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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교인과 같은 처지에서 섬길 수 있게 됐다"
[인터뷰] 경주 양봉 영농조합 사무국장 김채완 목사
  • 유영 기자 (young2@newsnjoy.or.kr)
  • 승인 2017.06.05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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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농조합에 도착하면 저를 목사라고 부르지 말아 주세요."

[뉴스앤조이-유영 기자] 경북 신경주역. 파란색 1톤 트럭을 타고 마중 나온 김채완 목사가 말했다. 초여름부터 얼굴이 거뭇한 김 목사는 영락없는 농민이었다. 현재 그는 양봉조합 경주 지부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매일 양봉장에서 함께 노동하는 사람들과의 친밀함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합에서 국장으로 불리는데, 다들 제가 목사인지 몰라요. 조합에 스님도 몇 분 있어요. 종교인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을 보입니다. 그래서 목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조합원들과 형, 동생으로 지내는 것이 더 편합니다."

김 목사는 조합원들에게 목사라고 불리기보다 국장으로 불리기를 좋아한다. 사실 호칭이 목사든 국장이든 상관없다. 그에게 영농조합은 비기독교인 조합원과 인생의 희로애락을 나누는 소중한 공동체다.

양봉장에서 벌통을 돌보는 김채완 목사. 뉴스앤조이 유영

영농인들과 함께 잘살 방법을 계속 고민한 김 목사는 지난해 사회적 기업 '영농조합법인 꿀벌과피아노'를 만들었다. 꿀벌과피아노는 수확한 꿀과 다양한 양봉 부산물로 부가가치가 큰 제품을 만든다. 100% 아카시아꿀과 대추꿀 생산은 기본이다. 꿀로 담근 유자청, 밀랍 향초, 쿠키 등 수익성이 더 좋은 제품을 생산한다.

김채완 목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생산한 제품들을 직접 유통할 수 있는 카페 사업도 추진하려고 한다. 농산물과 제품 생산에만 머무르면 영농인들이 얻는 수익이 적은 까닭이다.

"농산물 산업은 1·2·3차 산업을 모두 아우르는 6차 산업(1차+2차+3차)이 요구됩니다. 양봉의 경우, 꿀을 생산하고(1차), 꿀과 관련한 다양한 상품을 만들고(2차), 카페 등 서비스 산업으로 유통될 자체 브랜드(3차)를 만들 수 있지요. 6차 산업이 자리 잡아야 농민들이 조금 더 잘살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농민들이 6차 산업을 고민하는 이유는 부당한 사회구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에서 농촌은 도시에 착취당합니다. 도시에서 소비할 농산물을 재배하는데, 가격은 터무니없이 낮습니다. 도시 사람들이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농민을 착취하는 것이지요. 농민들이 가격을 올리려고 하면 농산물을 수입해서 가격을 낮춥니다. 1차 산업 생산물만 생산한다면, 농촌은 계속 가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구 유명 청소년 사역자,
이주 여성 위한 농촌 목회자로

김채완 목사가 농촌 지역 사회적 사업가를 꿈꾸며 목회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김 목사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잘 알려진 청소년 사역자였다. 청소년 선교 단체 '코람데오' 대표로 지내며, 10년 이상 수많은 청소년·청년을 양육했다. 40세가 되던 2006년, 오랜 고민 끝에 청소년 사역을 마치고 농촌으로 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가르치는 목사가 아닌 살아 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2000년대에 청소년 사역자로 교계에 알려지면서 고민이 많았어요. 여러 청소년 사역자와 연계되면서 서울에서 사역할 기회도 있었지요.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는 '목회자가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컸어요. 청소년들에게 가르쳤던 삶을 스스로 살아 내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고민하던 어느 날 동생에게 연락이 왔어요. 농촌으로 시집 온 이주 여성이 많이 자살한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이야기를 듣고 시골에 교회를 개척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김 목사는 8명이 모이지만 외부 봉사에 재정 50%를 사용하는 '한몸교회'를 울주군에 개척했다. 교회를 배경으로 이주 여성을 돕는 봉사 단체 '한몸세상'도 만들었다. 한몸세상은 가장 먼저 이주 여성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그러다 이주 여성에게 요리를 가르칠 필요를 느꼈다. 한국 음식을 만들지 몰라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았던 까닭이다. 요리를 가르치다 보니 이주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들이 한국에서 자립할 터전을 마련할 힘을 길러 주고 싶었다.

김 목사는 양봉을 통해 자립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꿈을 꾸고 있다. 뉴스앤조이 유영

고민 끝에 '한몸농장'이라는 예비 사회적 기업을 설립했다. 이주 여성과 함께 된장을 담가 판매했다. 김 목사가 보기에 콩은 이주 여성들을 격려할 좋은 의미로 가득했다. 콩은 척박한 땅에 심어도 잘 자란다. 콩은 토지를 비옥하게 만든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하다. 된장을 담그면 묵을수록 가치가 커진다. 누군가의 인위적 개입 없이 부를 증대할 수 있다.

"사회적 의미가 크다고 봤어요. 하지만 아쉽게 오래가지 못했지요. 2008년 다문화가정 지원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이에요. 관련법이 없을 때, 대학교수들이 한몸농장처럼 이주 여성을 돕는 단체가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했어요. 그리고 그 교수들이 전문가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다문화 가정 지원법이 생기자 교수들이 있는 단체가 지원금을 받았어요.

한몸농장처럼 지원금을 받지 못한 단체들은 이주 여성들에게 줄 것이 부족했지요. 결국 지원금을 받는 단체로 이주 여성들이 이동하면서 한몸농장도 2011년 활동을 끝냈습니다. 그런데 지난 정부에서 다문화 관련 예산을 축소했어요. 정부 지원으로만 움직이던 단체들도 대부분 문을 닫았어요. 결과적으로 정책 때문에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단체들이 줄어든 것이지요."

이 경험은 김 목사가 새로운 길로 가는 거름이 되었다. 귀촌해 시골 교회에서 목회하는 삶에 머물 것이 아니라 아예 '귀농해야겠다'고 생각을 굳혔다. 같은 처지에서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부 정책에만 기대기보다 농촌 사람들과 함께 살길을 고민하고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된장을 담그던 목사는 귀농할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양봉에서 귀농의 길 찾다

"귀농하려고 땅을 알아보고 있었어요. 그때 마침 아는 형님이 양봉을 해 보자고 했어요. 이것저것 알아보니 제대로 배우면 수익도 높겠더라고요. 그래서 양봉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양봉은 쉽지 않았다. 장소를 찾는 것부터 어려웠다. 꿀벌들이 꿀을 구하러 양봉장에서 멀리 가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찾아야 했다. 계절이 바뀌면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꿀벌의 수를 최대한 늘려야 한다. 민가와 너무 가까워도 안 된다. 민원이 많이 들어와 양봉장을 운영하기 어려워진다.

양봉은 장점도 있다. 농사보다 초기 자본이 덜 든다는 점이다. 김 목사는 국유지를 저렴하게 임대할 방법을 찾았다. 현재 양봉장도 국유지를 임대해 조성했다. 주변 농민들에게 이 방법을 알려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도 양봉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양봉은 시기에 맞춰 꿀벌 세력을 왕성하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꽃이 잘 피어야 한다. 인간의 노력과 의지로만 되는 일이 아니다. 뉴스앤조이 유영

국유지는 임대료도 저렴하고, 나중에 정부가 땅을 팔 때 임대인이 우선 입찰할 수 있는 권리도 얻을 수 있다. 국유지 임대는 농촌 사람들도 잘 생각하지 못한 방법이다. 이런 제도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알게 되어도, 땅을 찾아보고 임대를 위해 서류 작성해야 하는 과정도 어렵게 느껴진다.

김 목사는 양봉에서 배운 게 많다. 보지 못했던 것을 많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양봉을 하니, 언제 무슨 꽃이 피는지 확실히 보였다. 환경이 나빠지면 꿀벌들에게도 영향이 크다. 얻을 수 있는 개체 수도 줄어들고, 꿀 상태도 좋지 않다. 이런 자연현상을 보면서 인생의 성공을 보는 시각도 많이 변했다.

"도시와 달리 농촌은 실패해도 도전할 기회가 꼭 돌아옵니다. 농촌에서는 1년 단위로 도전할 수 있거든요. 올해 꿀벌 수를 많이 늘리지 못해 양봉을 망쳤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럼 내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마음이 다급하다고 더 빨리 진행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면 반드시 도전할 기회가 다시 찾아옵니다. 1년 후, 다시 시작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지요."

교인과 같은 입장에 선
농부 목회자,
마을 공동체 꿈꿔

김 목사가 지역사회에서 목사라고 불리지 않는다고 목회를 그만둔 것은 아니다. 현재 주일마다 대구에 있는 교회에서 청소년과 청년 사역을 이어 가고 있다. 설교도 하고 목회도 하지만 '무급'이다.

귀농 이후, 김 목사는 이전과 다른 목회 정체성이 생겼다. 비기독교인과도 거리낌 없이 교제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교회에서도 서는 위치가 달라졌다. 목회자가 된 이후 계속 원했던 교인과 같은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교인들이 평일 내내 힘들게 지내고 교회에서 봉사합니다. 저도 교인들과 동일한 입장에서 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목사와 교인이 같은 입장에 선 것이지요. 탈권위가 저절로 이뤄집니다.

도시에 있는 교회도 자립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목사들이 택시·택배 등 생계 노동을 합니다. 교인들 몰래 합니다. 모르게 하면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더군요. 그러지 말고, 자연스럽게 사회 선교사, 운송 선교사 등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교단이나 교회가 도와주면 좋겠어요."

양봉은 꿀 외에도 여러 부산물을 준다. 김 목사는 이러한 부산물로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생산한다. 뉴스앤조이 유영

김 목사는 지금 지내는 경주시 시골에서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싶다. 이를 위해 외부 의존도를 낮추고 공동체 안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경기나 취업률 등에서 자유롭도록 경제적 자립을 이루려는 것이다. '공동체 기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양봉을 통해 마을 기업을 이루고 싶습니다. 마을 기업에서 일해야만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좋겠어요. 소박하게 살면서 지내도 괜찮다면 마을 기업에서 일하는 것도 좋겠지요.

아직은 제가 더 노력해서 마을 기업이 될 수 있도록 파이를 키워야 합니다.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는 사람들과 어우러지고 싶어요. 농촌 선교,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며 자연을 회복해 나가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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