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했다. 이 해를 며칠 남겨 놓지 않은 12월 26일,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연극 한 편 보기 위해서다. 10월 10일부터 12월 27일까지 매주 월, 화 이틀씩 공연해 온 것이니까 23회 차 연극을 관람하는 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볼 기회를 놓칠 뻔했다.

'서울 루키'는 다른 연극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극단 미목(美木) 대표가 목회자(백미경 목사)라는 것, 이 극단이 교회 소속이라는 것(미와십자가교회, 담임 오동섭 목사), 선교의 한 방법으로 연극을 공연하고 있다는 것에서 누구나 기독교 냄새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뿐 아니다. 공연장 스페이스아이(SPACE I)는 특별한 공간이다. 주일은 예배당, 평일엔 연극 공연, 콘서트, 전시회 등 복합 문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목회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 것이다. '서울 루키'가 이곳에서 두 달 반 공연했으니, 연극도 기독교와 연관이 없지는 않으리라.

연극 '서울 루키' 공연 포스터

'루키'는 Luck(행운)이다. 또 Look 喜(기쁨을 보라)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 줄거리를 짚어 볼 때 이 연극은 구약성서 룻기에서 아이디어를 빌려 온 것이 분명하다. '루키'는 '룻기'의 유음(類音)이다. 그러니까 룻기를 문화 변동에 조응해 현대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기발하다.

연극 '서울 루키'는 한국 남자와 결혼한 베트남 여인 루키가 주인공이다. 루키는 남편을 잃고 시댁 나라에 와서 시어머니와 함께 포장마차를 차린다. 이곳은 시어머니 남희(나오미)의 고향 마을이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루키를 구박한다.

루키는 가족의 구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버티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연극 '서울 루키'는 베트남에서 온 이방인에 대한 편견, 이혼의 상처, 가족 간 대화 부재 등 다문화 가정의 일반적 문제를 짚는다. 사실 모든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이기도 하다.

'서울 루키'에서 열연한 배우들. 수준 높은 연기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오늘날을 핵가족 시대라 한다. 고부 간 관계도 간단치 않다. '서울 루키'는 얽혀 있는 고부 갈등의 실타래를 풀어 주는 역할도 한다. 가족 간 사랑과 섬김 그리고 인내, 이것이 갈등을 해피엔드로 이끄는 마중물임을 이 연극은 교훈하고 있다.

룻기의 주인공 룻이 루키라면 이 연극에서 베들레헴의 보아스는 누구로 형상화되었을까. 큰 한정식 식당 사장 김보수다. '보수'와 '보아스'는 유음 아닌가. 성경의 보아스와는 달리 김보수의 행동은 짓궂은 데가 있다. 한 가정 두 여인에게 마음을 둔 바람둥이? 연극이니 가능한 것이리라.

우리는 단일민족이란 자긍심을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다. 허나 그런 생각을 접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지금 혼인 가정 8%가 다문화 가정이라는 통계도 있다.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진 농촌, 그 울음을 이어 가는 이들은 다문화 가정 외국인 여성들이다. '루키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 일행은 연극이 끝나고 배우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큰 것에, 높은 곳에 있지도 않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이 행복의 진원지다. '서울 루키'는 이 진실을 깨닫게 해 준다. 관객들에겐 적지 않은 수확이다. 극단 미목을 통해 색다른 미션을 시도하는 미와십자가교회에 큰 열매 있기 바란다.

아슬아슬하게 루키를 만나게 된 데는 미와십자가교회 편남영 장로님의 사랑에 힘입은 바 크다. 40석 만원의 좌석 상황인데도 날짜를 조정해 우리 일행에게 필요한 네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동행해 여러 편의를 제공해 준 참사랑교회 박혜숙 목사님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26일 연극 관객 중 내가 가장 먼 곳에서 온 사람이었다. 용인에서 온 분을 제치고 경품 수령 대상자로 뽑혔다. 컵라면 하나가 경품이었다. 컵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글을 정리하고 있는 이 시간, 나의 마음은 하늘로 날아갈 것 같다.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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