 없다”고 하였다.17) 오히려 문화적 요소를 강조하면서 그는 독일과 프랑스의 예외적인 것과 러시아가 경제 발전을 갖추었으면서도 민주적 발전을 가지지 못한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치 발전을 근대화라는 서구 중심의 특정한 모델의 성취라는 측면에서 벗어나 다소 중립적으로 “특수한 정치 조건, 즉 점증하는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는 제도적 틀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보려는 시도도 있다.18)

정치 문화를 변화시키는 동인들로 카바나는 대중 매체(mass media), 이데올로기(ideology), 정치적 동원(political mobilization), 정당, 외적 영향들, 그리고 일차 집단들(primary groups)을 들고 있다.19) 이에 비해 도드는 군주적이거나 혁명적인 정치 지도자, 정당, 군부, 그리고 노동자와 관료층, 그리고 지식층의 역할을 들고 있다.20) 이를 요인들이 정치 발전을 이루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궁극적으로 정치 문화의 변혁에 상당한 기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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