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이만신 목사(71)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동완 목사(59) 등 기독교 인사 5명이 지난해 12월 27일 정부로부터 국민훈장을 받았다.

이만신 목사는 최고 훈장인 무궁화장을, 김동완 목사는 동백장,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56), 새빛맹인선교회 대표 안요한 목사(62), 부스러기선교회 강명순 원장(49) 등은 목련장을 수여 받았다.

정부는 이들 기독교 인사 외에도 불교와 원불교 천주교 등 종교계 인사 총 15명에게 종교계화합과 사회안정 및 국가발전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훈장을 수여했다. 이번 국민훈장 서훈자 15명 중 무궁화장은 2명, 모란장 1명, 동백장 4명, 목련장 8명이며, 종교별로는 불교 6명, 개신교 5명, 천주교 2명, 원불교 1명, 민족종교 1명이다.  

종교인에 대한 포상은 사회봉사활동이나 문화예술분야의 포상시 종교인이 일부 포함되는 경우는 있었으나, 종교인만을 단일 대상으로 서훈하는 일은 정부의 훈장수여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문화관광부측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번 종교인들에 대한 대대적 포상은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이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히고, 이번 서훈을 시작으로 종교계 인사에 대한 포상을 매년 정례화 할 방침을 고려중이라고 시사했다.  

이만신 목사와 함께 서정대 조계종 총무원장 겸 (사)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장이 무궁화장을 받았고, 원광학원 이사장인 조정근 교무가, 모란장을, 김동완 총무와 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회장 등 4명이 동백장, 개신교 인사 4명과 함께 김법장 수덕사 주지, 김범하 통도사 성보박물관장, 박인공 한국전통불교회 이사장, 변춘광  한불교천태종 관문사 주지 등이 목련장을 받았다.

국민훈장 훈격은 추천후보자의 실제 공적을 고려하였으며, 종교별 인원 배정은 해당 종교의 교세 등을 감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독교 인사 주요 공적사항>
*무궁화장- 이만신 목사

ㅇ 1956년 목회자의 길을 걸은 후 40년 이상을 성직자로서 봉직하면서 근면하고 근검한 생활로 많은 사람들에게 바르고 참된 삶을 보여주는 본보기로서 살아 왔고, 기독교의 부흥,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음.

ㅇ 2000년 2월에는 한국 기독교의 56개 교단과 16개 기관단체가 가입하여 소속 교회가 37,000여 개에 이르고 총 신도수가 11,700,000여명에 이르는 한국기독교의 대표적인 연합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으로서 기독교계 뿐만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 왔고, 특히 다양한 교파를 아울러서 일치와 연합속에 교회의 부흥을 모색하기 위한 사업 중 '정직, 절제, 사랑 실천운동'을 전개하여 한국 교회 전체와 국민의 호응을 얻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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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다종교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종교간 화합은 매우 중요한 일인 바, 타 종교를 이해하고 상호 협력을 모색하기 위하여, 2000년도에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민족종교 등 7대 종단이 참여하는 (사)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의 공동대표의장으로 취임하면서 종교간 화합에 심혈을 쏟은 결과 종교간 큰 갈등이나 마찰이 없이 평화로운 가운데 종교가 상존하는데 기여한 공이 지대함.

ㅇ 종교단체환경정책실천협의회에도 참여하여 우리나라의 최근 최대 현안사안으로 등장한 각종 환경 문제에 대해 종교계에서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데 앞장서 왔음.

ㅇ 2001년 10월에는 월드컵 분위기 조성과 종교계의 성직자들이 친선을 도모할 수 있도록 성직자 축구대회를 개최하여 종교계 뿐만아니라 많은 국민들로부터 호응과 찬사를 받았으며, 통일워십콘서트를 개최하여 북한 바로알기 및 남북한 평화협력분위기 조성에 기여함.

*동백장-김동완 목사  

ㅇ 인천도시산업선교회 간사와 총무, 전태일 기념사업회 초대위원장, 민중민주운동협의회 대표위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기독노동자총연맹 이사장 및 KNCC 국장 및 총무로 재직하면서 30여년간 민주화와 노동자의 인권신장을 위해 크게 기여함
  
ㅇ 1986년 글리온 1차모임에 이어 1995년 글리온 4차 모임을 통해 남북 종교지도자 평화운동에 기여하였으며, 2001년 6월 15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6.15 정상회담 실천을 위한 남북교회지도자, 해외동포 및 독일교회가 참여하는 공동예배를 주관하고 남북교회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한편, 종교지도자 금강산 순례(2001년 5월),  3차례의 방북을 통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KCF)과의 만남으로 민족화해협력 분위기 조성

ㅇ 1999년 7월 화해와 평화를 위한 「7개 종단 온겨례손잡기운동」을 제안·창립하여, 공동본부장으로  매년 3. 1. 「3.1절 기념 화합과 평화를 위한 온겨레 손잡기 운동」을 개최하면서 2001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 광장에서 7대종단 지도자, 신도, 시민 등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행사와 희망의손잡기 행사를 가졌으며, 종교인평화회의(KCRP) 기독교계 대표로 종교간의 연합과 상호이해를 통해 국민화합에 크게 기여

ㅇ 1999년 11월 요르단 암만 세계종교인평화회의, 2000년 UN(뉴욕) 세계종교인평화대회 및 2001년 11월 인도네시아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 등 각종 국제종교대회에 한국종교인 대표로 참가하여 세계종교계와의 교류협력 및 한국기독교 위상제고에 기여하였으며, 1999년 6월 일본 NCC와 한일기독의원연맹을 결성을 주도하여 한일관계 개선에도 크게 기여

*목련장
안요한 목사
ㅇ 안요한 목사는 1939년 독실한 기독교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오직 세속적 성공만을 위하여 살아가던 37세대 중도실명, 실명의 고통을 신앙으로서 극복하고 1978년 새빛맹인선교회를 창립하여 맹인을 위한 활동에 일생을 헌신해 오고 있음..

ㅇ 1978년 6월에는 진흥야간학교를 설립하여 배움의 기회를 놓친 근로청소년들에게 중·고등학교 과정의 검정고시 반을 개설하여 15년간 827명이 수료, 상급학교 진학과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하게 하였고,

ㅇ 1978년 7월에 점자월간지인 '점자새빛'을 인수하여 20여년 이상을 발행함으로써 15만 시각장애인의 신앙생활과 생활정보, 교양, 교육 등에 많은 도움을 줌으로써 자신이 어려움을 체험한 신앙인으로써, 사회의 소외되고 불쌍한 이웃에게 희망을 주는 사회봉사를 실천해 왔음.

ㅇ 1980-81년 맹인교회인 '새빛교회'와 '새빛맹인재활원를 창립하여 시각장애인들에게 의식주를 포함한 생활 보호와 재활교육을 시키고 있으며 신앙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의 용기를 심어주는 사랑의 공동체를 운영하여 오고 있음.

ㅇ 1991년 1월에는 재활학교를 설립하여 시각장애인들에게 빛을 잃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재활교육 과정을 개설, 사회에 복귀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음으로써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 할 장애인이 오히려 사회의 가장 그늘진 곳을 돌보는 그의 헌신적인 사랑과 봉사를 통하여 사회의 큰 감동을 안겨 줌.

*김삼환 목사
ㅇ 1991년 폐교될 위기에 있던 영광여고를 인수·운영하면서 연간 200여명의 어려운 학생을 선정하여 장학금을 전달, 학업을 돕고 있으며 숭실대, 한남대, 장신대 등에 매년 수십억원씩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장서 30,000여권을 소장한 도서관을 무료로 개관하여 지역민의 문화생활과 학생들의 학업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등 교육 및 장학사업에도 힘쓰고 있음

ㅇ 1994년부터 하남시에 복지관을 건립하여 소년, 소녀가장과 생활능력이 없는 여성가정 19세대를 수용하여 장학금 및 생활비를 제공하여 왔으며,「새 출발의 집」을 개설하여 직장없는 이웃에게 무료로 직장을 알선해 주는 한편, 매일 급식인원 200여명의 식사를 무료로 수년째 제공하고 있음

ㅇ 1994년 성소병원을 인수하여 1,500회 이상을 무료개안 수술을 시행하였으며 장기간 많은 횟수의 진료가 필수적인 신장투석환자들을 하루 40인 이상 무료로 진료하고 있고, 「베다니 집」을 개설하여 어려운 이웃에게 치과, 내·외과, 한방 등을 무료로 진료하고 있으며, 무료 이·미용실을 운영하여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등 국민 건강과 보건 증진에 크게 기여

ㅇ 에티오피아에 병원을 건축중에 있으며, 61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해당나라에 우리문화를 소개하는 등 세계 선교와 봉사활동에도 적극 헌신하여 옴.

*강명순 원장
  
ㅇ 한창 꿈많던 20살 대학생 시절부터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가난한 지역의 아이들과 여성들과 함께 25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그들을 대변하고 옹호하고, 모든 자원을 연계하여 나누는 사회복지운동을 몸소 실천함
  
ㅇ 1986년부터 시작한 장학사업은 2001년 현재까지 855명의 아이들에게 학비를 지원하는 교육장학금 외에 생활장학금, 급식비를 내어주는 튼튼장학금 등을 523,183,900원 지원함으로써 가난한 청소년에 대한 장학사업에 힘쓰고 있음.
  
ㅇ 1997년부터 사당3동의 빈민을 위한 무료 탁아와 공부방 활동, 무료진료소, 문맹인을 위한 야간학교, 신용협동조합의 일을 해 왔으며 부평공단주변에서는 빈민지역 탁아와 공부방을 위한 '부스러기선교회'를 조직하여 지원한 기관(탁아방,공부방,쉼터)의 수가 현재까지 474개이며 기관을 통하여 돌본 아이들의 수는 10,643명이나 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함
  
ㅇ 1997년 말부터 결식아동을 위한 무료밥집 「신나는집」을 개소하게 하였고 먹거리나눔의 필요성을 깨닫고 FOOD BANK사업을 1998년부터 실시하였으며  YMCA, YWCA, 대한성공회, MBC,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등과 함께 「먹거리나누기운동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연대사업을 실시함으로써 섬김과 나눔에 대한 실천뿐만 아니라 종교·사회간 화합에도 기여함.
    
<기타 종교인>

*무궁화장-서정대(불교)

ㅇ 지난 1964년 출가한 이후 1975년 제5대 중앙종회 의원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조계종단 내에서 중앙종회 의원, 총무원 주요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불교 대표종단으로서의 위상정립에 기여하였고, 1999년 11월 조계종 총무원장과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장에 취임한 이후에는 종단내분을 성공적으로 수습하고 불교계 각종단간 화합을 이루어 냈을 뿐 아니라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의장으로서 다종교사회에서의 종교간 화합을 이루어 사회안정과 국민통합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하였음

ㅇ 1999년 12월 온겨레손잡기운동 상임공동본부장에 취임하여 불교계 대표로서 개신교 및 천주교단과 함께 남북 화해와 협력의 문화를 조성하고 2000년 6월에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를 창립하고 총재에 취임하여 모두 6차례에 걸친 모금을 통해 북한 동포에게 생필품을 상당 분량 지원하였으며 2000년 8월15일에는 한국불교사에서 처음으로 남북동시법회를 서울 조계사와 북한 보현사에서 개최한 이래 올해 8.15에도 계속하여 남북 동시법회를 개최하여 민족공동체 실현과 평화통일을 위해 종교인으로서 지도적 역할을 함

ㅇ 2001.10월 중국정부 종교국 공식초청으로 방중하여 중국정부로부터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한중 공동대응, 우리 정부의 햇볕정책 지속적 지원 등의 약속을 얻어냄으로써 우리 정부의 대중 외교를 측면지원함

ㅇ 특히, 불교의 한반도 전래후 약 1700년동안 우리 민족문화의 근간이었던 한국불교역사문화를 종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건립을 사상 최초로 추진하는 한편, 1970년 불교계 최초로 「대한민국불교미술대전」을 제안, 2000년까지 18회나 개최하여 불교예술의 창달에 크게 기여하였고 2000년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총재에 취임한 이래 매년 8월 시인, 소설가, 평론가, 미술인, 불교학자, 종교인들이 어우러진 문화예술축제인 「만해축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민족 고유의 전통문화축제인 초파일 「연등축제」를 서울시 문화축제로 지정케 하고 영문 홍보안내책자 발간과 인터넷 서비스 개시 등으로 우리문화의 해외 선양과 관광자원 개발에 기여함

ㅇ 1989년부터 6년간 정부 문화재위원회 위원에 위촉되어 문화재정책 자문활동을 하였고 2000년 6월에 조계종 총무원 산하에 <문화유산발굴조사단>을 설립, 불교문화재와 불교유적에 대한 종단의 조사연구 역량을 획기적으로 확충하여 전국 사찰의 문화재 실태조사, 북한산 폐사지 조사보고서 발간, 북한 문화재 실태조사 등의 성과를 이루어 내었음

*모란장-조정근

  1960년 원불교에 입문한 이래 광주교구 교구장, 원불교 서울사무소장, 원불교 교정원장 등 주요 보직을 맡으면서 원융사상을 모토로 하는 원불교 교리의 정립과 보급에 헌신하여 신흥종교인 원불교를 교당 474개, 교직자 10,780여명, 신도 130여만명의 중견교단으로 중흥시켰으며, 원불교계의 정신적·실질적 지도자로서 원불교 전체의 단합을 유지함으로써 원불교가 신흥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아무런 문제를 야기시키지 않는 건전종교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음.

  원불교의 생활종교화를 표방하고 원불교 정신의 사회일상 생활에서의 실천을 강조하여 원불교가 사회복지, 교육 등의 분야에서 활발한 사업을 펼침으로써 원불교가 신흥종교이면서도 다른 종교에 비해 사회발전에 보다 많이 기여하는 종교로 발전시켜 왔음.

  부산 및 서울원음방송을 개국하여 문화발전, 건전 시민의식 향상 및 지역사회 교화에 크게 공헌하고 있으며, 원불교 은혜심기 운동본부 총재로서 원불교 새생명 운동을 전개하여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등 원불교의 생활화를 통한 사회발전 및 국민복지 증진에 크게 기여

  전인교육을 위주로 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학교를 설립·운영하여 청소년 교육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으며, 학교법인 원광학원 이사장으로서 미래 인재양성에 헌신

ㅇ 1986년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고문을 맡아 서울평화교육센터 운영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1997. 3월 원불교 대표로서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를 설립하여 초대 공동대표를 맡아 원불교의 원융사상을 바탕으로 종교간 화합과 평화운동을 선도하였음.

ㅇ 또한, 남북장애인걷기운동본부 공동대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공동대표, 북한옥수수심기 범국민운동 공동대표, 민족화해협력 범국민협의회 고문을 맡아 북한주민 교화와 대북인도 지원에 앞장서는 등 한반도의 평화정책과 통일여건 기반 마련에 기여

*동백장
-조무산

  1958년 불교에 귀의한 이래 조계종 해운사 주지, 총무원 교육국장, 조계종 종립학교 관리위원장을 맡으면서 불교사상의 일반국민에게 널리 보급함과 더불어 불교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현대화에 크게 기여하였음.

  지난 '96년 만해스님 52주기일을 맞아 만해선양회를 발족시킨 이후  "만해새얼" 창간 및 "한용운시전집"출간 등을 통해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시인이신 만해 한용운 선사의 사상을 선양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한 이후 '96년부터 백담사에서 전국의 시인, 독자들이 참여하는 만해시인학교를 개최하고 2000년부터 만해축전을 여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여 만해선사의 얼과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데 기여하였음.

  또한 2000년 성준장학회를 창립하여, 매년 생활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여 왔으며, 2001년 의상·만해연구원을 창립, 의상대사와 만해스님의 사상과 업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한편 이 분야의 연구에 종사하는 젊은 학자들을 꾸준히 지원하는 등 다양한 교육 및 문화사업을 펼치고 있음.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주필을 역임하면서 초기 불교언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서울신문(현 대한매일)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역임하면서 직접 문학창작활동에 참여하는 한편으로 후진양성에 기여하였고, 시집 "심우도",  산문집 "죽을법을 모르는데 사는법을 어찌알랴" 등의 다양한 창작활동을 통하여 가람시조문학상, 현대시조문학상, 남명문학상 본상을 수상하는 등 문학발전에 크게 기여한 업적이 큼.

  또한, 한국.몽골 친선교류협의회 자문위원으로서 몽골에 대한 해동 전통불교의 보급과 포교 및 한.몽골 우호친선 관계 증진에도 크게기여하였음.
                
*조성애
ㅇ 1976년 2월부터 재소자 교정·교화활동을 시작하여 사형수, 재소자 및 출소자를 위한 신앙교육과 상담활동에 헌신함.

ㅇ 1977년 6월부터 현재까지 총 64회의 재소자 생일 위로회를 개최하여 떡, 과일, 생활용품 등 1,800만원 상당을 지원함으로써 수용생활 안정과 갱생의욕 고취에 기여하였고, 1978년 3월부터 현재까지 재소자중 총 730명의 천주교 영세자를 배출하여 신앙을 통한 재소자 심성순화에 기여하여 왔으며  영세식 때마다 음료수와 양말, 내의 등 생활 필수품 2,100만원 상당을 지원하였음.

ㅇ 1978년 2월 사형수 14명과 자매 결연을 맺어 200여회의 개인상담과 신앙지도로 심성을 순화시켰고, 사형수 9명에게는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게 함으로써 사형집행시 안구와 신장을 사회에 기증하게 하여 제2의 생명을 구하도록 하였으며, 가족이 인수하지 않은 사체 32구를 천주교 교도 사목회원들의 협조로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 소재 임야 100평을 구입한 뒤에 묘지 조성하여 안장 유치하는 등 이들을 위한 헌신적 노력으로 "사형수들의 어머니"로 불리고 있음.

ㅇ 1981년 6월 수용자 책읽기 운동을 전개하여 종교서적과 학습도서 3,320권 956만원 상당을 기증하였고, 1983년 5월에는 녹음기 1대, 카세트 테이프 150개, 음반 160장 등 108만원 상당의 교화 기자재를 기증하는 등 재소자 정서순화에 기여함.  

ㅇ 1985년 8월과 1989년 3월 무의탁출소자 2명의 취업을 알선하여 출소뒤 자립토록 하였고, 1990년 12월 한 사형수의 노모가 거동이 불편하여 생계가 어렵자 생활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불우 재소자 가족을 지원에 노력하였으며 2000년도에는 수용자 거실용 TV 기금 200만원을 지원하여 재소자 교화방송을 지원하는 등 재소자 심성 순화와 교도소 사목에 평생을 헌신하였음

한양원
  20대에 갱정유도에 입도한 이래 갱정유도의 도지(道旨)에 정진하면서 갱정유도 총무와 도무원장을 맡아 민족종교인 갱정유도의 계승과 현대화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일생을 민족정기 선양과 주체성 확립, 국민의 도덕성 회복과 윤리국가의 건설 및 민족의 평화적 통일에 헌신한 종교지도자임.

  1985. 3.16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1,000여명의 시민과 도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도의앙양 실천대회>를 개최하고, 1995. 4. 24 명동 네거리를 시발점으로 하여 종로3가 네거리까지 <도덕성 회복>과 <남북통일 촉진>을 위한 시가행진을 평화적으로 거행하여 윤리도덕이 땅에 떨어진 현실사회에 뜨거운 경종을 울린 바 있음

  또한 1966년 7월, 인권존중운동과 도덕사회 구현을 목적으로 정기간행물인 월간「도의보(道義報:발행인 한중환) 발간하여 약 6년 동안 당시의 석학인 김기석, 박종홍, 김두헌, 이숭녕, 이희승, 김팔봉, 송지영씨의 글을 발표하여 국민정신계도에 크게 기여한 바 있음.

  1985.11.16. 민족종교 33개 교단이 참가한 한국민족종교협의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으로 선임된 이래 현재까지 협의회의 발전과 위상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1997. 3. 18 다종교사회에서의 이웃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을 증진하기 위하여 7대종교가 창립한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에 민족종교협의회 대표로 참여하여 종교간의 유대강화와 국민화합의 증진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  

  2000. 8. "유엔 밀레니엄 종교 및 영성지도자 평화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한바 있으며, 2000. 10.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밀레니엄 정상회의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응"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국제회의에도 적극 참여하여 종교지도자들간의 국제적 교류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남북종교지도자회의,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통일 대토론회" 참석 등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음

  한편, 청소년 계도 및 가정의례 교육에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매년 2회씩 "민족종교 청장년 수련대회"를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실시하여 젊은이들에게 민족혼을 심어주고 건전한 인생관, 사회관, 국가관을 심어주고 있으며, 1989년 3월부터 사단법인 청년여성문화원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여성문화의 향상과 청소년들의 가정의례 교육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음

*목련장
-김법장
  1960년 불교에 귀의한 이래 1981. 6월 국제포교사 자격을 취득하여 미주 및 유럽 9개국 순회 포교에 나서면서 우리 불교의 해외포교를 통해 우리나라를 선·포교 수혜국에서 선·포교 시혜국으로의 위상을 전환시키는데 크게 기여하는 한편, 포교와 병행하여 외국인을 대상으로 우리 문화의 소개와 홍보를 함으로써 국가이미지 개선에 기여하였음.

  또한 교정행정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1985년 홍성교도소 교화위원이 된 이후 17년간  재소자 교정 교화업무에 솔선수범하였으며,  1992년부터는 충남지방경찰청 경승실장을 맡아 경찰관의 교화업무에도 헌신함.

  (사)생명나눔실천회 이사장으로 신장기증 접수와 결연사업, 신장병 및 백혈병 환자돕기와 헌혈증 접수, 골수기증 접수사업을 비롯한 각종 의료상담 및 사회복지사업과 장묘문화 개선사업을 전개해 나가는 등 활발한 사회사업을 펼침

  1992년 수덕사에 아동보호시설을 설립하여 자치단체, 사회단체 및 개인으로부터 의뢰받은 무의탁 아동을 수용, 보육하여 건전한 사회인으로 배출하는 등 아동보육사업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음.

  현재 전국운전불자연합회 총재로서 건전교통문화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교통질서 확립에 기여하고 있으며, 문화관광부 한국방문의 해 추진위원 등을 맡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면서 불교계와의 사회와 가교역할을 담당하고 있음.

  한.일 불교교류협회 회장, 한.태국 불교친선협회장으로서 한.일 및 한.태국 불교 교류 증진에 기여하는 한편,  2001. 3 세계불교화운동(WFB) 한국지부 총재를 맡아 세계불교도의 친목을 도모함과 아울러 불교국가간의 우의증진에 진력하는 등 한국불교의 위상제고에도 크게 기여함.

  1994년 국립공원위원회 위원에 취임한 이래도 현재까지 동직을 수행하면서 국립공원의 보호와 자연환경 보전에도 기여하고 있음.

  1996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 유권자 운동연합 공동대표로의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사무관리 향상을 위해 의정감시 및 선거문화 개선운동에 진력하고 있음.

*김범하
  1987년 통도사에 불교문화재 및 유물을 보존.관리하는 성보박물관을 개관하여 50년간 수집한 유물 2만여점을 기증하였으며, 성보박물관 문화자원봉사회를 운영하는 등 불교 전통문화재 보호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

  한편, 통도사 불화특별전(1988년), 한국의 불화초본 특별전(1992년), 신라범종 특별전(1994년), 통도사 대웅전 단청문양모사전(1997년), 한국의 쾌불탱 특별전(1999년), 티베트불교미술특별전(2001년) 등을 개최하여 불교미술의 발전과 대중화에 크게 기여

  신라금동아미타삼존불상에 관한 국제학술세미나, 성보보존 및 활용방안 국제학술세미나, 사리장엄연구에 관한 한·중·일 국제학술 세미나 등 다양한 학술활동을 통하여 전국 700여개 주요사찰의 불화를 집대성한 "한국의 불화" 1차 20권을 완간한데 이어 2차 20권 간행에 착수하고  경주 남산 사방불암 조사보고서, 사나범종 조사 보고서, 통도사 대웅전 실측조사보고서, 직지사 본말사 조사보고서, 신라금동 아미타삼존불 조사보고서 등 수많은 불교관련 학술보고서를 발간하여 불교문화의 체계적 연구에 기여 하였음.

  또한, 학술조사보고서외에도 한국의 명찰, 통도사의 불화, 한국의 불화 초본, 통도사 성보박물관 명품도록, 월리 김진조 선생 기증유물 도록, 불사리 장엄 도록, 티베트 불교미술도록 등 수많은 불교유물 및 미술품에 대한 도록을 작성하여 불교문화의 보존·정리에 크게 기여

  1990년부터 (사)한국박물관협회 이사를 맡고, 1995년부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맡은데 이어 1996년부터 (사)성보문화재 연구원장을 맡아오고 있는 등 문화재 관련 행정의 발전과 연구에 기여하고 있음.

*박인공
ㅇ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보존회장으로서 매년 단오절 영산재 시연, 국립국악원 주최 불교예술의 美 영산재 시연(2001. 4.26∼27),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제13회 영산재 시연(2001.6.25.)과 뉴욕 카네기홀에서 뉴욕 한인회 창립 40주년 기념「세계로 도약하는 한국문화예술 5천년」행사초청 영산재 봉행(2000년 6월 30일) 등 해외공연을 통해 전통 불교 문화예술의 보존, 전승 및 보급과 해외선양에 크게 기여해 왔음.

  특히 2000년 6월 30일 뉴욕 카네기 메인홀에서 개최된 영산재 시연회는 영산재의 진면족인 거불, 사다리니, 법고, 사방요신 등을 완벽하게 재현함으로써 2,600석의 객석을 가득메운 청중들의 환호를 받아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전통불교 문화의 예술성을 해외에 과시하는 한편, 영산재의 관광상품화 및 각종 해외공연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음.

  외국인 수행자 한국문화체험 프로그램으로 영산재 식당작법 시연 및 외국관광객을 위한 영산재 공연(매주1회 공연)을 통하여 불교 전통예술문화의 국제적 홍보 및 관광상품화에 기여하였음.

  육군 부대 호국충성자위문법회, 영등포 교도소와 구치소 재소자 위문법회 봉행 등(매달 2회)을 통해 국군장병 위문 및 재소자 교도사업에 기여하는 한편 어려운 이웃돕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여 사회복지 향상에도 기여함.

  한편, 매년 여름방학 기간에 초·중·고등학생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생활한문 특강을 봉원사에서 개설하여 천자문과 사자소학, 명심보감, 생활한자 등을 강의하여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바른 심성을 심어주고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는 한편 건전한 문화를 정착시키는데 기여하고 있음.

*변충광
  1971년 불교에 귀의한 이래 대한불교신문사 편집인으로 불교신문의 정착과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천태종 총무원 교무부장, 천태불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봉직하면서 불교교육과 불교문화연구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

  1988년 대한불교경승단 서울부단장으로 서대문 경찰서 경승을 맡은 이래, 부산지방경찰청 경승, 부산교도소 종교위원으로 경찰관들의 정신적 지도와 교화에 기여한 공로로 경찰청장 감사장을 수상하는 등 경찰발전에 크게 기여

  부산불교연합회 수석부회장, 부산시정 자문위원으로 영남지역 불교의 발전과 단합을 이룩하고 향토애 고양, 지역사회 체육진흥, 시정발전 등 지역사회 발전에 주도적 역할을 한 공적으로 자랑스런 부산시민상을 수상

  삼광차문화연구보존회, 불교전통 꽃꽂이회, 불교전통요리연구보존회, 화엄합창단 등을 설립하여 다채로운 강좌와 각종 전시회 등 국내외 문화예술행사를 개최하여 전통불교문화를 계승. 보전하고 사회적으로 보급, 대중화 하는데 기여하였음.

  특히 동·하계 청소년 수련법회 및 어린이 불교학교를 개설하여 어린 불자들에게 바른 신앙함양과 건강하고 지혜로운 생활태도를 가르쳐 청소년 선도사업에 헌신하고 불교의 자비정신을 사회에 실현하기 위하여 소년소녀가장돕기, 불우이웃돕기, 경로잔치, 나환자촌 방문, 군부대위문, 교도소 교화법회, 영세장애인 합동결혼식 개최 등 다양한 사회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음.

  또한, 1988년 한글학회 부산지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1991년 삼광한글학교를 설립하는 등 한글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갖고 국어학 발전연구와 우리말 바로쓰기 및 나라사랑운동에 헌신하여 한글학회 이사장 감사패를 수여하였음.

  1999년 한일불교교류협의회 상임이사를 맡으면서 한·일불교교류를 정례화하고 일본에서의 한국불교의 영향과 족적 연구에 기여한 공적이 큼.


*최분이

ㅇ 1966년 3월부터 옥천양로원을 운영하였고, 1970년 5월부터 나환자 정착마을인 경화원에서 봉사하면서 나환자들의 갱생을 도왔으며, 1973년 1월 성모자애원을 운영하면서 전쟁고아 22명을 양육하였음.

ㅇ 1974년 12월부터 1980년 1월까지의 기간중에 부산 성프란치스코의 집에  근무하면서 유치부에서 고등부까지 120여명의 전국 나환자 자녀를 양육하였으며, 오륙도에서 나환자 재가 복지에 투신하여, 당시 나환자라는 것이 밝혀지면 사회적으로 격리되고 매장 당하는 현실 앞에서 숨어사는 그들을 위하여 보건소에서도 찾아내지 못한 재가 나환자들을 찾아서 생계가 어려운 이들에게 은인을 찾아 연결시켜 주고 나환자 자녀들의 교육을 위하여 학비를 전달함.

ㅇ 또한 오륙도, 삼랑진, 산청의 나환자 정착촌을 돌면서 구강외과 의사를 도와 치과진료 및 구강 성형 수술을 돕는 일에 6년 간 헌신하였으며, 나환자들의 재가복지와 의료봉사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오륙도에 수녀원과   진료소를 개설하였음.

ㅇ 1980년 3월부터 수천명의 정신질환자와 부랑인의 수용시설인 대구시립희망원에서 7년 간 봉사하면서 원생들의 열악한 영양상태를 개선시키기 위하여  직접 가축을 길렀고 특히 폐 질환자를 위하여 지렁이를 손수 길러 달여 먹이는 등 이들을 위해 헌신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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